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83

옥산서원과 선친의 젊은 날 한 때

옥산서원과 선친의 젊은 날 한 때 우리는 경주 최부자 고택을 보고 김유신 장군묘에 잠시 들렀다가 곧 바로 안강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가 가는 길에 점심시간이 길게 걸터앉았다.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렷다! 특히 장인 장모님은 평소 제시간에 식사를 하시기 때문에 점심이 늦지 않게 하는 게 좋다. 해서, 이미 늦었긴 해도 옥산서원 들어가는 입구 마을에 도착해서 우리는 우선 점심을 먹고 서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오늘 우리가 가보려는 양동마을, 오어사와 마찬가지로 이곳 옥산서원에도 지금까지 너댓번 이상은 와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림을 그리러 와본 적도 있고, 그 뒤 추석 전 이곳에 있는 달성서씨 문중의 우리 선산에 벌초를 하러도 몇 번 왔었다. 또 이곳에 사시는 형..

멀대, 동대산 쟁암당에서 가는 봄을 막아 서다!

멀대, 동대산 쟁암당에서 가는 봄을 막아 서다! 봄 기운이 막 몰려 올 때다. 겨울이 혼자 가지 않듯이 봄도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 해마다 같이 다니는 아지랑이, 꽃들, 풀과 나무들과 새들이 도반이다. 봄은 늘 그들과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하고 함께 온다. 나도 봄의 허리를 부여 잡고 산 그림자와 함께 바람처럼 찾아 왔다. 영덕 동대산 기슭 아래 쟁암리! 마을 명패에 爭岩里라 쓰여져 있으니 바위를 다투는 곳이다. 혹은 다투는 바위들이 있는 마을로도 해석이 된다. 이름의 유래가 없지 않을 듯 싶지만 그걸 톺아보는 건 풍류를 모르는 한미한 서생이나 할 짓이다. 지금은 일상을 잠시 던져두고 온전히 봄기운에 취하려고 왔지 않는가? 금강산 구경이 식후경이라면 동대산 구경은 酒情에 취하고, 인정에 취하고나서다. 찰..

대만의 국보급 가수 등려군(덩리쥔) 묘소를 찾아서

대만의 국보급 가수 등려군(덩리쥔) 묘소를 찾아서 1995년 5월 8일, 대만 국립 政治대학 한 켠, 늦은 점심 후 기숙사 언덕 뒤로 펼쳐진 울창한 아열대 밀림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릴 듣고 있을 때 날카롭게 귀에 꼽히는 비보! 대만이 자랑하는 국민가수 등려군(鄧麗君, 1953~1995)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TV뉴스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앵커는 공연 간 태국 치앙마이에서 승용차로 이동하던 중에 지병인 천식이 재발해 변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등려군은 늘 가지고 다니던 천식약을 그날따라 잊고 가져가지 못해서 황급히 병원으로 가던 중 차가 너무 막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승용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충격적인 뉴스였다. 이방인인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은 긴 며칠 동안, 전 대만 열도..

제주여행⑤ 4.3사건 기념관 견학 : 모든 역사는 새로 쓰는 현재사다!

제주여행⑤ 4.3사건 기념관 견학 : 모든 역사는 새로 쓰는 현재사다! 이번 여행 중에 늦었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제주4.3평화공원과 기념관을 찾아가서 전시내용을 봤다. 수많은 전시물을 일일이 다 사진을 찍고 해설을 할 수가 없어 극히 일부만 찍어 소개하기로 하고 주요 사진들을 올려놨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1947년 3.1절 경찰의 발포로 개시된 1948년의 제주4.3사건을 꼽을 수 있다. 현대사를 거치면서 우리에겐 너무나 많은 사건들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이 제대로 갈 곳을 못 찾아가서 아직도 삼천리강토 상공의 구천을 배회하고 있는 듯하다. 4.3사건도 한국전쟁, 4.19의거, 광주 민주화운동, 천안함침몰사건, 연평도포격사건, 세월호침몰사건 등과 함께 사건의 진상과 ..

제주여행③ 빛의 벙커 : 빛으로 만난 고흐와 고갱

제주여행③ 빛의 벙커 : 빛으로 만난 고흐와 고갱 4박 5일의 이번 짧은 제주 여행 중에 최대의 호사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을 제주에서 빛으로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세기적인 화가다. 19세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후기 인상파를 이끌고 결정지은 대표적인 작가들이란 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짧은 지면에서 현대 서양미술의 사조는커녕 두 화가가 남긴 수많은 걸작들만 거론하기에도 벅차다. 해서, 간단히 고흐와 고갱의 작품경향에서 보이는 특징만 언급하기로 한다. 고흐는 나선, 물결선과 원에 의한 형상과 강렬한 색채로, 그리고 고갱은 원색에 가까운 밝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상징..

미얀마 역사의 발자취 : 양곤 국립박물관 소개②

지난 번 양곤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불상들의 소개에 이어 이번에는 불교 이외의 여러 가지 유물들, 특히 농업국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유물들과 각종 민속품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농기구, 여러 가지 악기들, 불화, 버마인들이 사용했던 각종 민속품들이 섞여 있지만 순서 없이 올린다. 여기에 선 보인 사진들은 내가 찍은 사진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천천히 더 올려서 미니 양곤 박물관의 싸이버판이 되면 좋겠다. 유물에 대한 설명도 아는 범위 내에서 천천히 작성하려고 한다. --雲靜 미얀마 역사의 발자취 : 양곤 국립박물관 소개②

미얀마 역사의 발자취 : 양곤 국립박물관 소개①

지난 주부터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쿠데타를 기회로 미얀마 현대사를 6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이 참에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2회로 나누어 소개하기로 한다. 양곤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과거 버마의 역사와 문화 관련 유물들이다. 내가 2019년 9월에 가서 직접 감상하면서 유물들을 사진에 담은 것들인데, 그 동안 미처 정리할 시간이 없어 한쪽에 팽개쳐놓은 것이다. 때 마침 미얀마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중이어서 내게는 시간이 없다는 걸 핑계로 한쪽 구석에 던져 놓은 사진들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려고 한다.--雲靜 미얀마 역사의 발자취 : 양곤 국립박물관 소개① 이곳 양곤 시내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유물들을 보면 버마 역사의 두 가지 큰 특징이 눈..

남명 조식 선생의 생가를 찾아서 선생의 정신을 기리다!

남명 조식 선생의 생가를 찾아서 선생의 정신을 기리다! 어제는 조선중기의 성리학자로서 지행합일적 삶을 살다간 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태어난 경남 합천의 ‘생가유지’(生家遺址)를 둘러보고 진주의 제1경 촉석루를 찾았다. 조식 선생의 생가는 초행이었고, 촉석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본 후 처음이니 45년만이다. 여기선 남명의 생가만 소개하고 촉석루, 논개, 왜장에 얽힌 것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소개하겠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채비를 하고선 길을 서둘렀다. 남명의 존재를 알게 된 30대 중반부터 꼭 그의 흔적을 찾아가보고 싶었었는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가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들떴다. 처가인 마산을 출발해서 합천에 내리자마자 바로 그가 태어난 생가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한국사회는 죽음을 어떻게 소비하나?③ : 문제점들과 대안

한국사회는 죽음을 어떻게 소비하나?③ : 문제점들과 대안 앞선 두 편의 졸고에서 박원순 시장(이하 직함 생략)과 백선엽 장군(이하 직함 생략) 두 고인의 행적을 개략적으로 고찰해봤다. 특히 두 사람 중 백선엽은 상대적으로 관련 자료에 먼지가 가라 앉아 있는 고로 그에 대해서는 과연 그가 본인 혼자서만 나라를 구한 “구국영웅”이 맞는지 일차적으로 검토해봤다. 그 결과 박원순이든, 백선엽이든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에 대한 사실과 역사가 많은 부분이 실상과 거리가 먼 것들일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됐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뭔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내용과는 다르다는 느낌만 있어도 이 글의 목적은 달성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이른바 사회적 명사나 역사적 인물들의 과거사라는 게 당사..

한국사회는 죽음을 어떻게 소비하나?②: 백선엽은 “구국영웅”인가?

한국사회는 죽음을 어떻게 소비하나?②: 백선엽은 “구국영웅”인가? 고 백선엽 장군(이하 직함 생략)은 과거 어떻게 해서 1945년 12월 말 아우 백인엽과 함께 월남해서 그 이듬해 군문에 들어간 1946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까지 단 4년 사이에 대령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할 수 있었을까? 또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날 밤, 육군 장교구락부 낙성기념 회식에 참석해서 한국군 고위 지휘관 및 보직자들, 주한 미 군사고문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사실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몇몇 전사연구자와 언론인들이 백선엽에게 직접 물어봐도 그는 침묵만 지켰다. 이 같은 의문들은 이뿐만 아니지만 여기선 지면관계상 생략하고 한국전쟁 시기 빠트릴 수 없는 전쟁 초기 38도선 방어전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