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불교유적지에서 바람처럼 지나가는 덧없는 생각들!
여행지에서 밤새도록 장대 같이 퍼붓는 폭우가 새벽녁이 돼도 그칠 줄 모른다. 내가 머물고 있는 나무 위 원두막 아래 호텔 정원 바닥이 모두 물에 잠겼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수도 없어 식사도 불가능해지고...
머나면 이국땅에 여행와서 이런 상황을 만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무심히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는 일뿐이다. 오늘 일정이 조금 염려가 되긴 해도 어제 비속에 찾아 가본 황금불상의 잔상이 아직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불교 유족지에 와서 생각이 불교에 기울어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위대한 불교의 문화와 역사의 현장에 서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동시에 난마처럼 얽힌다. 정리할 거 없이 생각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자동기술법으로 써내려간다.



사람들은 불교가 종교라고 하니까 신을 믿는 종교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또 부처님을 신이나 혹은 잡신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이나 타종교인들도 있다. 모두 틀린 말이다.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인간의 삶과 실존을 우선시하는 인간학이다. 굳이 종교라고 한다면 과학적 진리와 명징한 합리성 그리고 이성과 자기 자신(인격의 고유성과 인간의 존엄성과 원래 현명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종교다. 실존적으로 살다 간 고타마 싯타르타는 신이 아니었고, 지금도 신이 아니며, 자신이 신으로 인식되는 걸 거부한 분이다. 심지어 석가모니는 살아 계실 적에 자기를 우상화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입멸하고 난 후 자기를 표상하는 상징물을 만들지 말라고도 했다.
그런데 후대인들 중 먼저 부처님 제자들이 먼저 어겼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불경을 만들었고(세 차례의 結集), 부처님이 그리워서 탑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점 불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국 수많은 three pitaka, 불보살상과 탑들이 생겨났으니 그것은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화적 가치로 봐 줄 수도 있다.
이런 불상을 만들고 부처의 상징물을 만드는, 소위 말해서 불사를 한 동기는 시대마다, 나라와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양하였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권력자도 있었고, 인도의 아쇼카(Ashoka the Great, B.C. 304~232)왕이나 일본의 쇼우또꾸(聖德, 574~622)태자처럼 정말 부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파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원을 세운 이도 있었고, 또 부처님을 갖고 먹고 사는 직업 종교인들도 있었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부처의 진짜 가르침의 본면목을 모르고 무작정 불교를 믿고 따르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일부 깨친 선승들 중, 특히 중국의 조사들 중엔 마음속 부처의 상을 깨야 한다면서 불상을 내동댕이치고 깨어버린 선지식도 있었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여선 참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부처의 가르침대로 자기 자신을 부처와 불교라는 가르침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서 걸림 없는 삶을 살고자 한 것이다.
한국에 전해진 불교의 가르침은 석가모니가 이야기한 초기 불교(원시불교)의 교설과는 내용이 다른 게 많다. 조계종이 위주가 된 한국불교에서 가르치는 석가모니의 교설 중에 윤회가 대표적인 예다. 그것은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이지 석가모니가 설한 윤회설의 본질적 내용이 아니다. 즉 대승경전을 받아 들인 곳의 불교인들은 거의 예외없이 전자처럼 육도만행이라는 윤회의 고리에서 탈각해서 그 어떤 경계에도 더 이상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생불사를 뜻하는 니르바나(Nirvana)인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반면, 석가모니가 설한 바른 윤회설은 중생이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고 윤회할 때 자신이 지은 업(業)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를 여섯 가지로 나눴다. 즉 그런 미혹한 자가 죽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축으로 6도(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간도, 천상도=六趣라고도 함)를 돌고돈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인간의 생각, 행위가 돌고 돈다는 것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즉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왔다갔다하고 그에 따라 언행의 습도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고 이것을 끊고 더 이상 악행을 행하지 않도록 하는 게 니르바나, 즉 열반(涅槃=해탈)이라는 것이다. 이 경계는 고대 중국의 구라라지바, 지루가참, 현장법사 등의 구법승들이 그랬듯이 고대 중국인이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초기 경전을 번역한 데서 연유한다. 석가모니가 설한 니르바나라는 것은 같은 대승불교권에서 해탈, 열반과 동의어로 쓰이는 寂靜이라는 개념이 더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다. 즉 희열과 고뇌, 행과 불행의 상태를 반복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고 마음에 번뇌가 없고, 몸에 괴로움이 사라진 해탈, 열반의 경지인 그 상태가 寂靜인 것이다.
이처럼 석가의 교설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 중의 한 가지임에도 한국 땅에는 의미가 왜곡돼 잘못 전해진 것이다. 나도 한 때 노장사상이 한자로 格義된 중국불교를 소의경전으로 삼은 한국불교를 오랫동안 배운 바 있어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세계관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이해했다.
또 한 가지, 부처님에게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예배를 올리고, 무언가를 빌면 소원성취가 되는 걸로 아는 이른바 기복불교 또한 석가모니가 가르친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의 소승불교(Hinayana Buddhism)권에서도 이런 미신적 요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인도와 동남아 일대의 불교를 동북아 지역의 대승불교(Mahayana Buddhism)권의 이론가들이 소승이라고 낮춰 보고 자기들은 대승불교라고 한 티베트, 네팔, 몽골,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등지의 불교권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처와 다른 범부중생의 한계인가 싶다.
이와 관련해서 석가모니의 생각은 아주 간명하다. 그것의 핵심은 물질관, 세계관, 시간관, 인생관으로 현현되기도 하고 귀결되기도 하는데 불교의 삼법인이 요체다.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한결 같을 수가 없고(諸行無常),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諸法無我), 존재하는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一切皆苦) 이라는 것이다.
조금 풀어서 부연하면, 만물과 만사는 존재의 양태를 가능하게 만드는 내외의 조건들의 한시적인 합일, 즉 因緣假合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영원하고 절대적인 物事는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증기가 모이면 구름이 되고, 그것이 여타 조건과 합치되면 비와 물이 되고, 물은 다시 열이 가해지면 수증기, 공기나 바람이 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바람이라는 존재도 대기의 온도가 떨어지면 다시 물이 되고 얼어서 얼음이 된다. 緣起의 형식으로 일어나는 윤회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런 식으로 전변시키는,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인자(Atman)가 있는가를 두고 부파불교 시대에 대논쟁이 있었지만 이 또한 論과 疏를 형성시키는 것으로 인류의 정신사적으론 가치가 없는 게 아니다.
이렇듯이 인연이 가해지거나 다함에 따라 시간적, 공간적으로 無始無終한 상태의 이 우주가 소멸되기 전까지는 무한히 생멸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나 사회, 국가의 존재양태도 이 진리에 卽해서 成住壞空(불교의 시간관인 四劫)을 반복한다는 것이 고타마 싯타르타의 관법이었다.
따라서 자연계에서의 문제해결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간사의 문제 역시 문제를 태동, 발생시킨 인 즉, 문제를 발생시킨 근원적 요인들을 찾아 제거하거나 理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게 맞고, 더 낫기는 애초부터 그런 인(원인)을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이러한 業(Kharma)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無明에서, 또 기본 욕구 이상을 소유하려고 한 것, 즉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 원인과 업을 만드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자신이 한 언행과, 사회나 국가의 구성원들이 지은 언행, 작위(doing), 즉 함께 지은 共業에 대해선 피해갈 수 없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과보를 받으라고 했다. 선행은 선행대로, 악행은 악행대로 그 결과를 결과로 받으라고 했다. 과보를 피해가려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나쁜 짓을 해서 쾌락과 이익을 얻어 놓고 그로 인한 결과를 피하려 하거나 악행을 해놓고선 선행의 과보를 받으려고 하니까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모든 경우가 예외 없이 이 진리에서 벗어나는 게 없다고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하게 인과법을 증득한 석가모니였기에 자기 자신도 이를 피해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고타마 싯타르타는 과욕에 눈이 먼 친지와 지인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한 살해의 위협과 죽음에 대해서도 하등의 망설임이나 거리낌 없이 피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조국(카필라국)이 이웃 나라(코살라국)의 무도한 침략을 받아 망하게 되는 것까지도 자신의 능력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인과가 있어 어찌 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봤다. 이에 관한 일단의 일화는 아래 졸고의 내용에서 자세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suhbeing.tistory.com/m/43
사람들이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과보를 받지 않고자 하는 데서 또 다른 업이 생겨난다. 목하 마누라 하나 보호하려고 치밀하게 행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격분에 의해 무리수를 둔 자나, 자신이 구속되는 걸 피해보려고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자나 모두 인과론적 진리를 모르고 과욕 밖에 몸에 밴 게 없는 함량 미달의 정치인들이다. 당장은 아니라도 혹은 멀지 않아선 반드시 과보를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피해갈 수 없는 인과응보는 석가모니의 말씀이기 전에 자연계의 섭리이자 우주의 진리다. 석가모니는 이것을 누구 보다 먼저, 누구보다 명징하게 깨달아서 사람들에게도 이 진리를 깨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큰 길, 구극의 인생관을 제시한 것이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비극적 혼란 사태에 대해서 잘 해결되고 원만히 극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이른바 국태민안을 석가모니 부처에게 빈다고 해서 해결될까? 아니다! 석가모니의 생각법에 따르면 그건 빌고 기도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문제의 근원을 정확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찾아내고 그것을 제거하는데 힘을 모으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수만리 떨어진 머나먼 이곳 스리랑카에까지 와서 2100년 전에 있었던 엄청난 불사를 보고 대한민국이 잘 되어야 한다고 기도한다거나 염원하지 않았다. 여행이 무사히 잘 끝나기를 기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여행 중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하려고 하고 문제가 될만한 건 피해가는 현명함이 더해지도록 더 노력할 뿐이다.
국가의 혼란에 관해서도 잘 해결되길 기원하거나 빌기보다는 지금 같은 현상과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원인을 제거하고 문제가 되는 것을 치유, 개선할 수 있을까라는 쪽에 생각을 집중해봤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현대 해체주의 철학자들이나 불교의 破邪顯正의 논리처럼 어떤 문제가 되는 그 문제 자체를 해소시키는 것이 좋듯이 문제의 씨앗 자체를 만들거나 뿌리지 않는 지혜를 가지는 정신과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런 상태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 속세 논리로 싸워도 이런 식으로 싸워선 이길 수 없다.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엔 사태를 돌이키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면 반전이 가능하겠지만 이미 대세가 기울어 임계점에 도달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과보를 받아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억울하겠지만 피아 모두 무지로 인해 저지른 업이 나라 전체의 共業으로 전변됐기에 그 과보는 피해 갈 수 없다.
자료 공유차원에서 동영상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아래는 어제 폭우 속에 찾아간 스리랑카 중부 지역의 담불라(Dambulla) 소재 王事 석굴 및 황금 사원(Royal Cave Temple and Golden Temple)에서 王事 석굴 내의 불상들(총 167구)을 촬영한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거리지만 스리랑카에서 세계문화 인류 자산인 문화재를 엉망으로 관리하는 것을 보고 어이없었다. 관람객들에게 촬영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촬영을 하긴 했지만 2천 년이 넘는 이토록 장엄한 대서사의 인류 공동 자산을 이렇게 방치하다시피 해도 되는지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이 문제는 따로 스리랑카 정부에 얘길하거나 이곳의 영자신문에 문제제기를 해보면 어떨까?
어제 낮부터 시작된 장대 같은 폭우는 아침인 지금도 그칠 줄 모른다. 이러다간 다음 행선지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은 갈 수 있을 것이다. 길은 길에 연해 있고 인연가합으로 나타난 이 비도 영원하진 않을 것이니까! 그나저나 아침밥은 어떻게 먹지?
2025. 1. 19. 04:34(현지 시각)
스리랑카 시기리야(Sigiriya)에서
雲静 초고
1. 22. 01:46
일부 가필
'왜 사는가? > 여행기 혹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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