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 코드를 떠나면서
여행을 하다 보면 좀 더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는가 하면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 지금까지 인도를 세 번 여행하면서 수도 뉴델리는 물론이고 인도 서북부와 동부지역의 몇몇 주요 도시들을 다녀본 바 전자는 인도 서남부의 해안도시 코치(Kochi, 옛날 전통시대엔 코친이라고 불렸음)라는 곳이고, 후자는 그곳으로부터 170km 가량 북쪽에 떨어져 있는 코지코드(Kozhicode, 옛날 이름으로는 캘리컷)라는 곳이다.
코치는 일찍부터 아랍 세계의 문화적, 상업적 파도가 밀려온 데 이어 15세기엔 유럽세력이 최초로 인도를 발견한 곳이라 해서 일찍부터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코지코드에 빨리 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생각했었다. 코치코드는 대서양을 돌아 인도양 항로를 최초로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지역 중엔 처음으로 상륙한 곳이기에 분명 볼만한 것이 많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 간 머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든 문제를 짚어보고자 했다. 결정하자 마자 바로 동부 최대 항구 도시인 첸나이(Chennai, 옛 마드라스)를 하루 동안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 훑어보고 중부의 최대 도시인 벵갈루루를 보는 것도 포기하고 서부 해안으로 날았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왠걸! 막상 현지에 와보니 정반대였다. 코치는 볼거리가 생각보다 많고 도시의 지형적 구조도 굉장히 아름다운 곳(도시 환경과는 별개임!)이어서 더 머물고 싶었지만 코지코드에서 바스코 다 가마를 만나보는 게 더 우선적이다 싶어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마감하고 코치를 아침 일찍 떠나 30도 가량의 무더운 날씨에 이곳 코지코드로 선풍기조차 없는, 구르카 용병들의 수송차량 보다 못한 고물 버스로 여섯 시간 이상을 타고 왔다.
그런데 막상 코지코드에 와보니 여긴 역사적인 유명세와 달리 나같은 역사학도에겐 별로 건져낼 게 많은 곳이 아니었다. 코지코드 역시 코치처럼 강도 있고 바다도 있어 운치가 있어 보였지만 지형적 구조는 코치만 못한 것 같았다. 또한 바스코 다 가마의 최초 상륙지라는 곳을 찾아가 봐도 이곳이 진짜인지 바로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전에 미리 찾아본 관련 사진자료에 의하면 바스코 다 가마의 최초 상륙지라고 얘기되고 있는 곳은 최소 두 군데 이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마도 지역마다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주민이나 행정관청에서 자의적으로 그렇게 기념비를 세운 것일 수도 있다. 두 곳이 동일한 곳이거나 아니면 두 곳 중에 한 곳은 분명 실제 상륙지일 것이다.
그 밖에 부대적으로 바스코 다 가마에 관련 되는 역사 관련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행인들과 주민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맞고 안 맞고를 떠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들의 뇌리엔 이곳이 바스코 다 가마가 상륙한 곳이 맞다는 인식 밖에 없는 것이다. 관광 인프라는 고사하고 IT산업이 앞서 간다는 인도의 바스코 다 가마 관련 인터넷 정보 자료는 턱 없이 부족해 보인다. 결국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인지는 촬영한 사진들을 좀더 면밀하게 대조해보고 난 후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대로 내버려진 음식쓰레기와 생활 쓰레기에서 풍기는 도시 곳곳의 퀴퀴한 악취, 먼지와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혼란스런 교통과 무질서는 인도 전역의 공통적인 것이니 딱히 코지코드만의 현상이 아니니 더 있을 필요가 없다. 한국의 어떤 여행가들이 남긴 여행 후기엔 인도여행을 신비한 여행, 인도를 신비한 나라라고 묘사해놓을 걸 본 적이 있다. 그런 이들은 매연과 악취, 무질서, 언어소통의 불편함과 입에 맞지 않는 비위생적인 음식들이 좋아서 인도가 신비한 곳으로 보였을까? 사람들의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젊은 시절 한 때 조금 심취했던 라즈니쉬나 크리슈나 무르티 따위도 저층 빈민자들의 처지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예의 그 잘난 마음다스리기나 명상 얘기만 해대는 고등 사기꾼으로 보이는 나의 눈에는 인도가 신비로울 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남의 나라 일이지만 국민의 절대 다수가 믿는 종교인 힌두교를 기득권 체제를 유지, 영속시키는데 이용하는 집정자들에겐 기대할 게 없다.
코지코드도 더 이상 미련이 없다. 해가 밝았으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 다음 목적지로 가자. 아 참, 갈 때 가더라도 아침은 먹고 가야지. 황제처럼 고급스럽게 하는 여행은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만 준 거지처럼 돌아다니는 여행도 의미가 없지 않다. 때로 하룻밤 9000원짜리 호텔에서 자고 음식이 맞지 않거나 비위생적이어서 하루 두 끼를 먹으면서 다니기도 한다. 또 5~600원으로 한 끼를 떼워가면서 돈을 절약했다가 한 끼에 3만원, 5만원짜리 식사도 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다음 목적지는 동서 종교 문화 교류사에서 중요한 곳이어서 그런대로 볼 게 있다고 예상되는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2025. 1. 25. 08:53(현지시각)
인도 코지코드의 한 호텔 방을 나서면서
雲静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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