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인물 및 리더십 49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술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술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해군발전자문위원) 술은 성서에 나와 있듯이 인류와 시원을 같이 한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오랫동안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실이 암시하지만, 술이란 잘 마시면 약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된다. 적당한 음주는 중추 말초신경을 흥분하게 하고 위산과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 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좋게 만든다. 반면, 음주가 지나치면 판단력에 장애가 생기고, 말초신경이 둔해 져 순발력이 떨어지고 행동도 둔해진다. 닭이 물을 먹을 때 한 모금 먹고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한 모금씩 마시는 모습을 상형화한 술 주(酒)자의 유(酉)가 닭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오후 5~7시의 뜻도 있듯이 술은 이 시간에 천천히 마시는 게 좋다는..

박경석 장군의 못다한 이야기 : 박경석 장군의 문학과 군사평론이 국가 시책에 반영된 콘텐츠

박경석은 예비역 장군으로서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그는 지금까지 90 평생을 사시면서 오직 바른길, 옳은 길 정의로운 길을 걸어오신 무인이자 문학가다. 박 장군은 과거 젊은 시절 군대생활을 할 때는 군인으로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조국수호,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데 앞장 섰다. 그리고 군문을 전역한 후에는 군대에 있을 때부터 "한사랑"이라는 필명으로 문단에 등단한 바 있는 문학적 소양을 활용해서 전우신문, 군사논단을 만들어 군내 소통과 병영문화 계도와 창달에도 이바지 했다. 또 군사평론가협회를 결성해 다년간 회장으로서 이 조직을 이끌면서 양식 있고 지혜로운 군사문화 진작, 국방건설과 국가시책에 도움이 되거나 필요한 많은 정책들을 만들어 제안하기도 했다. 그동안 박경석 장군의 이러한 활동을 통해 국가..

윤석열과 이재명의 리더십 : "유능한 이재명"의 허구를 믿는 분들께

윤석열과 이재명의 리더십 : "유능한 이재명"의 허구를 믿는 분들께지도자의 리더십은 智力, 언어구사 및 표현능력, 공감능력, 정의감, 인간적 매력, 권력의 합법성, 전문성, 통찰력과 통솔력 등등 여러 가지 무형의 덕목들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말과 행동의 계합, 즉 언행일치에서 형성된다. 지도자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언행일치는 그런 덕목들의 外化다. 말은 남들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愼獨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하고, 행동은 진실(誠信)되고 모순됨이 없는 일관성에서 믿음을 갖게 한다. 말과 행동은 자기라는 소아를 버리고 국민 전체의 이익과 공동선을 우선시하는 利他行의 마음가짐으로 연계되고 관통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시쳇말로 "타고난 천성은 개 못 준다"라는 말이 있다...

집권 여당 대표의 무지한 역사지식과 위험한 역사관

집권 여당 대표의 무지한 역사지식과 위험한 역사관 민주당 대표 송영길이 또 다시 무식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안보불안감을 자아내게 만드는 '사고'를 쳤다. 지난 2020년엔 6·25전쟁 발발 원인을 두고 "미국-소련 시나리오설", "남침 유도설" 등의 구닥다리 수정주의의 음모론을 제기해서 시끄럽게 하더니 이번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 멸공통일을 외치다 6·25 남침의 핑계거리만 제공했던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저께 송열길 대표 자신의 SNS에다 윤석열 국힘당 후보의 대북 "선제공격" 발언을 비판하고자 한 의도에서 쓴 글에서였다. 위 송 대표의 인식은 6·25전쟁의 실상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극치다. 한 마디로 이 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준비도 없이..

공자에게 한 수 가르쳐준 노자의 처세술

공자에게 한 수 가르쳐준 노자의 처세술 나는 일찍부터 처세술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타고난 천성대로, 바탕대로 사는 게 가장 자연에 부합하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중에 처세술 관련 책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도 한 줌 티끌로 보고 한 권도 사본 적이 없다.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삼국지도 아주 오래 전에 한 번 읽고는 더 이상 읽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남을 속이거나 해를 입혀서 이득을 취하고 성공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칭송하는 중국인들의 처세술이자 인생관이 반영된 것이어서 우리 사회가, 최소한 내가 지향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자에 그냥저냥 살아가는 동네 마실 같은 저자거리를 벗어나 더 넓고 비정한 "江湖"에 몸을 담다보니 처신에 신중할 필요가 있..

박경석 장군의 못다한 이야기 : 한국전쟁 경험과 전쟁기념관의 숨은 일화

박경석 장군의 못다한 이야기 : 한국전쟁 경험과 전쟁기념관의 숨은 일화 박경석 예비역 장군은 전쟁기념관의 인터뷰에 응해서 지나간 옛날 일들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핵심내용을 추리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초기상황, 육군종합행정학교 탄생 배경, 육사 제2기생들의 6.25전쟁 참전, 박경석 장군이 인민군 포로가 된 상황,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전쟁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과의 숨은 일화 등이다. 이 이야기들은 한국전쟁 연구자들이나 전쟁사 연구자들에게 사료 가치가 있는 내용들이다. 끝으로 박 장군께서는 같은 민족인 남북 간에는 절대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하시면서 인터뷰를 매듭지으셨다.―2021. 9. 22. 20: 26. 雲靜 編註 https://youtu.be/5EQwst..

박경석 장군의 못다한 이야기 : 보안사령관의 불의와 부정 종용을 거절하다!

박경석 장군의 못다한 이야기 : 보안사령관의 불의와 부정 종용을 거절하다! 아래에 올려놓은 글은 박경석 예비역 장군이 1970년대 중반 자신이 군대 시절 직접 겪은 경험을 회고한 기록이다. 이 글은 군 내부에서 영남 출신 육사 제8기생들 중 진종채 보안사령관과 이희성 장군이 당시 제1군단장 양봉직 중장을 제거한 동기 및 과정 그리고 박경석 장군을 자신들 편에 서도록 당근을 제시하면서 불의와 부정을 눈감아 줄 것을 지시하자 박 장군이 그 지시 혹은 호의(?)를 일언지하에 뿌리친 내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국가들이 생겨났지만 대부분 국가권력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었다. 한국도 정부수립과 함께 민간인들이 주도한 초기 10여 년을 제외하고 그 뒤부터는 줄곧 군부의 손에 국가가 운영됐다. 한국에 군..

영욕의 두 삶, 이범진과 박병두 添言

영욕의 두 삶, 이범진과 박병두 添言 서상문(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이범진(李範晉, 1852~1911)과 박병두(朴炳斗, 일본명 靑山三藏, 1895~19??), 지난 주 학술교류의 일환으로 논문 발표차 러시아국방부 군사학술연구소를 방문한 우리 일행이 러시아에서 만난 善과 惡, 美와 醜가 교차한 두 한국인 역사인물이다. 이범진은 초대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공사였고, 박병두는 일본군 소장계급으로 관동군 보급부대장을 지낸 군인이다. 두 사람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삶을 살았다. 1911년 1월 26일(제정 러시아 그레고리력 1월 13일) 12시 제정 러시아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 뻬스쩰가 5번지의 한 저택에서 3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범진이 자신의 거실에서 천장 전등에 밧줄을 매단 채 목을 맨..

진정한 진보적 지도자가 필요한 때

진정한 진보적 지도자가 필요한 때 진정한 진보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한 법, 제도, 공익을 지키려거나 지지하는 정신이다. 현재 스스로 진보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십중구구가 거짓 진보주의자들이다. 도마 안중근 의사는 자기 일신의 이익이 아닌 인류 보편가치인 세계평화와 조국이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목숨도 초개 같이 버렸다. 민족과 진영을 떠나 모든 이들의 존숭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다. 오늘날 이 시대, 이 나라에는 이런 정신과 자세를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 http://m.blog.daum.net/suhbeing/543?category=1846353 2021. 1. 3. 09:55 Korea21 단톡방에 올린 글 雲靜

전태일의 분노와 희생은 누구에게 이용당했는가?

전태일의 분노와 희생은 누구에게 이용당했는가? 내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1980년대 초 군 전역 후의 대학시절이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선 데모에서 최류탄 맞아가면서 한창 돌을 던지고 다닐 때였다.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법치국가라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분신한 청계천 피복노조의 노동자였다. 전태일에게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그가 당시 요즘 말로 “잘 나가는 정규직 재단사”여서 마음만 먹었으면 사장이 돼서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었음에도 자신보다 처우가 좋지 않은 소위 ‘시다’와 미싱사로 일하는 13세 전후의 소녀공들에게 자기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12㎞가 넘는 길을 걸어서 출퇴근하는 등 약자를 배려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