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한국전쟁 22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6·25한국전쟁 인식 변화의 정치학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6·25한국전쟁 인식 변화의 정치학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이 달 10월 19일로서 중공군(중국은 국가 군대가 없고 중국공산당에 소속된 군이어서 ‘중국군’은 잘못된 용어임)이 한반도에 발을 디딘지 75년 되는 해다. 이날 제1진으로 25만 748명의 중공군 군대가 북한으로 극비리에 잠입해 들어왔다. 그런데 최초로 한국땅을 밟은 것은 그보다 3일 전인 10월 16일 밤 정찰 임무를 띠고 먼저 잠입한 ‘선발대’ 제12사단 제370연대 병력이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중공군의 한반도 파병이 개시된 정확한 날짜는 1950년 10월 16일이었다. 참전 후 중공군은 군사적, 정치적 남북통일을 목전에 둔 한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을 저지함으로써 통일을 가로 막았다. 1953년 7월 휴전으로..

개악된 6.25의 노래 가사, 원상회복 필요!

개악된 6.25의 노래 가사, 원상회복 필요! 김일성이 도발한 6.25한국전쟁은 남북한 사이를 철천지 원수로 만들었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로 인한 상처와 인식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없고 남북한 간 평화가 지속되어도 그런 인식이 삭히기 어려운데 북한이 지금까지 수많은 도발을 일으켜오고 있으니 치유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대북 인식에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지금 40대 이상의 기성 세대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6.25전쟁의 노래를 통해서 이런 인식을 지속시켜왔다. 그런데 원래 우리가 어릴 때 배우고 자주 불러온 6.25전쟁의 노래 가사가 전혀 뚱딴지 같이 바뀌어져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도발은 변함 없는데 북한을 바라보는 6.25의 노래 가사 내용은 북한의 남..

‘인천상륙작전’의 최초 예견자―雷英夫인가? 毛澤東인가?

‘인천상륙작전’의 최초 예견자―雷英夫인가? 毛澤東인가?한국전쟁 발발 후 毛澤東(1893~1976)은 상상 외로 이미 7월 초에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예견하고 그런 생각을 북한 김일성에게 전달해 미군 상륙에 대비하라고 당부했지만 김일성은 그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그런데 모택동 사후 한참 뒤에 당시 주은래(1898~1976)의 군사 참모들 중 雷英夫(1921~2005)라는 이가 자신의 회고록을 내면서 자기가 맨 처음으로 인천상륙 작전을 예견해서 주은래와 함께 모택동에게 보고한 것으로 기록해놨다. 이것은 그가 자기의 공을 내세우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고증한 논문을 중국어로 2000년에 북경의 유력한 학술지에 실었다. 한국학계와 중국학계 등을 포함한 ..

한국전쟁 시기 미국 수뇌부는 원폭 사용 고려했다!

한국전쟁 시기 미국 수뇌부는 원폭 사용 고려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왜 원자폭탄을 사용하려고 했는지, 또 왜 사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는 연구자들에게 오랜 관심사가 되어 왔다. 맥아더 원수는 1951년 4월에 트루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유엔군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는데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맥아더의 전쟁 전략이 트루먼의 세계전략에 상치되었고 종종 트루만 의중에 배치되는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중공군에게 밀려 후퇴하는 등 고전하게 된 상황에서 중공군을 제압하기 위해선 압록강 너머 동북지역에 있던 중공군 병참 등의 후방기지들을 공격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 핵무기까지도 사용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전쟁확대론이었다. 반면, 트루먼 대통령은 그럴 경우 소련의 개입을 우려했고 전쟁이 제3차 대전으로 확대되..

종전과 휴전

종전과 휴전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며칠 전 있은 대선 후보들 간의 TV토론 중에 '종전'선언'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 올라왔다. 아래와 같다. 이재명이 안보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식한지는 지나 금요일(11일) 밤 대선후보 4자토론회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탈북 외교관인 태영호 의원에 따르면 이재명의 말을 듣고 김정은도 웃었을거라고 한다. 재명(在明이 아닌 在冥: 어둠 속에 있다는 뜻)은 종전선언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라는 윤석열의 물음에 '종전선언은 사실상의 종전을 말하는 것이고 정전은 법률적 용어다' 라고 답했는데 이 말은 개념파악이 전혀 안 된, 다시 말하면 뒤죽박죽된 在冥의 안보관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종전선언은 현재 종전(終戰)상태가 아니므로 전쟁을 끝내는 선언(declara..

또 다시 한국전쟁 역사를 왜곡한 시진핑!

또 다시 한국전쟁 역사를 왜곡한 시진핑! 시진핑 중공 주석이 또 한번 한국전쟁의 역사를 왜곡해서 한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작년 11월 11일 중공 제19屆 6중전회 두 번째 회의에서 통과된 '역사결의'(中共中央关于党的百年奋斗重大成就和历史经验的决议)에 대한 11월 30일의 부연설명과 지시(同제목의 說明, '以史爲鑒, 開創未來, 埋頭若干, 勇毅前行')를 내린 자리에서였다. 중공 당내 사실상의 종신제인 3연임을 합법화 한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면서 당 노선을 정리하고 자신을 毛澤東과 동급으로 올려놓은 것에 대해 반발과 잡음이 없도록 당내 기강을 잡는 차원에서 이뤄진 이번 시진핑의 발언(당내 분파를 가차 없이 처리하라는 지시)은 그저께 나온 중공의 이념과 이론을 다루는 기관지 중의..

아직도 6.25한국전쟁이 내전이라는 자들은 누군가?

아직도 6.25한국전쟁이 내전이라는 자들은 누군가? 김일성의 6.25남침전쟁을 내전이니 하는 헛소릴 해대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고 해서 오늘 9.28서울수복 기념일에 6.25전쟁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탭니다. 6.25전쟁이 북한 김일성이 대남 기습 공격을 감행한 명백한 "남침 전쟁"임에도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김일성의 남침이 아니라는 의미로 "내전"이라느니, 당시 해방공간의 38도선 상에서 남북한 군 사이에 빈발하게 총격전이 벌어졌으니 나중에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먼저 남침했다고 해도 38도선 상에서의 총격충돌은 그 동안 일상사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굳이 누가 먼저 쏘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이런 발언 혹은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 미국의 한국 현..

영덕기행② : 장사상륙작전을 아는가?

영덕기행② : 장사상륙작전을 아는가?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원수가 총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이 결행되기 이틀 전, 그러니까 9월 13일 동해안에서 있었던 상륙작전을 아는가? 미군과의 의견조율 하에 급조된 소규모의 한국군 병력과 학도병들이 주가 된 "장사상륙작전"이다. 사람들은 인천상륙작전은 알아도 이 작전의 일환으로 동해안에도 상륙작전이 있었는지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영덕에 간 김에 장사해안과 그 해변에 마련돼 있는 상륙작전 기념지 및 Landing Ship Tank, 즉 LST-125 함선인 문산호(모형)를 답사했다. 1943년에 건조된 문산호는 7월 27일 PC-701함과 여수 철수작전에 투입돼 작전을 수행한 함정인데 아주 오래 전에 퇴역했다. 지금 장사 해변에 기념관용으로 전시돼 있는 문..

6.25전쟁에 대한 중국학계의 인식

6.25전쟁에 대한 중국학계의 인식 중국은 6.25전쟁을 어떻게 볼까? 며칠 전, 친구들의 단톡방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은 질의응답이 있었다. 우연히 한 친구가 중국은 한국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기에 그에 대해 답을 해준 내용이다. 답을 보고난 뒤 질의를 한 친구와 다른 친구도 한 마디씩 코멘트를 했고,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기왕에 쓴 글인데, 친구들끼리만 보고 덮기엔 아깝다 싶어 블로그에 올린다. 중국 역사학계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이 궁금했었는데, 그들이 보는 전쟁의 의의, 중공군의 참여나 전쟁의 승패에 대한 평가 등등은 어떠한가? 아 대단히 좋은 질문이네! 내가 보는 관점에선 답은 대략 아래와 같아. 첫째, 중국은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북한 간의 내전으로 벌어진 것이 한국전..

'정의의 진격' 제1부 다큐멘터리 영상

'정의의 진격' 제1부 다큐멘터리 영상 ‘정의의 진격’은 6.25전쟁 중인 1951년 국방부 정훈국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화다. 감독 한형모의 주도 하에 김학성, 심재흥이 촬영했고, 편집은 양주남이 맡았다. 아래에 올려놓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전쟁 당시에도 입수가 쉽지 않은 자료들이 많이 등장한다. 북한군이 자신들을 촬영한 내용도 있고, 어떻게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한군을 촬영한 장면도 많이 나온다. 6.25전쟁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나, 6.25전쟁을 자세히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다 같이 귀중한 자료다. 국군과 유엔군의 평양과 원산, 탈환 직후 평남 숙천 지역의 공수작전까지 촬영돼 있다. 끝까지 시청하면 6.25전쟁 초반기 상황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2021. 4.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