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두 세계의 뭄바이, 세계 최대 부호와 절대 빈곤이 공존하는 곳

雲靜, 仰天 2025. 1. 30. 14:32

두 세계의 뭄바이, 세계 최대 부호와 절대 빈곤이 공존하는 곳


인도 서부 해안의 최대 도시 뭄바이 체류 이틀 째. 나는 아침에 눈이 떠지자마자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후 바로 세계 최대 부호의 대저택이 있다는 곳을 찾아갔다. 택시를 잡아 타고 “무케쉬 암바니의 집으로 갑시다”라고 하니 택시 기사는 군말 없이 차를 몰았다. 한 두 번 간 게 아니라는 듯이 알았다고 하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무케쉬 암바니(Mukesh D. Ambani)가 누군가? 그는 인도 국내 타타(Tata) 그룹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릴라이언스(Reliance) 인더스트리 그룹의 재벌기업 총수로서 세계적인 부호다. 한때 세계 제4위의 부호로 평가된 바 있고 여전히 아시아에선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부호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몇 년 전 인도 얘기를 하면서 무케쉬 암바니와 그의 호화 저택을 소개한 바 있다. 여기에 다시 올린다.
https://suhbeing.tistory.com/m/831

이제 암바니의 사업 거점 지역인 뭄바이에 온 이상 그가 살고 있는 대저택을 보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의무감까지 느낄 지경이다. 암바니 일가가 기거하고 있는 집은 높이가 무려 174m나 되는 27층 빌딩이고 자그만지 10억 달러(한화 약 1조 1340억원) 짜리라는 걸 미리 알고 간다. 그의 저택은 “안틸라”라고 불리고 있다. 그의 전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이 건물엔 방만 자그마치 6천여 개가 있다고 하니 놀랄 지경이다. 과연 어떻게 생긴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그 건물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그 식구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약 20분 후, 이윽고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기 전 택시가 고가도로에 오르면서부터는 벌써 먼 곳에서도 안틸라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다가 그의 대저택을 직접 보니 현장감이 높아졌다. 택시에서 내려 위를 올려다 보니 건물의 크기와 모양이 낯설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상의 사진에선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고층 건물 하단부에 덩쿨이 건물을 감싸고 있는 게 이채로웠고, 건물 입구 앞에 웬 무장 군인들이 장갑차를 세워놓고 경비를 서고 있는 게 아닌가? 건물 전체를 빙 둘러싼 형태로 한 두 명도 아니고 족히 1개 소대 병력은 돼 보였다. 건물을 둘러싸고 몇 곳의 초소도 보였고 그 속에는 무장한 병력들이 있었다. 그들은 기관총을 소지하고 장갑차에도 거총이 돼 있는 상태였다. 저들은 군인인가? 아니면 경찰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케쉬 일가에서 고용한 사설 경호조직일까?

호기심이 발동해서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경찰이냐고 물었다. 군용 지프에 군용 무기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사설 경호단체는 아닌 것 같다. 그들이 군인이라면 국가가 무케쉬 암바니 일가를 보호해준다는 소린가? 답이 없어 이번엔 군인이냐고 물었더니만 경비자들 중 지휘관인 듯이 보인 자가 굳은 표정으로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고 한다. 부정도 긍정도 않는 사무적인 답변, 아마도 철저히 사전 교육을 받은 듯했다. 다른 무장 병사에게 물어봐도 무표정에 묵묵부답이었다.

무케쉬 암바니 가족이 사는 왕국 같은 그의 저택 정문
건물 입구 정문에는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초소도 몇 개가 설치돼 있다.
복장이 군복을 입은 군인으로 보여서 군인이냐고 물어도 답이 없는 사람들.
건물 측문 앞에도 인도군으로 보이는 병사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경비병들은 나에게 사진도 마음대로 못 찍게 했다.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사진기를 들고 찍으려고 하면 언제 봤는지 잽싸게 다가와서 제지한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는 포토 포인트를 가리키며 그곳에서만 사진을 찍도록 했다. 이 지시를 어기기라도 하면 바로 체포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사진 찍을 수 있는 권리가 박탈 당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아니 인도 정부가 정한 군사 시설이나 보안시설도 아닌 개인 집인데 건물을 찍든 대문을 찍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자기 건물이 사진 찍히지 싶지 않다면 그렇게 주목받게끔 건물을 짓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나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불만을 투덜거리면서 어쩔 수 없이 경비병의 지시대로 포토 포인트에 서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무케쉬 암바니 자신과 가족들의 신변을 염려해서 이토록 삼엄하게 저택을 에워싸듯이 무장병력으로 경계를 하게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폭탄 테러와 저격 사고가 빈번하는 이곳 인도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택 앞에 보초를 서고 있는 무장병력들이 군용 지프에 군용 무기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사설 경호단체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국가가 직접 무케쉬 암바니 일가를 보호해준다는 소린가?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군대의 사유화와 다름없는데 이것은 인도이니까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무케쉬와 그의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인생의 목적이 뭔지, 왜 사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특히 무케쉬에겐 자신이 이룬 거대한 부의 의미가 무엇이고, 이렇게 극심한 인도의 빈부격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다. 두 번째 질문은 그에게 상당히 난처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케시 가족들 중 그 어떤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니 결국 나 혼자 묻고마는 푸념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도로 큰 길가에서 본 무케시 암바니의 저택
무케쉬의 저택 뒷쪽으로 돌아가서 찍은 건물 모습
암바니의 저택 정문 앞 포토 존에서

세계 최대 부호의 집을 뒤로 하고 자동차 대로로 걸어나왔다. 뭄바이 최대, 아니 어쩌면 인도 전역에서 가장 못 사는 빈민촌일 수 있는 다라비(dharavi)에 가기 위해서였다. 인도 최대 갑부의 대저택을 봤으니 이번엔 인도에서 가장 못산다는 빈민촌도 같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다라비행 버스를 기다리는 중 길 맞은 편 저쪽 무케쉬의 건물이 여전히 시야에 들어오기에 바라본다. 그러다가 이곳 시민들의 그에 대한 평판을 듣고 싶어서 정류장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질문을 받은 두 여성은 이구동성으로 무케쉬는 “대단한 분(great man)”, “멋지고 훌륭한 분(nice and superb man)”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만 그에 대해선 답이 없다. 그래? 훌륭하다면 그런 갑다라고 할 수밖에!

이윽고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바로 가는 직행 버스는 없다고 해서 가다가 중도에 갈아탈 요량으로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영화에 나오는 영국 버스 같이 펑퍼짐하고 차안에는 유리창이 다 열려져 있다. 승객 사이를 오가면서 승객들에게 요금을 받는 여차장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마엔 우리의 곤지 같은 것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눈썹 바로 위 이마의 정중간에 붉은색으로 찍혀 있는 둥근 원 모양의 점은 힌두어로는 “बिंदी”(빈디)라고 부른다.

“빈디”라는 용어는 인도 고대어 산스크리트어의 "빈두(bindu)"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방울’이나 ‘입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인도 전역에는 다양한 언어와 방언이 존재하기 때문에 빈디는 꿈꿈(kumkum), 신두르(sindoor), 띱프(teep), 띠끄리(tikli), 보뚜(bottu) 등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빈디가 지닌 의미는 인도에선 지역이나 언어에 상관없이 공통적이다. 즉 베다 경전에서 기록돼 있는, 신체 중심을 따라 존재하는 7개의 주요 차크라 중 여섯 번째 차크라인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 즉 ‘이마 차크라’ 또는 ‘제3의 눈 차크라’)가 바로 빈디가 위치하는 지점이라는 걸 보면 이 빈디는 인간 정신의 중심으로서 내면의 영혼을 보는 제3의 눈이라는 의미다.
버스 안 노인석 표시. 힌두어와 영어로 쓰여져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태면, 이 빈디는 힌두교도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자이나교도의 여성들도 애호하는 몸 장식 중 한 가지다. 그렇다면 이 버스 안내인은 힌두교도인지 자이나교도인지는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손님들 사이를 오가면서 차비를 받느라 바쁜 여차장에게 남의 종교를 묻는다는 건 업무 방해다. 사람이 붐비는 버스 안에서 뜬금없이 종교가 뭔지 물어보는 것도 결례다. 그래서 그냥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차장은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으면서 빙긋 웃음을 짓는다.

도중에 내려 갈아 탈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해서 조금 기다리다가 결국 툭툭을 타고 갔다. 약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다라비에 도착하니 대략 오후 3시 경이었다. 다라비는 이곳 뭄바이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다.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 마다 그곳 현지인들이 부르는 이름이 있다고 한다. 요컨대 다라비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인 것이다.

다라비는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220 헥타르의 면적에 60만~10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다라비는 크게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거지역은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 주민들은 대부분 주거지역과 붙어있는 이곳의 상업지역에서 일을 한다.

지도상에서 붉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곳이 다라비 구역이다.

이윽고 택시 기사가 다라비라고 해서 택시에서 내리니 먼저 도로 중간에 작지 않은 좌상 인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길가엔 여기저기 꽂혀있는, 인도의 여러 정당들이 홍보용으로 걸어놓은 당기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 정당들은 과연 다라비와 같은 빈민촌에 대해서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을까?

다라비(dharavi) 초입에 해당하는 Maharaj Marg라는 도로에 있는 15세기의 성자 시로마니(Saint Shiromani)의 좌상. Saint는 성자, Shiromani는 직역하면 머리 위의 보석인데 본뜻은 단체의 지위가 ㅡ으뜸인 사람을 가르키기도 한다. 그래서 Saint Shiromani는 성자 중의 으뜸인 성이인데 Rohidas가 본명이라고 한다. 인도 전역에선 많이 알려진 유명한 존재는 아니지만 이곳 마하라슈트라 지역에선 유명하다고 한다. Maharaj은 원래의 뜻이 대왕이며 유명한 성자들의 이름에 추종자들이 붙여서 부르는 전통이 있다고 하며, Marg는 도로라는 뜻이다.
인도에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i)라는 이름의 도로명 Marg가 많다고 한다.


잠시 주위를 돌아보니 다라비로 들어가는 입구와 출구는 여러 곳에 있어 보였다. 내가 들어간 곳은 위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다라비 전체 지역 중 뭄바이 시내 남쪽 측면에 속한다. 바로 눈앞 왼쪽으로 난 비좁은 장터 길 같은 곳으로 들어가나 미로 같은 골목길로 연결돼 있다. 나는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면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돌아봤다. 골목길이든, 1차선 도로든 곳곳에 쓰레기들이 없는 데가 없었다. 악취도 장난이 아니었다.

골목은 폭이 1~2m 정도로 좁았다. 위를 올려다봐도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판자집들, 함석집 등이 좁디좁은 골목 안에 긴 미로처럼 형성되어 있었다. 골목길이 연속돼 있다가도 좁은 골목을 나가면 또 우마차와 자동차 하나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길도 있었다. 물론 비포장이었고 이 길로 갖가지 물건들을 실어나르는 트럭들도 있었다. 골목 안과 길거리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고, 집 안에서는 갓난아기가 칭얼대고 있으며, 초점 잃은 동공의 노인네들이 멍하니 앉아 있는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곳 다라비에는 작고 협소한 구멍가게, 이발소, 미용소, 방 한 칸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무두질하는 가죽 공예공장, 봉제콩장, 군것질거리도 파는 리어카상, 일용품 가게, 옷 가게, 화학약품 공장, 가발 만드는 가내공장, 구두수선공, 작은 방앗간 등등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직종의 가게들이 있었다. 한 마디로 이곳 자체가 하나의 생활권이자 마을공동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한 가지 특징은 이 안에서 여러 가지 생활 물건들이 가내수공업 형태로 생산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과거 한국의 신앙촌 같은 식이라고 할까? 그러나 낮이어서 그런지 미국의 슬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약, 음주, 폭력, 범죄, 매음 등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길가의 노숙자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런 문제들은 다라비에 없다는 뜻인가?

어두컴컴한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나는 점차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곳곳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역한 냄새, 공기가 통하지 않아서 통풍이 거의 되지 않는 데다 퀴퀴하고 매캐하고 독성이 있는 듯한 악취를 맡으면서 두 시간이나 돌아다녔으니 머리가 아프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마스크도 끼지 않고 그렇게 헤집고 돌아다녔으니 머리가 아프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뭄바이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물론 인도의 다른 곳엔 여기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빈민촌도 있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주거시설도 열악하지만 의료 혜택은 어떻게 받고, 또 무엇보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과연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있을까? 이곳 사람들의 월평균 소득은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둘러본 바로는 이것들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인 것 같다.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인다. 보통 인도 사람들의 월 평균 수입은 577달러 정도 된다고 한다. 뭄바이에 사는 중산층의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으니 이 돈으로는 살기 어렵다고 한다. 한 달 생활비로 최소한 700달러는 있어야 안정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다라비 주민들은 아마도 월 70달러나 될까?

나의 머리 속에는 오늘 오전에 본 무케쉬 암바니의 호화 저택과 이곳의 판자촌 같은 집들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곳 사람들에게 무케쉬 암바니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 곤란한 질문을 하고 싶어도 그들에게 더 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까 싶어서...

과연 인도의 모디 정부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이러한 절대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주거시설 개선, 교통로 확충, 상하수도, 쓰레기처리, 오염된 공기 정화, 병원 진료, 교육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모디 총리가 대외 관계와 관련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 역시 인도의 패권을 상당히 의식하고 정치를 하는 것 같다. 인도를 군사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정부 예산을 투입하기도 한다. 특히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는 파키스탄이나 오랫동안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을 많이 의식하는 거 같다. 실제로 인도인들에게 물어보면 파키스탄 사람들을 원수로 취급하고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2023년 기준으로 인도는 GDP가 3152.6억 달러다. (통계청 KOSIS 활용, 단위 : 10억 US$) 2023년의 GNP에 현재(2025년 2월 1일) 10억 달러의 환율인 1조 4,583억원을 곱하면 한화로는 4,597.4조원이 된다. 이 가운데 절대 빈곤 퇴치나 주거, 위생 등등 빈민들의 각종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할까?

과연 모디 총리는, 아니 역대 인도 정부의 지도자들은 이곳 다라비에 한 번이라도 와 봤을까? 이곳의 문제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실상은 알고 있을까? 모디는 인도양의 패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국방비에만 많은 돈을 퍼넣기보다 패권추구는 조금 내려두고 그것에 들어가는 국가 예산을 절대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의 해결과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개선에 투여하면 어떨까?

인도 최대의 도시 뭄바이, 무케쉬 암바니의 호화 저택과 다라비의 참상을 봄으로써 하나의 도시 안에 극명하게 다른 두 세계가 존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날카롭게 대비되는 무케쉬 암바니의 대저택과 다라비의 빈민가 모습은 내가 인도를 떠나고나서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2025. 1. 30. 14:37
인도 뭄바이 공항에서
雲静 초고

우리도 1960년대에는 이런 빈민촌 판자촌이 전국 곳곳에 많았다.
다라비로 가는 길가에 빈민촌들 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은 뭄바이의 빈민촌이 아니고 여타 인도의 빈민촌 전경이다.
다라비에는 여러 곳에 입구가 있다. 그 한 곳의 입구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파는 좌판이 늘어서 시장이 형성돼 있다. 아래 모든 사진은 내가 다라비 안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것들이다.
한 눈에 봐도 신선도가 높지 않은 생선들이다.
지붕 밑에 에어콘이 달려 있는 게 조금 의외다.
생활 쓰레기와 그로 인한 악취는 이곳 다라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 전역에 없는 곳이 없다.
가장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문지방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다. 현대 사회의 소비의 강제력이 이곳에도 침투돼 있다.
통풍이 되지 않는 이런 곳에서 살고 있다.
제봉틀로 의류를 수선하는 가게
맨발로 사는 아이들, 어떤 꿈이 있을까?
이 아이들 손에도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