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대한 중국학계의 인식
중국은 6.25전쟁을 어떻게 볼까?
며칠 전, 친구들의 단톡방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은 질의응답이 있었다. 우연히 한 친구가 중국은 한국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기에 그에 대해 답을 해준 내용이다. 답을 보고난 뒤 질의를 한 친구와 다른 친구도 한 마디씩 코멘트를 했고,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기왕에 쓴 글인데, 친구들끼리만 보고 덮기엔 아깝다 싶어 블로그에 올린다.
중국 역사학계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이 궁금했었는데, 그들이 보는 전쟁의 의의, 중공군의 참여나 전쟁의 승패에 대한 평가 등등은 어떠한가?
아 대단히 좋은 질문이네! 내가 보는 관점에선 답은 대략 아래와 같아.
첫째, 중국은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북한 간의 내전으로 벌어진 것이 한국전쟁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은 학교에서나 언론에서나 변함없이 이렇게 가르쳐 오고 있다.
둘째, 중국은 미국이 38도선을 넘어서 북침했기 때문에 같은 공산주의 형제 국가인 북한을 도우기 위해 정규군이 아니라 인민들이 자원한 군대를 보내서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군이나 중공군이라고 부르지 않고 “人民志願軍”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지. 그래서 그들은 이 전쟁을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는 의미의 “抗美援朝戰爭”이라고 칭한다.
셋째, 중국은 미국을 “제국주의의 두목”이라고 보고 미국이 한반도에 미군을 보낸 최종적인 목적은 남한의 북한통일 만이 아니라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침략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네. 중국의 참전은 이 같은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전쟁”이라고 불렀어. 이 주장은 모택동의 판단과 평가인데 모택동의 주관적인 이 주장이 곧 중국공산당의 전체 당론이 되었다.
넷째, 중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북한으로 쳐들어와서 중국을 공격하려고 온 미군의 침략을 물리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중국은 이 전쟁으로 북한의 김일성 정권을 기사회생시켰다고 보고, 이때부터 북한정권에 대한 후견인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섯째, 당내 고위층 인물들 대부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병해서 개입하기로 한 모택동의 결정이 너무나 “영명한 지도”였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곧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하고 난 뒤 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모택동의 개인숭배의 사상적 근거 중의 하나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한국전쟁이 모택동의 중공 당내 위상과 권위를 크게 높인 셈이다.
일곱째, 이 전쟁으로 모택동은 수많은 무고한 인력을 살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성은커녕 인명경시 사상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공군이 현대전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력과 전투력이 결여돼 있다는 사실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중공군을 현대화시켜야 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부터 중국이 소련의 군사제도를 대거 받아들이면서 소련군을 중공군이 발전해야 할 모범으로 삼은 배경이었다.
여덟째, 중국은 미국과 완전히 결별하고 소련과 협력하면서 스탈린의 인정 하에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소련과 분점해서 소련은 유럽에서, 중공은 동아시아에서 지도하기로 했는데, 중국은 베트남, 북한, 캄보디아, 라오스 등등 아시아 공산주의국가들의 맹주가 된 계기가 되었다.
아홉 번째, 거시적으로 보면 한국전쟁은 중국이 소련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소련으로부터 경제적, 군사적, 이념적 지원을 많이 받고자 노력한 역사적 배경이 됐다.
열 번째, 중국의 고립이 시작되면서 서방세계와 완전히 단절되고, 특히 남한과는 근 40년 가까이 교류가 단절됨으로써 완전히 적대 국가로 지내게 된 배경이 되었다.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내용들이다. 고맙네.
아 참, 내가 질문의 가장 핵심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 했구먼. 중국역사학계도 위와 같이 평가하고 있다. 위 평가는 중국공산당의 평가를 내가 정리한 것이지만 중국 내 사학자들이 위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자기 개인의 생각을 밝히는 용기들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간혹 중국공산당의 위와 같은 당론에서 벗어나 다른 평가를 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지만 결국 그러다가 그 중 어떤 학자는 감옥으로 직행 됐지. 내가 잘 아는 광동 광주의 명문 중산대학 교수 한 명도 그렇게 구속이 되었어. 지금 10년이 훨씬 넘어도 풀리지 않고 있어. 나도 그 학자의 구명운동에 서명하고 했지만 지금도 행방이 오리무중이야. 참으로 무서운 나라야.
그래, 그런 후진적 사고를 가진 나라가 세계 패권을 잡겠다고 설치는 건 우스운 일이지.
중국어를 잘 몰라서 아쉽다. 물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10여년 전, 당시의 서 박사 모습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장수의 모습이랄까...휴일 잘 보내시게.
그에 비하면 대만은 훨씬 중국보다 앞서 있어요. 한 마디로 남한과 북한의 수준차이라고 보면 된다. 대만에서는 절대 권력자였던 장개석에 대한 비판은 벌써 4~50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중국 대륙에서는 아직도 모택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드러내놓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지.
자연과학은 몰라도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에선 이런 상태에서 무슨 높은 수준의 학문 발전을 기대할 수가 있겠나? 이념, 사상과 직결되는 중국대륙의 정치학, 외교 및 국제관계학, 국제정치, 군사, 문학, 역사, 철학 등등의 학계에서 나오는 결론은 천편일률적이야. 다양성도 없지만 심도도 일천하지! 내가 중국에 가서 그들에게 강연도 하고 큰소리 칠 수 있는 게 이런 배경과도 무관하지가 않다.
2021. 4. 25. 09:33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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