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소망 뒤늦은 소망 성인이 되면 키는 더 자라지 않는다 마음이라도 쑥쑥 더 자라면 좋겠네 중년이 되면 친구는 더 생기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나 많아지면 좋겠네 노인이 되면 쓸데없는 말만 많아진다 매사에 고맙다는 말만 더 하면 좋겠네 늙어 갈수록 살 날은 팍팍팍 줄어든다 세상에 빚졌다는 맘이 훌훌 일면 좋겠네 2021. 11. 4. 05:5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왜 사는가?/자작시 2021.11.04
세월아 먼저 가시게 세월아 먼저 가시게 걸음은 느려만 지는데 세월은 나이 드는 사람 놀리듯 마구마구 내달리는구나 시위 떠난 화살 처럼 코로나는 빨라서 생긴 병 기어코 가겠다는 세월 빨리 빨리 보내버리고 제 걸음에 맞춰 사세 팔 없이 느적느적 발 없이 엉금엉금 슬 로 우 하 하 하 슬 로 우 허 허 허 지구가 제정신이 든다 시간이 체하면 보폭도 줄어든다. 2021. 10. 23. 10:24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23
일생 일생 육체가 끌리는 대로 살다가 조금 철들면 본능을 이겨보려고 마음 내본다 에고와 도덕심 사이 번민과 갈등 속에 남중하는 장년의 해가 서산을 향한다. 나이 들어 갈마드는 후회와 반성 세월이 더 흘러 한 움큼 더 깨쳐도 이미 기력 쇠한 몸 躬行이 안 되어 단념과 무념 속에 안고 가는 회한들 그렇게만 살아도 장한 삶이지 이순이 되어도 고희가 넘어도 망팔, 망구가 되었는데도 習이 된 탐욕을 알아채지 못한다. 아 사바세계의 無明이여! 아아 탐진치 떨쳐내지 못하는 숙업이여! 덩그러니 혼자 놓인 불혹의 豫知 맵짜고 투미한 일생 오늘도 신나는 인생 2021. 10. 22. 06:29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22
위선사회 위선사회 피차가 다 해오는 거라서 서로 빤히 안다 그런데도 한쪽이 보은성 인사라고 비난하면 다른 한쪽에선 아니라고 잡아뗀다. 지들도 해놓고선 코드 인사라고 공격하면 상대는 코드 인사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다음번엔 공격과 방어만 바뀔 뿐 가식과 위선 넘치는 카르텔쇼는 계속된다. 이 보다 더 한 게 있다 대학교수나 국가기관장이란 거의 다 미리 내정해놓은 자를 뽑는다 “공정한 경쟁”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헛소리다. 나도 교수, 기관장을 대여섯 번 응모해봤지만 한 번도 내정해놓지 않은 적이 없더라 지난 날 굶어가며 뼈 빠지게 공부한 게 애석하고 비전을 썩히기 아깝다는 구실로 나중엔 두어 번 사람을 찾아가보곤 했었다 허나, 금밧줄 아닌 양심줄로는 어림없는 일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도 내겐 그 과거로 ..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16
엔트로피 세상사 엔트로피 세상사 모래, 바람, 생각, 사람 만사가 흩어지고 해체되는 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다. 유리가 깨어지면 원상으로 되지 못하고 종이가 찢어지면 도로 붙기 불가능하고 마음이 금가면 초심으로 가지 못하듯이 일체는 질서에서 혼돈으로 때 되면 가고 흩어진다. 깨고 깨어지고 뜯고 뜯기고 누르고 눌리다가도 인연 닿으면 다시 보는 인간사다. 꽃이 져서 꽃이 되듯이 바람 불어 비가 되듯이 비가 얼음이 되듯이 만물이 형질 나투어 회통하듯이 一體皆空 속 오직 언어만이 太虛로 산다 우주 빅뱅이 올 때까지는 2021. 9. 2. 12:53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16
립 서비스 립 서비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단톡방에 줄창 이 말만 올리는 이가 있다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누구든 존경하고 사랑한다니 성인의 경지다. 피 같은 자기 돈 떼먹고 도망간 자도 존경하는지 자기를 욕보이고 해친 자도 사랑할 수 있는지 당한 사람들에겐 뭔 홍두깨 소리일까? 성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먼저 할 일이 있다 아무나 무턱대고 존경하지 않는 일이다 누구를 함부로 사랑하지 않는 일이다. 번지수 틀린 설익은 존경과 사랑이 심한 모멸감에 몸을 떨고 있다 입이 있어 말은 할 수 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자기를 잃어 신음하면서 자기 속을 톺아보기도 벅찬 사바세계다. 2021. 9. 2. 12:44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16
세상 그릇 세상 그릇 인간들이 세상을 만들지만 세상으로 사람의 그릇이 정해진다. 백야처럼 밤이 밤이 아니어서 낮도 낮이 아니어서 별들이 파리하고 달도 핏기가 없다 꿈이 말라버린 삶 섬처럼 제각기 혼자임에도 사소한 일로 서로를 부정한다 혼자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이 들수록 모이면 남 얘기만 하거나 흘러간 지난 얘기만 반복한다. 인간들이 만든 세상에 낮밤이 뒤바뀌어 꿈들이 질식한 채 왜소한 인간들만 득시글득시글 2021. 9. 12. 12:49 雲靜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16
용서 용서 부질없는 탐욕인 게 뻔히 보였다 자기가 소개한 기획부동산 땅을 사지 않는다고 동생은 악다구니 쓰고 남남인 듯 소리쳤다 오빠는 수년간 연락을 끊고 살았다. 언젠가부터 동생은 오빠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오빠는 관심 없는 듯 전혀 응해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느날 동생이 정말 뉘우친다고 했다 그 동안 자기 욕심 때문에 주위 사람들 많이 마음 아프게 했단다 이제는 정말 다 내려놓고 살겠단다. 오빠에겐 사과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었다 진작 그 마음을 냈더라면 오래 가지 않았다. 오빠는 이제야 진실로 기쁘다 오빠도 사과한다 외면해서 미안하다고 오빠가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낫살 더 먹은 오빠는 이렇게 옹졸하게 산다 회개만 할 수 있다면 옹졸하게 살아도 좋다. 2021. 9. 21. 09:07 북한산 淸..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16
찰나 찰나 모레 있을 행사에 가 있다가 순간 섬광처럼 떠오른 생각을 놓쳤다 기승전결이 참한 시가 될 듯 한······ 예리한 칼로 명주실 끊는 그 순간 네 살 때 첫 가출한 달전엘 갔다왔다 삼세를 갈무리하는 이 아뢰야식의 실체란? 표층의식에서 一念이 휙 사라지자 심층의식에 쌓이는 찰나의 화석들 생각 놓쳐서 아깝다는 그 생각도 남지만 내겐 꽃이 될지 시가 될지 알 수 없는 일 삶은 매순간 손가락 한 번 튕기는 彈指 달랑 습자지 한 장의 인생 두께······. 2021. 10. 15. 00:2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15
淸河 장날의 외할매 淸河 장날의 외할매 시외버스가 설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행여 인천에 살러 간 큰아들이 내리나 해서··· 닷새마다 서는 청하 장날이면 괜스레 앉았다 섰다 하면서 오전 내내 몇 번이고 먼 산을 쳐다본다 산중에서 화전밭 일구며 사는 둘째딸이 혹 오늘은 재피 팔러 오지 않나 싶어서··· 땅거미 질 때까지 삽작문만 클클히 내다본다 시집 간 포항에서 장사하는 맏딸이 빈 고기반티 이고 "엄마!"하고 들어설까 해서··· 이러구러 긴 여름 하루해가 지려할 때 뒷동산 소나무에 매인 누렁이가 도 번 운다 음매에 음매에 초갓집 뒤 푸른 대숲에 실바람이 워썩대고 뻐꾹 뻐꾹 뻐꾹새 소리 속절없다. 딸이 사는 서산으로 붉은 해가 뉘엿뉘엿할 제 정지에서 나직이 새어나오는 한숨 소리 칠순 노파 얼굴에 주름이 한 뼘 더 패인다 물 .. 왜 사는가?/자작시 2021.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