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문의 시 17

그리움이란 이런 건가요?

그리움이란 이런 건가요? 오늘은 새벽부터 그리운 얼굴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순간 눈물이 팍 쏟아진다. 바깥은 봄비에 초목과 산야가 촉촉히 젖어 있고... 강진에서 멀리 흑산도 쪽으로 수평선만 하염없이 바라본 다산 정약용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다. 그 섬은 유배 간 형 약전이 사는 절해의 고도였다. 그땐 바닷길에 막혀 못 갔지만, 지금은 역병에 막혀 있다. 오늘 이 땅엔 오늘 하루만 해도 35만 명이나 확진됐다. 내가 나고 자란 포항엔 형이 있다. 외롭게 사는 형이 자주 처연하게 부르는 '동백꽃 피는 항구'만 하염 없이 듣고 또 듣는다. 2022. 3. 13. 10:26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위 생각을 아래와 같이 시로 옮겨봤다. 그리움 새벽부터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그리..

메시아

메시아 칠흑 속 어둠들이 어둠을 먹어치워 남은 한 줄기 빛 마저 혈이 막혀 신음한다 속고 속이다 자신까지 속이게 되는 穢土 독초인들 뿌리 내릴 수 있겠는가! 개토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믐날 밤 푸른빛 초승달이 밭아도 어제도 오지 않았고 오늘도 기척이 없다 무수한 내일들은 늘 오늘 같아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역시나 돌아선다 신이 죽었다는 게 정말 맞는 모양이다. 오지 않아도 기다림은 죽여버리지 않는다 당신들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기다리는 것이라도 있는가? 2022. 2. 21. 06:2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静

어떤 시인의 간구

어떤 시인의 간구 시인은 여느 뭇사람이 아니다 언어 조탁가이자 화가요, 음악가다 시가 색 없는 그림, 소리 없는 노래지만 시인이 정말 아름다운 존재인 까닭은 순정한 영혼을 빚어내기 때문일 터 시가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에도 입과 몸이 따로 노는 시인들이 적지 않다 시는 도덕군자 같아도 사는 건 위선군자다 말과 행동이 다른 따로국밥 시인이 아니라 인간다운 사람이 진짜 시인이다. 비굴하게 변명하지 않는, 항상 억울한 약자 편에 서고자 하는, 위험에 처한 이를 보면 몸을 던지는, 부귀영화를 뜬 구름으로 보는, 사는 것에 구차하게 연연하지 않는 사람 부족한 자비심에 늘 자책하는 그런 사람 반나절을 살아도 시인으로 보다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2022. 2. 9. 11:5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사랑

사랑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맞아요?" 이따금씩 투정을 부리는 아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난 I love you"를 입에 달고 사는 양키가 아니거든! "꼭 사랑한다고 해야만 사랑한다고 믿나?" 사랑은 사랑한다 한 마디 말이 다가 아녀! 때는 연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엄동설한 베란다에 널린 내의들이 꼼짝없이 떨고 있다 몽땅 거둬서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넣는다 바깥의 아내가 한파에 몸이 얼면 안 되지 몸이 얼면 마음도 얼낀데······. 2022. 2. 8. 09:32 구파발 우거 거실에서 착상 국회의사당역행 전철 안에서 초고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