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84

항도 초등학교 제9회 동기들과 함께한 가을 나들이

항도 초등학교 제9회 동기들과 함께한 가을 나들이 정말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기회 친구들과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같이 간 친구는 회장과 총무를 위시해서 열 네 명이었고, 행선지는 포항에서 멀지 않은 울산의 대왕암! 조금만 더 늦게 갔으면 단풍이 많이 떨어졌을 것 같고, 겨울로 가는 길목의 해풍도 더 거칠 것인데 그러기 전에 가서 시기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가 돌아오고 난 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우리가 간 울산 그 지역이 해안 강풍이 엄청나게 불어닥친다고 한다. 누가 이 날을 택했는지 선견지명이 있어 가히 미아리고개에 대나무 깃대를 꼽아도 되겄다! 나는 처음에 대왕암이라 해서 감포에 있는 문무왕의 수중 왕릉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보니 문무왕의 왕비가 잠든 곳이었다. 같은 해역은 아니지만 부부..

고향의 氣와 나

고향의 氣와 나 氣란 보통 자전적 의미로는 “활동하는 힘”, “숨 쉴 때 나오는 기운”을 말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기의 개념은 약간 다르다. 16세기 말부터 전래된 서양의 종교와 과학의 영향으로 큰 변화를 겪었지만, 기는 보이는 물질세계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작용과도 관련돼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보통 원리, 근원, 본질로 인식되는 理에 반해 그것이 드러나는 현상, 작용, 물질 등으로 정의된다. 기라는 건 서양인들에게는 없던 개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기”라는 단어도, 관련된 말도 없었다. 그들에겐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쓰고 있는 “기를 받는다”, “기가 막히다”라거나 “기가 약하다” 따위의 표현들을 서양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번역을 해줘도 바..

서상문의 가출

가출 Ⅰ 소싯적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추억이 많고 적을 뿐이고, 기억이 옅고 강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또 어릴 적에 집을 나간 가출 추억도 있을 수 있다. 나에게도 유년시절 여러 차례 결행(?)한 가출 추억이 있다. 추억들 중에 잊어지지 않는다. 흔치 않은 사건들은 유달리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니고 너댓 번이나 가출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약 6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가출들을 낡은 흑백사진처럼 선연히 기억하고 있다. 4~6살 사이에 3번을 가출했고, 나머지 한 번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첫 번째 가출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다. 미필적 고의로 일어난 일이었다. 어떤 일로 부모님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나서 그 길로 가깝지 않은 포항 기차역으로 걸어가서 기차를 타고 할..

아버지의 삶과 아들

아버지의 삶과 아들 행동은 자신의 성격과 생각의 반영이다. 크게는 한 사회, 한 민족의 문화적 습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자기 운명을 결정한다. 나는 우유부단하고 패배적인 생각에 젖어 사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또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도 싫어한다. 어떤 일이든 신중하게 결정하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강단 있게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한때 모험과 도전의식이 충만한 시절,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간 그 좋다는 언론사 기자직도 근무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30대 초반에 미련 없이 던져 버렸다. 그리곤 단돈 50만 원만 달랑 들고 유학길에 나선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의 선친은 내가 싫어하는 성격 여러 개를 한 몸에 모아놓은 분이셨다. 나는 아버..

을사늑약 체결의 역사적 현장 중명전 참관

을사늑약 체결의 역사적 현장 중명전 참관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조약을 체결한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을사늑약에 황제의 국새를 찍어준 이완용(1858~1926) 등등 5명의 이른바 ‘을사오적’이라는 친일파 매국노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을사늑약이 어느 곳에서 체결되었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서울 중구 덕수궁 뒤편의 중명전(重明殿, 사적 제124호)이 바로 을사늑약이 조인된 역사의 현장이다. 오늘 오후, 국제펜한국본부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문학기행에 참여해서 중명전을 찾게 됐다. 코스는 덕수궁, 퇴계의 옛 집터, 김장생 생가 터, 서울시립미술관, 배재학당 터, 배재학당박물관, 아펜젤러가 세운 정동교회, 중명전, ..

인연 Ⅳ

인연 Ⅳ 인연이란 마음에 새겨진 마음의 도장인 모양이다. 마음속에 인주로 선명하게 찍혀 있기 때문일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인연이 있다. 당사자들이 원하는 바대로 이뤄지는 것만 인연이라고 할 순 없다. 특히 이성 간의 인연은 만남의 지속이나 결혼의 성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에서 몸은 서로 떨어져도 마음이 끊어지지 않으면 그 또한 인연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인연의 대상이란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강도나 진폭이 다른 주관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나에겐 인연이 있다거나, 인연이 없다거나 할 때 그것은 성사에 초점이 맞춰진 건 아니다. 인과 연 그 자체를 말할 뿐이다. 지금까지 나를 거쳤거나, 아니면 스쳐 지나갔거나 한 수많은 인연들 중에 나는 한 인연을 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

자유의 여신상에서 '자유'를 사유하다!

자유의 여신상에서 ‘자유’를 사유하다! 뉴욕! 세계경제의 심장, 금융의 메카이자 세계를 움직이는 곳!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제사 이 도시를 찾았으니까 말이다. 생애 첫 방문이다. 이튿날 날이 밝자 나는 바로 뉴욕의 상징, 아니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부터 찾았다. 자유의 여신에게 고하고 싶은 일종의 신고식을 할 겸해서 '자유'를 추념하기 위해서다. 이 동상의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치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지만 통상 ‘자유의 여신상’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일찍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 여신상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기회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대서양에서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왼편이자 뉴욕과 뉴..

황희 정승 묘소에서 황희를 다시 본다!

황희 정승 묘소에서 황희를 다시 본다! 일요일 오후, 짧은 겨울 해가 서산으로 막 쓰러지기 시작할 때 나는 아내와 함께 파주시 소재 황희(1363~1452) 정승의 영정이 봉안돼 있는 방촌영당(厖村影堂)과 그 인근에 자리한 그의 묘역을 둘러봤다. 새해를 맞아서 가게 된 계획에 없던 바람 쐬기였다. 이참에 황희란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개략적인 삶의 역정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역사의 교훈이나 시대적 과제가 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조선 초 태종과 세종 양대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는 자신의 이름 壽老처럼 당시는 보기 드물게 90세까지 장수한 인물이다. 조선시대 남성의 평균 수명이 쉰도 되지 않은 그 시대에 드물게 나이가 너무 많아서 관직에서 물러난 경우다. 고려말의 창왕과..

부부의 동상이몽 도선사 방문

부부의 동상이몽 도선사 방문 기도도량으로 이름난 삼각산 도선사를 다녀왔다. 완성해서 넘겨줘야 할 원고가 밀려 있어 갈 형편이 아니었지만, 가을 단풍을 지금 못 보면 어쩌냐며 아내가 하도 졸라서 같이 갔다. 말은 맞다. 정말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이긴 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내의 목적이 따로 있었다. 이걸 안 것은 절 경내에 들어가 본 뒤였다. 도선사는 빌거나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사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아내도 흰 무 같은 크기의 큰 초를 두 자루 사서 각기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을 적고 소원 내용을 써주는 보살에게 내밀어서 뭔가를 썼다. 양초에다 붙일 종이에 글을 써주는 그 보살이 나에게 "뭐라고 써줄까요?"라고 묻기에 나는 조금도 주저없이 "세계평화, 인류화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