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83

한국사회는 죽음을 어떻게 소비하나?①: 박원순과 백선엽의 죽음

한국사회는 죽음을 어떻게 소비하나?①: 박원순과 백선엽의 죽음 죽은 자에 대한 추모행위는 인간이 인간임을 드러내는 가장 인간다운 표상행위다. 거기엔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한다. 순기능은 인간성 회복이요, 역기능은 인간성 황폐화다. 추모가 비정치적일수록 망자가 살아나고, 정치적일수록 망자가 메말라버린다. 정치적인 비중이 높은 인물일수록 추모행위는 늘 현실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아니 그 자체로 정치행위이기도 하다. 인간이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긴 해도 그런 인간들이 유달리 많은 한국사회엔 죽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과하게 짙다. 지난 7월 9일과 10일 이틀 사이에 잇달아 사망한 고 박원순 시장(이하 직함 생략)과 고 백선엽 장군(이하 직함 생략)의 죽음도 정치적으로 활용됐다. 두 사람의 추모..

한 편의 웅혼한 博物誌, 그랜드 캐니언을 마음에 심다!

한 편의 웅혼한 博物誌, 그랜드 캐니언을 마음에 심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Grand Canyon National Park)을 마음에 담게 됐다. 이곳까지 힘 안 들이고 찾아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에 이민 온 지 40년이 넘는 소싯적 동네친구 덕분이다. 친구 부부는 일부러 나를 위해 온전히 오늘 하루를 시간 내서 승용차로 이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아침 일찍부터 라스베이거스의 집을 나선 우리는 후버(Hoover) 댐을 지나 킹맨(Kingman)에서 40번 국도로 갈아타고 약 3시간을 더 달려 윌리엄스(Williams)라는 곳에서 다시 좌측 64번 지방도로로 꺾어서 상상 속의 天界 그랜드 캐니언의 초입으로 들어섰다. 평상시 때는 그랜드 캐니언까지 가는 국도가 관광버스로 밀리는 경우..

蘭皐先生 김삿갓을 찾아서

蘭皐先生 김삿갓을 찾아서 방랑시인 김삿갓! 김씨 성에 본명이 炳淵(1807~ 1863)이란 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호가 蘭皐란 걸 아는 이는 드문데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오. 아무튼 내가 김삿갓이란 이름을 안지는 반세기 이상이나 흘렀구랴. 그런데 오늘에야 일부라도 직접 그 족적을 보게 되니 만시지탄감이 일지만 그렇다고 감흥이 돋지 않는 건 아니외다. 천하가 아는 雲水歌人 김삿갓이 아니오.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김삿갓!", "김삿갓!" 하지는 않겠죠. 풍류와 해학으로 당대를 풍미했다 하니 그 곡절과 정신이 뭔가 해서 한미한 이 소생이 먼 곳에서 蘭皐선생의 芳香에 끌려 선생을 찾아왔소이다. 山紫水明한 영월 땅에 秋色이 돌기 시작한 풍광부터 예사롭지가 않구나! 절세의 풍류객 蘭皐선생을 찬미한 여러 詩碑..

영월 淸泠浦에서 단종을 생각하다

영월 淸泠浦에서 단종을 생각하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귀에 익은 것이리라. 한시냐고? 아니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기억하고 있듯이 나도 중딩 때 역사시간에 이걸 외우면서 단종이라는 왕을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얼마 뒤 고딩 시절엔 일제 시기 경향신문에 연재된 1928~29년의 당시로선 스테디셀러 격인 春園 이광수의 걸작 소설『端宗哀史』를 통해 다시 한 번 단종의 왕호를 각인시켰지. 근 반세기가 지나 단종애사를 지금 다시 보니 간혹 작중 인물들 중 누가 누구인지 불명확하게 묘사한 걸로 봐선 博覽强記형의 당대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었다는 춘원의 명성은 조금 부풀려 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인다. 그런데 말이야 한국사 전공자도 아닌 내가 단..

영월 서부시장의 포항집

영월 서부시장의 포항집 세상이 전례 없이 어수선하지만, 늘 건강하시고 한가위 명절 잘 쇠시기 바랍니다. 쇤네는 발길 닿는 대로 강원도 여행을 왔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영월 읍내를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김삿갓의 “방랑시장”이 눈에 확 들어와서 망설임 없이 바로 들어갔습니다. 김삿갓은 단종과 함께 영월이 대표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은 맞지만 김삿갓의 이 방랑 시장에는 별로 볼 것도 없고 요기꺼리도 없어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서부시장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랬더니 또 한 번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있었습니다. “포항집”이라는 좌판 가게가 아니겠습니까? 명절엔 고향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데 머나 먼 강원도 땅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게 고향사람을 만나다니! 바로 자리에 앉아서 포항 송도가 고향인데 이곳에 ..

정릉(貞陵)과 태조 이성계

정릉(貞陵)과 태조 이성계 어제는 정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보기로 한 선배와 약속한 곳이 마침 그의 사무실이 있는 정릉이었다. 울적한 기분도 달랠 겸, 또 운동도 할 겸 해서 먼 길이지만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도중에 내려 걸어서 갔다. 정릉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神德왕후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 능은 서울 경기 일원에 남아 있는 조선왕릉 40기 중의 하나로서 북한에 있는 2기의 조선왕릉과 함께 200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는 보기 드문 문화유산이다. 북한 땅에 있는 2개의 능은 태조의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능인 齊陵과 제2대 임금 정종 및 정안 왕비가 함께 묻힌 합장릉인 厚陵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 정릉을 오가면서도 왕릉이 다 그런 거려니 하고 지나쳤던 貞陵에..

마젤란이 괌의 최초 “발견”자라고?

마젤란이 괌의 최초 “발견”자라고? 서태평양의 아름다운 진주! 마리아나 군도 중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이 군도 중에 가장 큰 섬! 대소 15개 섬으로 구성된 발바닥 모양의 이 섬은 길이 48㎞, 폭 최단 6㎞에서 최장 14㎞ 밖에 되지 않고 총 면적 546㎢로서 우리나라의 거제도만한 크기다. 어떤 섬인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가? 한 때, 한국, 일본, 대만인들의 신혼여행지로 최고 각광을 받았던 섬이라고 하면 바로 알 것이다. 괌도(Guam island)다. 주도는 하갓냐(Hagåtña, 또는 Agana)이지만 가장 큰 도시는 데데도(Dededo)이다. 괌도는 산업이라는 면에선 특이한 게 없다. 한 마디로 주민들이 관광수입으로 먹고 사는 곳이다. 인구라고 해봤자 20만 명(July 2018년 7월 시점에..

침략전쟁 패잔병이 “전쟁영웅”? : 28년간 숨어산 괌의 일본군

침략전쟁 패잔병이 “전쟁영웅”? : 28년간 숨어산 괌의 일본군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각기 투하된 원자폭탄 한 방으로 중국, 동남아, 태평양으로까지 전장을 넓혀 15년간 끈질기게 끌었던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이 끝났다. 주저 없이 연합군의 포츠담선언을 수락한다는 일왕의 “종전 조서”가 공표됐던 것이다. 해외 도처에서 집요하게 침략전쟁을 수행하던 수백만 명의 일왕 및 일제의 침략도구 일본군들은 자결하지 않으면 포로가 되거나 아니면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도 전쟁이 끝난 줄 모르고 “적지”였던 서태평양의 괌도(Guam island)에 30년 가까이 숨어 살았던 일본군이 있었다. 요코이 쇼우이치(橫井庄一, 1915~1997)라는 일본 육군 ‘군소’(..

성탄절

성탄절 한 해 동안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오늘은 생애 최고의 휴식과 위안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tip!!! 구약에 의하면, 옛날 성탄절은 1월 6일이었다. 1월 1일에 천지창조된 후 6일째에 인간이 빚어졌다고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아르메니아 교회에선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낸다고 한다. 그 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날로 앞당겨졌다가 12월 25일 오늘을 성탄절로 정한 건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s of Nicaea)에서였다. 니케아 종교회의란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아리우스파(派)의 비난에 대응해서 당시 분열된 기독교 교리를 정리하기 위해 현재 튀르키예의 이즈니크로 이즈니크 호수가에 위치하고 있는 니케아에서 소집한 제1회 종교회의를 말한다. ..

생각과 마음

생각과 마음 생각은 모든 현상과 결과들의 일차적인 원인이다. 이 세상과 우주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으로 접하거나 경험 혹은 행위하고, 생각 혹은 의식(六識)하는 일체(六處와 六境)는 생각의 결과다. 특히 행위는 그 생각의 연장인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엉겁결에, 얼떨결에, 혹은 부지불식간에 한 것처럼 보이는 언행조차도 모두 생각의 결과가 아닌 게 없다. 뇌의 어느 한 부위(현대 과학에선 생각과 마음이 어느 부위에서 작동하는지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단지 뇌의 전두엽에서 작동되고 있다는 정도로 추정하고 있음)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속도가 전광석화처럼 너무 빨라 감각적으로 미처 인식하거나 느끼지 못할 뿐이다. 생각은 그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에 해당되는, 인간의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