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한국전쟁

아직도 6.25한국전쟁이 내전이라는 자들은 누군가?

雲靜, 仰天 2021. 9. 29. 06:11

아직도 6.25한국전쟁이 내전이라는 자들은 누군가?

 
김일성의 6.25남침전쟁을 내전이니 하는 헛소릴 해대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고 해서 오늘 9.28서울수복 기념일에 6.25전쟁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탭니다.
 
6.25전쟁이 북한 김일성이 대남 기습 공격을 감행한 명백한 "남침 전쟁"임에도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김일성의 남침이 아니라는 의미로 "내전"이라느니, 당시 해방공간의 38도선 상에서 남북한 군 사이에 빈발하게 총격전이 벌어졌으니 나중에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먼저 남침했다고 해도 38도선 상에서의 총격충돌은 그 동안 일상사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굳이 누가 먼저 쏘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이런 발언 혹은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 미국의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Bruce Comings)의 주장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읊은 이야기다. 브루스 커밍스는 이런 논리로 한 때 기존 주류 학자들의 북한 남침 주장을 부정하면서 미국 사학계와 한국 사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로부터 그의 주장은 이른바 기존 남침설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수정주의"라고 불렸다.
 
 

미국 내 최고의 한국전쟁 전문가로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대표작으로서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킨 저서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미국 정부의 각종 문서보관소(아카이브)에 보관돼 있는 대량의 자료를 활용해서 한국전쟁의 원인과 배경을 분석한 전문학술서다.

 
이때부터 학자들과 언론인들이나 정치인들 사이엔 브루스 커밍스나 수정주의 이론을 들먹이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너도 나도 유행병처럼 퍼졌다. 특히, 반미운동과 연계돼 반미의 역사적 근거의 하나로 거론되면서 학생운동권과 노동운동권에서 그에 대한 추종 현상이 두드러졌다. 거의 신앙처럼 받아들여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주체적인 입장의 견지나 학술에서도 사실에 근거한 실증적, 실사구시적인 학문 자세가 결여돼 사대성과 맹목성이 곳곳에 독버섯처럼 남아 있었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 이론은 한 마디로 북한의 남침을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보고 북한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 책은 그때까지 공개되지 않은 미 정부의 다량의 문서들을 근거로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시킨 것이어서 당시 미국과 한국의 한국전쟁학계에서 좀처럼 논박이 되지 않았다. 1991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이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받아옴으로써 김일성이 스탈린의 군사 지원과 동의를 얻어 남침한 사실이 입증된 여러 전문 등의 러시아 비밀문서(통상 학계에선 "옐친 문서"로 통용됨)들이 국내에 들어온 뒤에 1990년대 중반까지도 그 위력이 죽지 않았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까지도 그 생명력이 살아 있었다. 국내 한국전쟁 학계에서 일군의 학자들(박명림, 서상문 등)이 옐친 문서들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이나 2000년 초반부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학계에서 브루스 커밍스 이론을 들먹이는 사람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없다.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 학설에 대한 학술적 비판의 물꼬를 튼 박명림의 저서(나남출판사, 1996년, 상, 하)
서상문이 중국의 적지 않은 1차 사료들을 참조, 분석, 종합해서 마오쩌둥의 한국전쟁 개입을 밝힌 국내 학계 최초의 연구서.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06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책은 정부 연구기관에서 발행한 비매품이었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국내 학계 최초로 한국전쟁 당시 공산진영의 전쟁모의와 전략 전술 및 전쟁지도와 전투수행을 자세하게 규명한 필자의 저서. 2016년에 나온 이 책 역시 동일한 정부 연구기관에서 발행한 비매품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언론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상하 두 권을 합쳐 큰 판형으로 95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분량은 신국판 판형으로 환산하면 대략 최소 1,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저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필자가 참고한 자료만 러시아어,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 수천 가지가 넘는다.
중국 학계에서 보기 드물게 러시아 자료를 광범위하게 활용해서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이 사전에 남침을 논의한 내용을 밝힌 선즈화의 최초 저서(홍콩 天地圖書出版有限公司, 1995년) 선즈화는 필자와도 오랜 인연이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한국전쟁 전문가다. 한 때 그는 중국공산당이 내놓은 한국전쟁의 모범답안(남북한 간에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내전)이 아닌 다른 이야기(즉 남침설)를 했다는 이유로 엄중한 경고와 함께 불이익을 당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운동권 출신 좌파 정치인, 종북 세력에게는 내전이니 先擊무의미론 등의 주장이 버젓이 살아 있다. 좌파 문학가, 정치인들에게 남아 있는 이런 주장은 게으름의 소치거나 지적 자기기만이다. 아니면 공부는 죽어라고 하지 않으면서 남이 내놓는 이론이나 주장은 멋져보여서 그걸 그대로 수용하거나 추종하는 겉멋만 부리는 지적 룸펜들이다. 예컨대 노무현과 그의 후계자 문재인뿐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좌파 지식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모두 6.25전쟁을 "내전"이라고 한 발언들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노무현과 문재인은 어차피 공부도 하지 않고 무식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종석 전통일부 장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도올 김용옥 등등의 학자들까지도 몰개념적으로 사실과 어긋난 이상한 헛소리를 해대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6.25가 북침인가 남침인가의 문제는 한국전쟁을 살펴보는 데 무의미하다"하다고 했단다.
 
한홍구 교수는 "김일성은 스탈린 덩샤오핑도 넘볼 수 없는 혁명가"라고 한 모양이다.
 
도올 김용옥은 한 술 더 떠 "김일성을 동북항일 투쟁의 젊은 기수, 침착하고 식견 있는 학생"이라고 했단다.
 
소설가로서 최고 반열에 올라 일종의 문화권력인 황석영 작가는 무얼 근거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김일성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이라고 한 모양이다.
 
이정희 전 민노당 대표는 아예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은 나도 직접 듣고 질타한 바 있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언제, 어디서 이런 발언을 했는지, 또 그 전후 맥락은 어떠했는지 내가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평소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봤을 때 그런 말을 한 건 100% 사실일 것이다. 맥락이란 것도 보나마나 공부 안 한 무식을 티내거나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겠다. 참고로 북한은 김일성 이래 삼대에 걸쳐 김일성이 남침한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든 교과서와 전사에 그렇게 못 박아 놓고 전체 주민에게 주입시켜오고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이 용어를 그대로 받아서 뇌까리는 골빈당들이 있다. 그러니 상식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종북좌파"라고 비난하는 것도 사실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내가 지금 이들의 발언에 대해서 자세하게 일일이 반박을 하기는 사실 평소 핸드폰에다 이런 글을 쓰는 내 손가락이 고달파서 썩 내키진 않는다. 예전에 이와 같은 글을 보고도 그냥 넘어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번에 어차피 칼을 빼든 이상 여기선 결정적인 반론은 한 마디씩 해야겠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박사논문을 김일성에 대해서 썼고, 북한-중국관계사와 관련해서 꽤 괜찮은 학술서도 낸 연구자다. 그런 그가 "6.25가 북침인가 남침인가의 문제는 한국전쟁을 살펴보는데 무의미하다"하다고 했다는 건 의아스럽다. 그가 한국전쟁을 연구한 자신의 논문과 저서에는 김일성이 1949년과 50년 두 번이나 모스크바를 찾아가서 스탈린에게 남침을 동의해주고 군사 지원도 해 주라는 부탁을 했으며, 스탈린이 이를 승낙해준 사실을 서술한 것으로 기억하니까 말이다. 내가 지금 바깥에 있어서 그의 저서 내용을 다시 확인을 못해서 그런데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역시 정말 자기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북한에 아부한 양심불량의 학인이다. 남침인가 북침인가를 보지 않고 그럼 뭘 봐야 유의미하다는 말인가?
 
오늘 아침에 어제 초든 바 있는 이종석의 저서를 확인해보니 내가 기억한 대로 그가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을 찾아가서 사전에 남침전쟁을 모의한 결과 "합의"한 사실을 자기 책에다 자세하게 언급해 놓았을 것이라는 내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종석 저,북한-중국 관계 1945~ 2000, 중심출판사, 2000년, 123~128쪽)
 
한홍구 교수는 웬 생뚱맞게 스리 김일성을 "스탈린, 덩샤오핑도 넘볼 수 없는 혁명가"라니! 한홍구도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에 대해 제법 연구를 한 사람인데도 이 정도 판단력 밖에 안 된다면 인물연구는 일치감치 때려치워야 되겠다. 이처럼 가치 내지 평가를 전도시키거나 사실에 맞지 않는 책을 내서 괜히 일반 독자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보다는 차라리 연구를 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싶어서 하는 충고다.
 
雲靜은 조금 무료해서 묻는다. 전후 세계 공산주의 운동권에서 신처럼 받들어진 스탈린이 김일성을 높이 우러러 봤을 정도로 김일성이 그렇게나 위대했다면 김일성은 왜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세 번이나 모스크바에 호출돼서 스탈린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굽실굽실 그랬을까? 심지어 김일성은 소련 측에 전달한 문서에서 "스탈린 각하의 말씀은 나에겐 곧 법"이라고까지 떠받든 사실에 대해선 뭐라고 할까? 그리고 덩샤오핑은 아예 김일성을 넘볼 생각을 안 했죠. 덩샤오핑의 관심은 김일성을 넘보고 자시고 하는데 있지 않았으니까!
 
도올 김용옥은 예의 그 자아도취적인 증세가 또 발작한 모양이다. 여보세요 도올 선생! 김일성이 동북항일 투쟁의 젊은 기수, 침착하고 식견 있는 학생이었다고요? 雲靜은 말한다. "김일성은 만주 毓文중학교 3학년 중퇴 정도의 학력에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학생이었다고!"
 
황석영에게 준엄하게 묻는다. 김일성이 을지문덕과 이순신 장군처럼 외침의 나라를 구한 일이 있는가? 또 세종대왕처럼 학문을 장려하고 어진 임금(仁君)으로서 선정을 베풀고 우리민족의 위대한 자산이자 세계의 자랑거리인 한글은커녕 그 반쪽자리인 이두라도 만들려고 해봤는가? 나라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남한을 침략해서 수많은 동족을 죽이고 분단을 고착화 시킨 살인마였지 않았는가? 황석영에게는 수많은 동족을 살상시키는 자가 "위인"으로 받들어지는 모양이다.
 
이정희 전 민노당 대표가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선 雲靜이 벌써 이 발언을 한 그 당시에 바로 물었는데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답이 없다. 아직도 "치밀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남침인지 북침인지를! 1차 사료를 접하고 연구를 하지 않으면 백날 생각을 해 봤자 생각일 뿐이지 판단능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았으면 애초부터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아니야 이건 내가 잘못했어! 보지도 않는 지방 신문에다 물었으니 말이야!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4895&page=2&total=47

통합진보 구당권파에게 묻는다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이석기와 김재연이 결국 대한민국 국회에 입성했다. 그들이 반대파와 대다수 국인(國人)의 반대를 묵살하고 막무가내로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목적이 무엇일까? 수치는 순

www.kyongbuk.co.kr

 
그렇다! 이들은 모두 지적 허영기가 나풀거리고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북한의 입맛에 맞도록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도착적인 공통성이 있는 "위인"들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이 자신은 1953년에 이미 "전쟁을 북이 일으켰다고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한국의 이 "위인"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북한은 남침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1950년 6월 25일 새벽 계획적으로 38도선 전 전선에 걸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해 놓고도 바로 방송을 통해선 남침을 남한군이 먼저 북침을 했기 때문에 반격을 가한 것이라고 거짓 보도를 했다.
 
그런데 7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북한에서는 이 전쟁을 북침에 대한 반격전, 즉 "정의의 해방전쟁"(righteous liberation war)이라고 날조해놓고 있다. 국내 운동권은 과거 몰래 조선전사, 김일성전집 등을 수집해서 보다가 이 부분만 그대로 믿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국내의 균형감각 있게 사료에 근거해서 연구한 연구성과들에 대해선 완전히 무시해버린다. 마르크시즘이나 주체사상 같이 너덜너덜한 엉터리 이념에 쩔은 오만한 외눈박이들이다.
 

위 지도상 38도선 위쪽에 약 2km 정도를 일률적으로 붉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국군이 먼저 북침했다고 날조한 증거다. 북한이 이렇게 날조한 책은 그들이 펴낸『조선전쟁』에 실려 있는 것을 필자가 밝혀낸 것이다. (출처 : 서상문 著,『6.25전쟁 공산진영의 전쟁지도와 전투수행』,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6년, 상권, 204쪽)

 
한마디로, 남침을 아직도 내전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진실과 사실을 호도하는 선동꾼, 학술을 정치에 종속시키는 반자유주의자들이자 몰지성적 언행을 일삼는 반지성주의자들이다. 학술용어가 아니라 의학적인 용어로는 인지부조화 환자들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정신착란증세와 유사한 상태를 보여주니까!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결론은 분명히 밝혀놔야 되겠다. 6.25한국전쟁은 내전이 아니다! 김일성이 치밀한 계획하에 적어도 1948년부터 남침준비를 시작했으며, 그는 북한 자력으론 남침이 불가능하니 남침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두 번(1949년 3월과 1950년 4월)이나 극비리에 스탈린을 찾아가서 군사지원과 남침 승인을 간곡히 요청했다. 모택동과 함께 세계를 공산화 하려는 의지와 목적을 가진 스탈린은 1949년 3월의 요청에는 미국이 개입할 것과 준비미비를 들어 반대했다. 성급히 도발하려는 김일성에게 기회는 또 올테니 기다리라면서 만류한 대신 군비는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 일행(맨앞 중절모를 쓴 자가 김일성, 그 뒤 굵은 안경을 쓴 자가 북한 정권의 제2인자로서 김일성과 남침을 공모한 박헌영(소련 방문 당시 북한 내각 부수상 겸 외무상)이고 그 뒤는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1948년 내각 부수상)로 보인다.

 
김일성의 남침을 가능하게 만든 무기장비 등의 군사지원은 스탈린이 해줬고, 남침 초기 전차는커녕 대전차포 하나 없던 한국군에게 괴력을 보인 241대의 T34전차는 모두 스탈린이 제공한 것이었다. (이 전차들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중고였지만 공짜가 아니었다. 달러나 루블화가 없던 김일성은 결제 수단으로 닉켈, 망간, 보크사이트 등 북한의 특수 광물들을 갖다 바쳤다.)
 

남침 3일 만에 미아리를 넘어 혜화동 로타리를 거쳐 현 대학로 거리로 들어온 북한 인민군의 주력 소련제 T-34전차
북한 인민군은 서울을 크게 개성-문산-불광동 축선과 철원-의정부-미아리 축선, 황해도 옹진-해주-김포-서울의 세 축선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사진은 당시 6월 28일 오전 전차 진입에 이어 서울로 들어오는 인민군 보병들

 
또한 남침에 필요한 병력증강은 모택동이 김일성의 요청을 받아 들여 항일전과 국공내전 종결 후 중국 대륙에 그대로 남아서 중공군으로 재편된 최소 5만 명 이상의 한인 병사들을 북한에 그대로 넘겨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 중엔 사실 남한이 고향인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모두 일괄적으로 북한에 보내져 인민군의 최정예 사단이 됐다.
 
남침 직전, 북한 인민군은 우리의 국군 보다 병력이 대략 1.5 배 이상으로 많았었지만 중공군에서 넘어간 한인 부대들의 전투경험과 무기 장비 때문에 전투력을 두 배 이상 차이가 벌어지게 만든 요인이었다. 
 
팁으로 한 가지만 더! 만약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 동의 요청을 승낙하지 않았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혹은 상당 기간 미뤄졌을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마오쩌둥이 동의하지 않았으면 마찬가지였다. 남침이 불가능하니 마오를 찾아가서 동의를 받으라고 조건부 동의를 한 스탈린의 제안에 김일성은 귀국 후 5월 중순(5. 13~5. 15) 베이징을 찾아가서 마오의 동의를 받았다. 그리고 1950년 10월 19일 마오쩌둥은 중공 당내 참전 반대론자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최초엔 중공군 25만 5,000명을 북한에 비밀리에 들여보냈다. 나중엔 많을 때 최다 120만 명까지 보내기까지 했다. 이래도 남북한끼리만 싸운 내전인가?
 
지금까지 길고 긴 이 졸문을 보신 분들은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특히 좌파들에겐 품위 있고 지적으로 한결 세련되게 주장을 해도 된다. 한국전쟁은 내전이 아니라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하에 김일성이 도발한 국제적 남침전쟁이라고! 이 모든 주장은 소련과 중국의 기밀문서와 사료에 근거한 것이니 내전이라 하지 말라고! 이 소릴 듣고도 계속 내전이라는 둥, 북침이라거나 누가 먼저 쐈느냐는 의미가 없다는 둥 떠들면 사실을 왜곡한 무식한 자이거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고의로 진실에 눈을 감고 떠벌리는 선전 선동꾼이라고! 그래서 공부 좀 하거나, 아니면 사람이라도 좀 착해지라고!
 
2021. 9. 28. 19:58
구파발 죽집에서 초고
9. 29. 06:09 보충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