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문의 시 17

아이 나름인 걸

아이 나름인 걸 일부만 보고 전체인양 말하는 게 대세다 자고로 대전제의 오류, 일반화의 성급함은 성인이라 해서 없는 게 아니다 예수는 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 했다 水雲은 하늘에 제일 가까이 있고 하늘 뜻을 가장 잘 아는 존귀한 존재가 아이란다 어떤 시인은 어린이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 어른들은 자기주장만 고집하거나 자기 욕심만 차리고 거짓말투성이어서 어린 아이가 순수하니 닮아야 한다면서.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예나 지금이나 아동들 중엔 못된 애도 있다 자신의 잘못은 늘 남 탓으로 돌리고 커서 자기 부모만큼 잘살까 벌써부터 걱정하는 초등학생 돈 앞에선 거짓말도 예사로 한다 급우 농간하고 왕따시키는 몹쓸 애도 있다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가 표징이다 못된 어른은 그런 애들이 자라서 ..

루앙프라방의 새벽

루앙프라방의 새벽 어둠이 물러가기 전 탁발승 행렬이 수행 소요로 전생 업보들을 풀어낸다 저마다 사연들은 묵언에 묻어두고 나눔과 재분배로 잠시나마 펴지는 사바세계. 존재에 대한 연민에 붉어지는 눈시울 보시로 찰나나마 넉넉해지는 자비심이 하늘빛 물들이는 메콩강의 물안개처럼 이방인의 영혼을 촉촉이 적신다. 날렵히 뻗은 용마루 위로 동이 트는데 동자승들이 치는 法鼓의 법음, 사원 앞 꽃 파는 소녀의 미소, 아침 시장의 웃음 짓는 아가씨, 부처의 應身들이 세상소리를 보고 있다. 누구에겐 오지 않는 루앙프라방의 새벽은 경건함과 자기성찰의 바닥 모를 늪이다. 2023. 2. 5. 05:01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雲静 위 졸시는『純粹文學』통권 362호(2024년 1월)에 게재됐습니다.

대단한 가문

대단한 가문 뉘집인진 모르겠다만 대단한 가문이다 후손들이 저리도 조상을 잘 모시니. 중시조인 듯 봉분묘가 맨 위에 자리하고 그 아래로 차례차례 후대 조상 비석들이 묘들과 함께 빼곡히 들어서 있다 땅속 파고들다 만 벙커버스터 미사일처럼 여러 기가 산자락 곳곳에 꼿혀 있다. 공명도 좋고 人死留名도 좋다지만 혈이 뚫린 땅이 아프지 않을까? 말 없는 신음 소린 듣지 못하는가? 세월 지나면 다른 후손 묘비들은 어쩌나? 산자락 아래 마을에까지 앉히려나? 참으로 대단한 집안이다. 누구나 남기고 가는 한 줌 가루 동해바다에 뿌린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따라 누울 자리도 그곳이다. 2022. 8. 27. 15시경 직관 8. 28. 04:02 옮겨씀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 위 졸시는『純粹文學』2023년 6월호에 ..

자존의식

자존의식 나훈자는 나훈자일뿐이다 나는 어쩌다 가끔 그의 노래를 들을 뿐 열광하거나 쫓아다니는 광팬은 아니다 가요는 기능이어서 아무리 잘 한다해도 관심은 가하지만 추종까지 할 건 아니다 인기 가수랍시고 그를 떠받들 것까진 없다 노래는 뛰어나도 사는 건 별개다 그냥 허물 적지 않은 한 인간일 뿐이다 나훈자는 나훈자고, 나는 나다. 폭팬이 되어 마음을 뺏앗기기보다 혼자라도 생각을 지키는 존재여야 한다 독립된 자아가 자존적 인간관계를 맺게 한다 그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그게 나라까지 견실히 지탱시킨다. 정치인들도 거개가 용속한 자일 뿐 지도자는커녕 동기회장도 못 될 인물들 선한 시민들보다 못한 자가 태반이다. 골빈당의 팬덤作黨이 많은 걸 망치고 있다 지배욕의 다른 형태인 그게 사람을 좀먹는다 대통령은 대통..

세상 인심 Ⅱ

세상 인심 Ⅱ 육순 중반에 친구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회사 운영하면서 받은 거라서 더욱 값지다 이 기쁜 소식을 동기회 밴드에 올렸다 헌데 몇날 며칠이 지나도 누구 하나 축하 댓글 다는 이가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귀찮아서 그런지 돈도 벌고 박사도 된 게 배가 아파서? 축하댓글 달면 자신이 아부하는 걸로 비칠까봐? 학위취득 소식 축하글을 올린 자가 미워서? 정말 이유를 알 수 없구나! 인간성 나쁘지 않고 인심도 잃지 않았다 동기, 동문회장 맡아 기천만 원씩 쾌척도 했다 밥 사고 술 살 땐 왁자지끌 많이도 모였다 염량세태는 인간사 고금동서의 진리다. 동기라 해도 속을 알 수 없는 건 매한가지 인간이란 게 원래 그런 존재인지 알고도 서로 모른 체 눈치만 살핀다 남들 앞에선 못본 체 하고 뒤로는 친한 척한다 자..

감은사지 석탑

감은사지 석탑 좌우 대칭의 3층 석탑이여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상륜부 제 살로 번뇌를 태웠구나! 천년 영화는 온데 간데 없고 가을 들녘에 선 허수아비마냥 야윌대로 야윈 불심만 남았네. 허물 벗어 들숨날숨 삼매에 빠져 육신의 거죽 태워 빛나는 샛별처럼 은하의 기를 온몸으로 받아서 찬연히 빛날 무구광정대다라니여, 효심이 발원한 대왕의 호국 感恩이여 이 땅을 영원히 고르게 비출지어다. 2022. 7. 8. 23:4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