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미얀마 역사의 발자취 : 양곤 국립박물관 소개①

雲靜, 仰天 2021. 2. 6. 07:03

지난 주부터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쿠데타를 기회로 미얀마 현대사를 6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이 참에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2회로 나누어 소개하기로 한다. 양곤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과거 버마의 역사와 문화 관련 유물들이다. 내가 2019년 9월에 가서 직접 감상하면서 유물들을 사진에 담은 것들인데, 그 동안 미처 정리할 시간이 없어 한쪽에 팽개쳐놓은 것이다. 때 마침 미얀마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중이어서 내게는 시간이 없다는 걸 핑계로 한쪽 구석에 던져 놓은 사진들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려고 한다.--雲靜

미얀마 역사의 발자취 : 양곤 국립박물관 소개①


이곳 양곤 시내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유물들을 보면 버마 역사의 두 가지 큰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한 가지는 농업국가로서의 면모와 다른 한 가지는 불교국가로서의 면모다. 시기로는 두 부분 모두 고대사회를 상상하거나 사유할 수 있는 유물은 전시돼 있지 않고, 대부분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유물들로만 돼 있다. 현대 유물 혹은 예술품 중에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미얀마 화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돼 있다. 그 밖에 다른 특징들도 없진 않지만 모든 자료를 다 선 보일 순 없고, 특이한 것들만 불상과 농업문화의 특징을 읽을 수 있는 유물들과 함께 2회 때에 간간이 소개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올리는 사진들도 대부분 농업국가와 불교국가로서의 버마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위주가 된다. 내가 본 순서, 즉 1층부터 6층까지 전시돼 있는 유물들과 자료들을 순서별로 올린다. 먼저 불교 관련 유물들, 특히 불상을 소개한다.

이 박물관에는 불상이 상당히 많았다. 불상의 재질은 동과 금이 주된 것이었지만, 간혹 돌과 나무로 조각된 석조 불상과 목조 불상도 눈에 띄었다. 불상 주조 기술의 수준이나 기법에선 여타 중국이나 한국에 비하면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대 아테네나 로마의 신전 혹은 성당의 조각상, 중국의 불상들이 그렇듯이 기술과 미적 수준은 유물 제작 발주자의 경제력, 심미안과 정비례한 결과라고 봐도 될 것이다. 양식은 동아시아 대승불교 권의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불상과는 달리 인도의 간다라 양식 그리고 아잔타 양식의 흔적이 엿보이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인도, 버마, 태국(맛만 봤음),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버마를 경계로 그 이서 지역은 인도의 문화가 짙어가고, 그 이동 지역은 중국문화 쪽으로 짙어져 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미얀마는 인도문화와 중국문화의 경계선에 있고, 따라서 미얀마에는 인도와 중국의 두 문화가 다 녹아들어가 있는 셈이다. 버마문자는 한자 문화권이 아니고 인도쪽 언어의 영향을 받았지만 여타 식생활, 주거문화, 종교양식 등은 중국의 요소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불상들 가운데 내 눈에 들어오는 수작들을 위주로 소개하겠는데, 불상의 두상과 몸체, 나발, 백호, 상호, 육계, 삼도, 의상, 수인, 좌대 등에서 전체적으로 소승불교권의 불상임이 한 눈에 들어오는 특징이 있다.

오늘은 우선 불상만 몇 구 올리고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다음 단계의 농업 관련 유물은 차후로 천천히 소개할 것이다.


사암(Sandstone)에 새긴 부처의 족적(Footprint of Buddha) L58cm, W116cm. 석가모니의 발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조형화 한 작품이다. 위쪽에 다섯 발가락이 동일한 크기로 배열돼 있고, 발 뒤축에는 전륜성왕을 상징하는 수레바퀴(法輪)가 양쪽의 두 차양산을 받으면서 굴러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맨 아래에는 발을 두 마리 용이 떠 받치고 있으며, 발 바깥으로는 보리수 나무 아래서 삼매에 들어가 있는 석가모니의 모습(아래 왼쪽)이나 불교도들이 초기 형태의 스투파(stupa)를 경외의 대상으로 경배하는 모습(위쪽)도 보인다. 내게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유물이다.
바간(Bagan) 왕조 시대 11th~12th세기 때 동으로 주조된 불상이다. 크기는 크지 않아 높이가 34cm에 불과한 소형이다. 상호나 두상에 시선이 가기 보다도 여러 불상들 중에서 광배(光背)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형상화 돼 있는 것이 특이해서 조로아스터교의 拜火 의식이 츰입된 게 아닐까 싶어 카메라에 담은 불상이다. 이곳 박물관 측은 광배를 영어로 "flaming reredos"로 번역해 놓았는데, 영어권 관람자들에게는 "불꽃이 타오르는 배후의 장식벽"으로 뜻이 전달될 것이다. 광배를 나타내는 적절하지 않는 번역이다. Aura로 번역해야 바로 알아듣는다. 암튼 좌대(throne)에도 눈길이 갔다. 두 겹의 연꽃에다 그 아래 또 다시 2단의 좌대가 있어 총 4중으로 돼 있다.
바간(Bagan)왕조 시대 11th 세기 때 만들어진 부처의 입상이다. 크기는 높이가 70cm. 두상과 등신의 프로포션이 약간 균형이 맞지 않는 흠이 있지만, 몸체는 날렵한 여인의 몸매를 연상시킨다. 상호도 남성의 모습이라기 보다 선이 고운 여인 같다. 그러나 길다란 양 귀, 시무인을 하고 있는 手印의 두 손을 남성처럼 크게 만들어 놓은 것은 또 남성 같이 보여서 대단히 이채롭게 보인다. 또 가사도 편단이 아닌 통짜배기 치마를 입힌 듯한데, 이것도 여성이 아닐까하는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다. 가지런하게 만들어 놓은 양 발의 발가락도 여성의 발가락을 떠올리게 한다. 암튼 전체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불상인 것만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재질이 동이 아니고 금이었다면 엄청난 가치로 매겨질 것이다.
바간(Bagan) 왕조 시대 11th 세기 때 동으로 주조된 좌상이다. 높이가 50cm이니 대형 불상은 아니다. 등신의 비례가 맞지 않는 바로 위의 불상과 비교하면 좌상이긴 하지만 비례와 안정감이 뛰어나다. 좌우 대칭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가부좌가 안정감을 자아내는 비결이다. 상호도 세밀하게 잘 조각돼 있어 굉장히 원만구족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나발과 육계가 전형적인 아리안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연꽃 모양의 좌대 위에 앉힌 점으로 봐서 중국 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불상으로 보인다. 이 불상의 백미는 미소 짓는 듯한 얼굴 표정에 있다. 미소 띈 상호가 신비감을 더해주는 대단히 아름다운 불상이다. 다만 백호가 너무 아래로 내려온 데다 미간 사이가 좁은 것이 흠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곳 박물관의 수 많은 불상들 중에서 내가 최고로 치는 작품이다.
獨覺僧, 즉 성문 연각의 단계에 오르는 것을 수행의 정점으로 보는 소승불교권의 특징이 나타나는 불상이다. 아라한상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초기 인도불상의 영향에서 많이 벗어나 소승불교권의 불상 양식으로 크게 진전된 것이다. 아라한상임에도 수인을 항마인(降魔印, bhümisparśa-mudrä)으로 만들어 놓은 게 특이하다. Nyangungyan 시대 16~17th 세기에 만들어진 것이고, 재질은 칠기(lacquereware)다. H. 77cm.
Nyaungyan시대 16~17th 세기의 불상. H.71.5cm 목상에 입힌 금박이 많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석가모니가 정각을 이룬 뒤 보리수 아래에 무상정각을 얻은 희열의 삼매에 들어 있을 때 마왕들이 나타나 석가의 깨달음을 퇴보시키려고 유혹하자 그것을 퇴치한 것을 상징하는 항마인(降魔印, bhümisparśa-mudrä)을 하고 있고, 육계 대신 보관이 여러 층으로 장식돼 있고, 광배도 두상과 붙여놨다.
외관으로 보기엔 버마에 불교가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보일 정도로 조악해 보이지만 꼰바웅 왕조시대인 19th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이다. 금으로 도금된 좌불상으로 높이 46cm의 크기이고, 이 불상 역시 항마인(降魔印, bhümisparśa-mudrä)을 하고 있다.
초기 불탑(Stupa)의 용어들이 설명돼 있는 안내문이다. 부처 재새시에는 자신이 열반하게 되면 아무런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 부처님의 지시에 따라 탑도, 불상도 만드는 이가 없었지만 석가모니의 열반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제자들이 스승을 그리워 하다가 하나하나씩 만들어진 것이 이런 형태의 스투파였다. 외관으로는 대승불교 쪽의 탑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보이지만 기본 형태는 크게 맨 위의 상륜부, 탑신부, 기단부 3단으로 돼 있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한국의 탑들은 모두 상륜부가 복잡한 데(찰주, 보주, 용차, 수연, 보개, 보륜, 양화, 복발, 노반으로 구성돼 있음) 인도 등지의 소승불교의 탑들은 조금 간략하게 표현돼 있고, 탑신에서도 옥개석이 넓지 않은 게 다르다. 모든 탑은 홀수로 만들어지는데,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이 양식에서는 층수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이곳에 전시돼 있는 불상 중에는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Sri Ksetra라고 하는 지역에서 출토된 것이고, 제작연대는 Pyu 시대 B.C2~A.D1세기로 추정된다고 설명돼 있다. 육계와 나발에다 상호까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뭉개져 있다. 항마인 수인(bhümisparśa-mudrä)을 하고 있지만 왼손 손바닥에 여의주 같은 큰 구슬을 들고 있는 게 특이하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불상인데 상호가 구족해 보인다. 게다가 광배가 두부에만 빛나는 여타 불상과 달리 특이하게도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게 아주 독특하다. 좌대도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연꽃으로 장식돼 있는데다, 바깥의 불상곽은 나무에 금박을 입혀서 보리수 잎을 새겨놓은 듯하다. 내가 지금까지 본 불상들 중에선 가장 화려한 불상 중의 하나였다. 이 불상은 크기가 등신불에 가까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