왜 사는가?/자작시 214

감은사지 석탑

감은사지 석탑 좌우 대칭의 3층 석탑이여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상륜부 제 살로 번뇌를 태웠구나! 천년 영화는 온데 간데 없고 가을 들녘에 선 허수아비마냥 야윌대로 야윈 불심만 남았네. 허물 벗어 들숨날숨 삼매에 빠져 육신의 거죽 태워 빛나는 샛별처럼 은하의 기를 온몸으로 받아서 찬연히 빛날 무구광정대다라니여, 효심이 발원한 대왕의 호국 感恩이여 이 땅을 영원히 고르게 비출지어다. 2022. 7. 8. 23:4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다중 속의 고독

다중 속의 고독 인정이란 비정한 마취제다 리즈 먼이 갈파했듯이 그게 인간사인걸 한국인은 특히나 배고픈 건 참아도 남 잘 돼서 배 아픈 건 참지 못한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잘났다 싶으면 눈 뜨고 못 보는 이가 대부분인 세상사 끼리끼리 험담하면서 자기위안으로 삼지 성격이 좋아서 웃거나 말 없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자존감이 없거나 순정치 못한 탓일 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니 그런가벼 자주 뒷통수 맞아도 살아내야 하다 보니 동기나 동향인들에게라도 정 붙여볼까 했었지 배가 고픈지 아픈지 알 수 없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 어디서든 안길 데 없는 날 저문 밤의 해처럼 몸 눕혀 마음 붙일 곳 없는 낮달처럼 갈대들은 함께해도 늘 적막강산에 혼자인걸 홀로 피어 야멸찬 비를 맞는 백합이여, 아파하지 마라 한 떨기 ..

덧없는 사죄

덧없는 사죄 “엄마, 그만 자라 쫌! 앉기만 앉으면 조노?” “아이 참, 버스 안이다 뻐스 안!” 세월이 흘러 타박하던 아들은 막노동 같은 것 하는 거 없이 편히 지낸다 그런데 오후만 되면 왜 그리 잠이 쏟아지는지 어디서든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다. 어무이 나이가 돼보니 이제야 알겠네요 356일 매일 서너 시간 밖에 못 주무시고 평생 시장판 중노동에 얼마나 곤하셨을까? 그때는 몰랐다, 정말 몰랐다. 파김치가 되도록 일만 하시다 중풍 맞아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장사를 하셨다 그러다 또 풍이 와서 자식도 몰라본 채 가셨다 이승에서 남기신 마지막 한 마디 “곱다!” 쉰 다 돼 장가 든 아들 며느리 손 잡고 하신 말씀 조시던 모습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따갑다 죄스럽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 이젠 계시는 그..

茶山의 유배시 '獨坐'에 답하다

茶山의 유배시 '獨坐'에 답하다 獨坐 旅館蕭寥獨坐時 竹陰不動日遲遲 鄕愁欲起須仍壓 詩句將圓可遂推 乍去復來鶯有信 方言忽噤燕何思 只饒一事堪追悔 枉學東坡不學棋 裊娜煙絲寂歷中 春眠起後野濛濛 山雲遠出强如月 林葉自搖非有風 眼向綠陰芳草注 心將槁木死灰同 縱然放我還家去 只作如斯一老翁 홀로 앉아서 쓸쓸한 빈 여관에 홀로 앉아 있는데 대나무 그늘은 꼼짝 않고 해는 더디네 향수가 도지려는 걸 억지로 눌러놓고 지어놓은 싯구들을 다듬는다. 잠시 갔다 다시 오니 꾀꼬리는 소식이 있는데 제비는 무슨 생각인지 입을 다물어버리는구나 두고 두고 후회가 되는 한 가지는 소동파를 배우느라 바둑을 못 배운 거라네. 늘어진 버들가지는 적막 속에 있는데 봄잠에서 깨고보니 들빛이 어둑 어둑하고 먼 산에 구름이 걷혀서 달이 뜬 듯 환하구나 나뭇잎이 절..

不垢不淨

不垢不淨초겨울 도꾜 세 평 남짓한 노래방 만취한 직장 동료가 갑자기 토한다.안락의자에 기대누운 채 자신도 모르게쿨럭 쿨럭, 쿨럭 쿨럭가슴팍으로 용암처럼 꾸역꾸역 나오는 토사물한기 도는 실내에 김이 모락모락 난다.같이 간 일본 친구들은 못 본체 노래만 부른다.나는 바로 윗도리를 벗어 두 손으로 쓸어 담았다토해낸 음식물이 더럽고 역하지 않냐고?더러워할 것도 없고, 깨끗하달 것도 없지불과 두 시간 전 함께 맛있게 먹은 음식이었는 걸찰나에도 생각은 오만 가지라 실체가 없잖아물이 없나 비누가 없나기름진 손은 씻으면 그만이지2022. 3. 27. 10:11북한산 淸勝齋에서雲靜 초고

그리움이란 이런 건가요?

그리움이란 이런 건가요? 오늘은 새벽부터 그리운 얼굴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 중의 한 사람.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순간 눈물이 팍 쏟아진다. 바깥은 봄비에 초목과 산야가 촉촉히 젖어 있고... 강진에서 멀리 흑산도 쪽으로 수평선만 하염없이 바라본 다산 정약용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다. 그 섬은 유배 간 형 약전이 사는 절해의 고도였다. 그땐 바닷길에 막혀 못 갔지만, 지금은 역병에 막혀 있다. 오늘 이 땅엔 오늘 하루만 해도 35만 명이나 확진됐다. 내가 나고 자란 포항엔 형이 살고 있다. 외롭게 사는 형이 자주 처연하게 부르는 노래 '동백꽃 피는 항구', 나는 오전 내내 이 노래만 하염 없이 듣고 또 듣는다. 2022. 3. 13. 10:26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위 생각을 아래와 같이 시..

사랑

사랑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맞아요?”이따금씩 은근슬쩍 투정 부리는 아내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난 'I love you'를 입에 달고 사는 양키가 아니거든!”“꼭 사랑한다고 말해야만 사랑하는 줄 아나?”“사랑은 사랑한다는 말이 다가 아녀!” 연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엄동설한베란다에 널린 아내의 옷들이 으스스 떨고 있다돌연 떠오르는 얼굴몽땅 거둬서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넣는다밖에서 일하는 그가 한파에 몸이 얼면 안 되지몸이 얼면 마음도 얼어버릴건데······. 2022. 2. 8. 09:32구파발 우거 거실에서 착상국회의사당역행 전철 안에서 雲靜 초고

꿈결의 신라 천년

꿈결의 신라 천년 해돋는 토함산자락에 데칸고원의 정적이 들면 남산 석벽엔 불심의 눈물이 지고 고고한 반월성터에 신라낭도의 함성이 일면 계림숲에 은빛 백마가 비상한다. 고향을 그리다 꾼 꿈 새벽녘 눈 떠보니 포석정 천년 영화는 홀연듯 간 곳 없고 말없이 흐르는 서천만이 도도하구나. 1994. 1. 1 새벽 타이완 타이페이 政治大學 기숙사에서 雲靜 습작 *시집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에 수록된 시의 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