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인물 및 리더십 49

9월 14일 오늘의 역사 : 다산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난 날

9월 14일 오늘의 역사 : 다산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난 날 1818년 9월 14일 오늘, 재주와 지식이 출중해서 시기와 모함을 받아 형제가 처형되고 본인은 유배까지 당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유배가 다대한 연구업적을 내게 된 계기가 돼 사후엔 조선 최대의 지식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다산 정약용이 18년 유배에서 풀려났다. 이 외에 1969년 오늘 서울에선 공화당의 3선개헌안과 국민투표법안이 변칙 날치기 통과되던 때 영동과 호남지방에선 이틀에 걸쳐 퍼부은 홍수로 사망 353명, 실종 55명, 이재민 7만여 명이 발생했다. 이재민이 7만 명이나 생겼다니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는 늘 민생과 별개로 돌아간다. 오늘부터 시작된 한가위 명절, 보름달처럼 밝고 청아하게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https..

박경석 장군(예)과 전두환의 관계

박경석 장군(예)과 전두환의 관계 박경석 장군(예비역 육군 준장)이 밝힌 그와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관계를 소개한다. 박경석 장군이 쓴 이 글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길지 않은 이 글이 두 사람간의 개인적 관계 뿐만 아니라 전두환의 군생활 행적의 일면까지를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본고 맨 아래에 박 장군의 글을 첨부해놨다. 박경석과 전두환 두 사람은 1964년 진해 육군대학 정규과정 클래스메이트로 만나 전자가 예편하고 후자가 대통령이 된 뒤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거의 20여년 간 지속됐다. 박 장군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12.12군사반란 후,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이 1980년 9월 제11대 대통령..

9월 16일 오늘의 역사 : 화가 이중섭 작고

9월 16일 오늘의 역사 : 화가 이중섭 작고 화가 이중섭은 사망 전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다가 끝내 서대문구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간염에서 악화된 간암이 사인이었다. 애석하게도 마흔 살이 넘지 않은 나이였다. 어떤 분야든 간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열정을 뿜을 수 있는 연령대에서 멈춰 섰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1916년 9월 16일에 태어나서 1956년 9월 6일에 사망했으니 딱 열흘 빠진 40년을 살다 간 셈이다. 이중섭은 내가 비록 그림으로 밥벌이를 하는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화가로서 근현대 한국의 서양화가들 중에 다섯 손가락으로 꼽는 작가다. 이 반열에 드는 작가로는 북한엔 변월룡, 남한엔 이중섭 외에 박수근 등이 있다. 한때 북한이 천재 화가로 내세운 변월룡에 관해선 계기가 되..

8월 25일 오늘의 역사 : 니체와 징기스칸의 사망

8월 25일 오늘의 역사 : 니체와 징기스칸의 사망 8월 25일 오늘은 지난 인류 역사에서 깊고 길게 족적을 남긴 두 사람이 사망한 날이다. 몽골인들이 위대한 영웅으로 숭앙하는 징기스칸과 독일 철학자 니체가 그들이다. 징기스칸은 아시아를 넘어 멀리 러시아와 헝가리까지 침공해서 좋든 나쁘든 인류의 동서회통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니체 역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당시 유럽 지성계에 엄청난 사상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훗날 유럽을 넘어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인들에게까지 사상적 회통에 일조했다. 나도 과거 20대의 젊은 시절 니체의 영향을 받은 바 있지만 오늘 여기선 그가 남긴 사상적 편린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 징기스칸의 죽음에 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그는 어떻게 죽었고 그의..

영웅 본색 : 누가 진짜 영웅일까?

영웅 본색 : 누가 진짜 영웅일까? 영웅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오도되고 전도된 영웅들이 너무나 많다. 굳이 옛날이나 현대의 전쟁이 아니라도 이런 저런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해서 이름이 알려진 자라든가 혹은 특정 분야에 공을 세운 자들도 영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들을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러한 업적과 성과를 내거나 그런 자리에 올라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이겨야 가능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아온 습관, 사고방식, 행동양식, 감정 등등을 모두 변화시키고 자기를 극복해야만 되는데 그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왠만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노력은 없이 술수와 요령을 부리거나 자신의 노력이 아닌 부모나 외적인..

김민기 斷想

김민기 斷想 '아침이슬', '늙은 군인의 노래'라는 노래가 나온 게 우리에겐 고통이자 축복이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 '아침 이슬'의 작곡가이자 비운의 가수 김민기를 기억하시겠죠? 김민기는 서울 미대를 다녔지만 대학 시절 그림 그리기보다 음악에 더 심취했다고 하네요. 그는 정말 콩나물 대가리도 공부한 적이 없었는데 그냥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럼에도 주옥 같은, 동시에 역사성 있는 가사에 나직한 톤의 독특한 곡들을 뽑아 낸 걸 보면 하늘이 내린 천재임에 틀림 없어 보이네요. 그가 호소력 있는 저음으로 부른 노래들인 상록수, 아침이슬, 봉우리, 백구처럼 가슴 시린 노래들을 떠올리면 되겠네요. 그런데 타고난 성품 탓인지, 아니면 1980년대 신군부에 호된 핍박을..

이재명, 쇼로 국민 기만, 우롱?

이재명, 쇼로 국민 기만, 우롱? 주연 : 이재명 조연 : 이재명 하수인들 엑스트라 : 지지자들지난 대선 때였던가?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자신이 어릴 때 소년공을 하면서 자랐다는 성남시 상대원동 소재 로타리에 가서 선거 유세를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어릴 때 불우한 환경 속에 자라면서도 소년공을 하며 꿋꿋하게 공부를 하여 대학도 가고 사법 고시까지 패스했다는 '성공 신화'를 자랑했다. 그러면서 먼저 가신 모친과 고생한 그 시절을 회상하니 눈물이 난다면서 운다고 울었는데 누가 봐도 눈물은 안 나오는 것 같았다. 우는 시늉만 하는 거 같아 보였다.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이야 눈물이 있건 말건 상관 없이 환호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재명의 유세 모습을 찍은 측은 그가 "끝내 펑펑 울었다"고 구라를 쳤..

퉁두란이라는 인물을 아는가?

퉁두란이라는 인물을 아는가? 퉁두란(1331~1402)은 여말선초에 이성계를 도와서 조선 건국에 일등공신(좌명개국공신)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퉁두란은 발해가 멸망한 뒤 고려 초기부터 고려인들과 뒤섞여 여진인들의 거주지가 된 동북의 함경도 지방 일대에 걸쳐 거주한 동여진 출신이었는데, 여진족 시절의 성은 퉁(佟)이었고, 이름이 쿠룬투란티무르(古倫豆蘭帖木兒)였지만 보통 '퉁두란'으로 불렸다. 그 뒤 그는 조선에 귀화한 후 '두란'으로 개명했고 이름은 그대로 두고 태조와 의형제가 된 뒤 성씨를 받아 이씨 성을 붙여서 '李豆蘭', '李之蘭'으로도 불렸다. 그의 인물됨과 삶의 역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이두란은 인연을 소중히 했을 뿐만 아니라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신사도를 갖춘 인물..

정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백전 노장 박경석 장군 인터뷰

정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백전 노장 박경석 장군 인터뷰 https://youtu.be/_eS4kiv0Oso 육사 2기 출신 박경석 장군은 군생활시 신군부의 전두환 세력으로부터 자기의 요구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끈질긴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인 정의를 지키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참군인이다. 전두환은 광주 5.18시위 진압작전에 투입한 자신의 부하들에게 모두 무공훈장을 상신해줄 것을 당시 육군본부 인사부장이었던 박경석 장군에게 요구했지만 박 장군은 일언지하에 거절한 바 있다. 그 뒤 그는 신군부세력으로부터 교묘하게 픽박을 받다가 결국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고 준장을 마지막 계급으로 군을 예편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군 예편 후 오히려 군에서 별을 더 달아 소장이 되고, 중장이 되는 것..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활쏘기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활쏘기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인류가 활과 화살을 사용한 것은 대략 기원전 2만 년경 구석기시대부터였을 거라고 추정되고 있다. 활은 길이가 1m 전후 정도 며, 활촉 무게는 대략 11.25g, 화살은 3.75g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유럽, 북아프리카, 동아시아의 각종 벽화와 ‘활쏘는 헤라클레스’상 등의 미술품이 말 해 주듯이 고대 동서양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기였다. 활은 총과 대포가 출현한 근대 이전까 지 근접전에서 원거리의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원시 무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 조상은 유달리 활을 잘 쏘았던 모양이다.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魏書) 제30 동이(東夷)전에 그런 기록이 있고,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나와 있듯이 고구려인은 말 등에서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