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91

해운대 엘시티에서 또 한 번 부산과 현해탄을 품다!

해운대 엘시티에서 또 한 번 부산과 현해탄을 품다! 여행 3일째, 우리는 부산 해운대로 달렸다. 등장인물은 교체 없이 어제의 네 사람 그대로다. 역할도 바뀐 게 없다. 볼거리를 정하고 길과 먹거리를 안내하는 것은 기사가 아닌 조수 몫이다. 나는 해운대엔 과거 40여 전 고등학교 시절에 몇 번 가 본 뒤로 대략 십년 주기로 한 두 번씩 들른 바 있다. 갈 때 마다 변화가 너무 많아 극심한 상전벽해를 느끼는 곳이다. 이번에는 더 심했다. 마치 미국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이나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해변에 온 기분이 들 정도다. 최종 행선지는 멸치와 미역으로 유명한 기장! 우리는 송정을 거쳐 기장으로 가기 전에 해운대의 전체상을 내려다볼 생각으로 '부산 X the SKY' 전망대로 올라갔다. 이곳은 지상 100층..

바람결에 시가 된 남해의 풍광들

바람결에 시가 된 남해의 풍광들 과거 한 때, 나는 일본인들이 일본의 國師로 칭송한 시바 료우따로우(司馬遼太郞, 1923~1996)가 일본의 남도여행에 이어 대만 전도를 순례하고 여행기를 낸 것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시바는 博覽强記형의 당대 일본의 최고 지식인이자 소설가로서 인기와 명예를 누린 인물이다. 그는 장장 25년에 걸쳐서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포르투갈, 미국, 몽골, 중국, 한국, 대만 등지도 순례하면서 기행문을 발표했다. 나는 그가 47세 때인 1971년『週刊朝日』에 연재한 기행문을 단행본으로 간행해 베스트셀러가 된『街道をゆく』(가도를 가다)를, 또 내가 대만에서 공부하고 있던 때인 1994년에 펴낸『台湾紀行』을 내심 부러운 눈으로 곁눈질 한 바 있다. 대만 총통 李登輝도 자신의 ..

남해 유배문학관에서 만난 자암과 서포

남해 유배문학관에서 만난 자암과 서포 남해도를 일주하는 마지막 코스로 우리는 남해읍 내에 위치해 있는 유배문학관을 찾았다. 일몰이 가까워지는 시각에 가까스로 도착하는 바람에 문을 닫기 직전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뿐이었다. 그래서 여유를 갖고 전시물들을 온전히 음미하면서 본다는 건 불가능했다. 수박 겉핥기식의 주마간산 격이었지만 겨우 유배문학관 내 전시장을 한 번 돌아보기는 했다. 유배문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들이 잘 정리돼 있었다. 전시물들 중엔 항양(桁楊, 죄인의 발목이나 목에 채우는 차꼬 등의 형구들을 일컫는 용어임)과 천극(荐棘, 귀양살이 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거처의 담이나 울타리를 가시나무로 둘러치는 일로서 加棘이라고도 함) 등등 유배와 관련된 거주지의 가택 모형과 도구들도 다양하게 전시돼 ..

남해 독일마을에서 떠올려본 파독 한인의 역사

남해 독일마을에서 떠올려본 파독 한인의 역사 올해 들어 가장 날씨가 덥다는 날이다. 아침나절인데도 벌써 바깥은 무려 수은주가 36도까지나 올랐다. 이열치열이라도 해야겠다. 해서, 나는 마산 보다 조금 더 남쪽에 위치한 남해로 떠나기로 했다. 오늘도 처갓집 어른들과 함께였고 처음 가는 곳이다. 우리는 마산에서 아침 식사 후 10시 경에 출발해서 약 2시간 후인 12시 경에 남해로 들어섰다. 뭍과 섬을 잇는 다리인 삼천포대교를 건너니 올망졸망 바다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한려수도의 수려한 경관이다. 다리 하나 차이로 人界와 仙界의 경계를 넘는 기분이다. 나는 다리를 건너면서 “글뢱 아우프!”(Glück auf)를 나지막이 되뇐다. “살아서 돌아오라!”라는 독..

영덕기행① : 목은 이색선생 생가 터, 괴시리전통마을, 메타세콰이어길

영덕기행① : 목은 이색선생 생가 터, 괴시리전통마을, 메타세콰이어길 다시 영덕에 갔다.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다. 이번엔 영덕에 사는 두 친구들과 함께 먼저 목은 이색 선생(1328~1396)의 생가 터를 찾았다. 목은은 고려조의 마지막 세 충신을 상징하는 三隱(圃隱 정몽주, 冶隱 길재, 牧隱 이색)중의 한 사람이다. 이어서 목은 선생 생가 터 입구에 있는, 200년이나 된 전통가옥들이 모여 있는 괴시리 전통가옥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조림돼 있는 "메타세콰이어길"에도 가봤다. 목은은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가담하지 않고 쓰러져 간 고려조와 끝까지 함께 한 충신이다. 여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우중에 찾은 목은의 생가 터를 보고 느낀 감회를 간단하게 적는다. ..

몽골의 하루(One day of Mongolia)

몽골의 하루(One day of Mongolia) 오늘 토요일 오전, 평소 거의 안 보던 TV를 보게 됐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프로에서 몽골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다양한 모습들이 나오는 걸 보니 문득 27년 전인 1994년 6월 내가 여행한 몽골의 이런저런 광경들이 떠올랐다. 세월이 너무 흘러 지금 당장 여행기를 쓰기에는 기억이 퇴색돼 적절하지 않고 해서 나중에 기억을 되살려 별도로 언급하기로 한다. 오늘 이 공간에선 당시 내가 특별히 찾아 가서 아주 재미있게 감상한, 울란바타르 시내에 위치한 '자나바자르 미술관'(Zanabazar Museum of Fine Art)의 소장품 가운데 인상 깊었던 그림 한 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이 작품은 몽골어로 '몽골링 내그 우두르'(Монголын нэг өдөр..

희비가 교차하는 환락의 성 라스베가스

희비가 교차하는 환락의 성 라스베가스 지난 해 10월, 미국 여행 중에 들른 라스베가스에서 환상의 쇼를 봤다. 나 혼자 보고 말기엔 너무 아깝다 싶어 그 때 촬영한 것을 공유한다. 당시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여서 도박장들이 축소 운영되고 공연도 많이 생략한 상태였지만 운 좋게도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의 안내 덕분에 감상하게 된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다. 백만불 짜리 쇼를 보게 해준 "내 친구 해용아 고맙심데이!"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미국 서부 건설 혹은 개척의 대표적 전설 중에 하나인 라스베가스는 1년 365일 매일 밤 인간의 욕망과 좌절, 희비가 쌍곡선을 그리면서 명멸하는 곳이다. 환락과 쾌락과 일확천금의 꿈을 쫓는 호걸들이 모여드는 곳! 이곳의 부와 번영과 휘황찬란함은 인간의 4가지 도덕적..

"내 물고기야!" 다시 찾은 오어사(吾魚寺)

"내 물고기야!" 다시 찾은 오어사(吾魚寺) 처음 간 게 고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으니 벌써 44년 전의 일이다. 석양을 뒤로 한 억새풀이 고개를 떨구고 늦가을 호수가 물비늘로 반짝거릴 때였다. 그 때 같이 간 친구는 배용식이라는 같은 반 동기였다. 이 친구는 지금 오어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가까운 곳에서 사업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 그 후 드문드문 들렀던 포항 오천의 오어사를 이번에 다시 찾았다. 2018년 8월, 내가 10년 가까이 운영해오고 있는 환동해미래연구원이 구룡포에서 연 국제학술 세미나에 참석한 일본인 학자 일행들을 데리고 온 뒤 처음으로 찾았으니 약 3년 만이다. 雲梯山 맞은 편에 있는 오어사 경내로 들어서자 낯익은 법당과 전각들이 말 없이 나를 반긴다. 신록이 푸른 빛을 더해가고 ..

옛정취가 사라진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옛정취가 사라진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우리 일행은 안강 옥산서원을 보고 난 뒤 바로 동쪽 포항 방면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양동마을로 갔다. 승용차로 10분 남짓한 거리여서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우리 차가 지나는 도로 왼편으로 속칭 "창말"이라 불린 선친의 고향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조부모님이 생전에 사셨고, 아버지가 태어나셨고, 나도 어릴 적에 자주 다녀 많은 기억들이 묻혀 있는 곳, 달성 서씨 일가들이 모여 산 서씨 집성촌이다. 이제 곧 5분 후면 양동마을에 도착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2010년 7월)된 양동마을은 조선시대의 전통문화와 자연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데는 아마도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중심이 된 씨족..

선친의 젊은 날 낭만이 서린 옥산서원

선친의 젊은 날 낭만이 서린 옥산서원 우리는 경주 최부자 고택을 보고 김유신 장군묘에 잠시 들렀다가 곧 바로 안강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가 가는 길에 점심시간이 길게 걸터앉았다.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렷다! 특히 장인 장모님은 평소 제시간에 식사를 하시기 때문에 점심이 늦지 않게 하는 게 좋다. 해서, 이미 늦었긴 해도 옥산서원 들어가는 입구 마을에 도착해서 우리는 우선 점심을 먹고 서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오늘 우리가 가보려는 양동마을, 오어사와 마찬가지로 이곳 옥산서원에도 지금까지 너댓번 이상은 와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림을 그리러 와본 적도 있고, 그 뒤 추석 전 이곳에 있는 달성서씨 문중의 우리 선산에 벌초를 하러도 몇 번 왔었다. 또 이곳에 사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