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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 대표의 무지한 역사지식과 위험한 역사관

雲靜, 仰天 2022. 1. 22. 18:31

집권 여당 대표의 무지한 역사지식과 위험한 역사관

 
민주당 대표 송영길이 또 다시 무식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안보불안감을 자아내게 만드는 '사고'를 쳤다. 지난 2020년엔 6·25전쟁 발발 원인을 두고 "미국-소련 시나리오설", "남침 유도설" 등의 구닥다리 수정주의의 음모론을 제기해서 시끄럽게 하더니 이번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 멸공통일을 외치다 6·25 남침의 핑계거리만 제공했던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저께 송열길 대표 자신의 SNS에다 윤석열 국힘당 후보의 대북 "선제공격" 발언을 비판하고자 한 의도에서 쓴 글에서였다.
 
 

6.25전쟁 관련 왜곡된 주장을 사실인양 '용기 있게' 발언한 송영길 대표(사진 출저 : 뉴시스)

 
위 송 대표의 인식은 6·25전쟁의 실상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극치다. 한 마디로 이 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 멸공통일을 외"쳤기 때문에 김일성에게 "6·25 남침의 핑계거리"를 제공해서 일어난 게 아니라 이승만이 어찌 했든 크게 관련이 없이 빨치산파 두목 김일성이 박헌영(당시 부수상 겸 외무상)의 남로당파, 허가이가 중심이 된 소련파, 무정, 박일우, 김두봉 등등의 연안파(중국공산당 당적을 가졌거나 그들의 지지를 받는 친중파 정치세력)와 연합해서 독자적으로 남침적화통일 의지를 가지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서 계획적으로 도발한 전쟁이었다.
 
6·25전쟁은 송영길 대표가 얘기한 남침유도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 전쟁은 사전에 김일성이 스탈린, 마오쩌둥과 치밀하게 전쟁을 협의하고 3자가 합의해서 일으킨 "국제전적 내전"이었다. 또한 이 전쟁은 김일성이 중국의 승인과 지원이 없으면 김일성 등의 연합세력만으로는 전쟁도발 및 수행 능력이 안 된다는 판단하에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 요청해서 남침전쟁도발을 허락하고 지원해준 소련의 전차 대포 등등 대량의 무기 장비 그리고 전쟁 전 미리 최소 5만 4000명 이상의 한적 병사들을 북한에 넘겨준 마오쩌둥의 대규모 군사적 지원(무기 장비)으로 이뤄진 것이다.
 
환언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어떠하든 그와 별개로 무력에 의한 남한 적화 통일의지를 가진 김일성의 연합세력은 세계공산화라는 긍극적 목표를 공유한 스탈린과 마오가 도발전쟁을 저지하거나 무기 장비와 병력 등을 제공해주지 않은 게 아닌 이상 반드시 남침을 감행하게 돼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김일성에게 "핑계거리"를 주지 않았어도 김일성은 남침을 시도하게 돼 있었다. 따라서 "6·25 남침의 핑계거리"를 제공했다는 송 대표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지면 관계상 여기서 다 소개할 순 없고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면 국내외 어떤 전문저서보다 1945~1953년 간 김일성이 어떻게 전쟁을 준비하고 도발했는지 전모를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다. [서상문,『毛澤東과 6·25전쟁 : 파병결정과정과 개입동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6년 ; 서상문,『6·25전쟁과 베트남전쟁 : 동아시아전쟁사 최근 연구논문선집』,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7년 ; 서상문,『알아봅시다! 6·25전쟁사』, 제1권(배경과 원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8년 ; 서상문 등 4인 공저,『6·25전쟁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0년 제7권(중공군 참전과 유엔군의 철수) ; 서상문,『6·25전쟁 : 공산진영의 전쟁지도와 전투수행』,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6년), 상권, 하권 ; 기타 필자 명의의 여러 학술논문들]
 
 

필자가 국내 한국전쟁 학계 최초로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을 중국의 시각 및 입장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밝힌 연구서
위 저서는 상하 2권 총 908쪽인데 판형이 작은 신국판으로 환산하면 최소 1500쪽은 족히 될 것이다. 북한, 소련, 중국의 공산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추적했지만 전쟁은 상대가 있는 이상 남한과 미국도 함께 기술돼 있다. 통상 전쟁연구에서 전쟁발발 원인에 치중하는 학계의 일반적 동향과 달리 본서는 국가전략과 전쟁전략에서부터 아래로 전투과정까지 서술하다 보니 볼륨이 크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전 북진을 주장한 건 사실이지만, 송영길 대표의 주장처럼 이승만 대통령이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 멸공통일을 외"친 건 아니었다. 광복 후 극도로 열악한 경제 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육해군을 창설케 하면서 함정을 건조하기도 하고 해군창설의 주역 손원일(상해 임정시기 의정원 의장이었던 손정도 목사의 장남) 제독을 미국에 보내 이 대통령의 지시로 지원한 정부보조금(4만5,000달러) 및 해군 장병(그 가족들까지 동참)들이 낸 성금(1만5,000달러)으로 미 해군 함정(PC 701 백두산함을 비롯해서 PC702, 703, 704)들을 구입해왔을 뿐만 아니라 여타 육군과 공군의 군비를 위해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전략적 방침에 따라 공격용 무기 장비는 지원하지 않고 방어용 무기 장비를 위주로 제공해줬다. 송 대표는 아마도 이런 사실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승만 전 대통령이 준비 없이 북진을 외쳤다고 주장한 것이다. 내가 그를 무지하다고 보는 근거 중의 한 가지다. 동시에 그런 왜곡된 사실들로 형성돼 있는 송 대표의 역사의식 및 역사관이 위험한 것이라는 평가도 가능한 것이다. 논리학에서 기본 전제에 오류가 있으면 결론이 오류에 빠지듯이 역사에서도 기본 사실을 잘못 알고 있으면 그로부터 생성되는 평가나 역사관이란 게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건 필지의 사실이다. 김일성의 남침을 사실이 아니라거나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역사지식 및 역사관(사실 그의 역사 지식의 일단을 보면 역사관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지만)으로는 북한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맺어질 지는 불 보듯이 뻔하다.
 
송영길 대표가 이런 엉터리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고 있으니 그의 입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때 북한이 "포로 쏘지 않은 게 어디냐"며 북한을 두둔하거나 "미국은 핵을 5천 개나 갖고 있으면서 북한에게 핵을 가지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냐"는 초딩이 떼쓰는 듯한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포로 쏘지 않으면 그 밖에 그 어떤 도발도 가능하다는 소린가? 또 미국이 핵탄두를 수 천 개나 갖고 있으니 북한이 핵을 가져도 된다는 소린가? 논리가 너무 엉성하지 않는가?
 
그런데 6·25전쟁 발발 원인에 대한 송 대표 류의 얕은(천박한) 이해와 주장은 송영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운동권 출신 좌파들 대부분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공통된 인식이자 무지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식과 자만, 오만과 지적 허영기로 뭉쳐진 바보들의 행진이 바로 국민들, 특히 안보전문가들에게 안보를 크게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에겐 과거 1980년대 잠시 학생운동 할 때 읽었거나 주어들은 아주 단편적인 지식이 전부인 듯 해 보인다. 어쩌다가 간혹 출장 갈 때 기내에서나 차안에서 읽은 한 두 권의 관련 저서로는 이 전쟁을 체계적이고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아래에 캡쳐해놓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정희나 이석기 등등도 유사한 인식과 주장을 보인다.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4895&page=2&total=47

통합진보 구당권파에게 묻는다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이석기와 김재연이 결국 대한민국 국회에 입성했다. 그들이 반대파와 대다수 국인(國人)의 반대를 묵살하고 막무가내로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목적이 무엇일까? 수치는 순

www.kyongbuk.co.kr

 

송 대표는 이어서 "전시작전권 회수 반대"와 "대북 선제폭격론"을 주장한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에게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1962년'이라는 책을 "선물로 보내겠다"는 오만도 부렸다. 선제폭격론이 위험하다는 얘길 해주겠다는 의도에서 이 책을 선사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그는 한 가지만 알고 다른 한 가지는 모르는 것 같다. 외눈박이 지식이자 판단인 셈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를 굴복시켜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려는 시도를 무산시킨 것은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공격용 핵미사일 기지를 비밀리에 건설하려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케네디 대통령은 다양한 옵션을 갖고 검토한 끝에 미사일을 싣고 쿠바로 향하던 소련 선박을 해상에서 막아서서 소련에다 미사일 기지건설계획을 포기할 것과 쿠바에서 미사일을 제거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 동안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에 떨었지만 소련은 손을 들고 말았다.
 
이에 대해선 역사를 미시적으로, 거시적으로 종합해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당시 지지자들은 케네디의 결단과 용기에 찬사를 보냈고, 비판자들은 외교적으로 조용히 처리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었는데도 무리하게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썼다며 맹렬히 비난했지만 두 입장 모두 각기 입론의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과정보다는 결과가 어떠했는가 하는 관점에 치중해서 평가하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는 미소 관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 뒤 소련에게 군비확산에 치중하도록 만든 결과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이 승리하게 돼 미소냉전시대를 종결시킨 역사적 평가도 가능하다. 게다가 짧게는 미소 양국이 직접적인 군사적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는 긴장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 그 이듬해 미소가 영국과 함께 대기권 내에서 핵실험을 금지하는 획기적인 조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정치가의 관점과 역사가의 관점이 늘 일치할 순 없지만, 송영길 대표는 일방적으로 선제폭격 주장을 비난할 게 아니라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또 그것의 장단점이 국가 안보의 손익에 어떤 대차대조표가 만들어질지 정쟁 차원이 아니라 진지하게 토론 연구하자고 제안했어야 했다. 안보에는 여야와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지 않는가? 그것이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발휘해야 할 미덕이자 지도력이 아닌가?
 
2022. 1. 22. 16:30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