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205

친구의 경주남산 산행 : 암벽 소나무와 김시습의 시

친구의 경주남산 산행 : 암벽 소나무와 김시습의 시 경주남산 소나무 암벽 틈새로 뻗은 한 떨기 소나무 風雨雪霜에 바툰 자태가 신라 천년의 기상을 품었네. 묵언의 간구로 틀어 앉은 가부좌 碧空에 자지러지는 동자승 미소 霜風高節이 저만치 홀로 높구나. 2021. 9. 23. 13:5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위 졸시는 멀대가 친구 東浪이 경주 남산을 산행하면서 찍어 보내준 아래 사진을 보고 즉흥적으로 읊은 것이다. 소나무 한 그루가 내게는 자태 곱게 앉아 있는 '한 떨기' 작약 같기도 하고, 좌선에 들어 삼매에 든 화랑도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또한 보내온 사진들 중에는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시 한 편이 적혀 있는 안내판도 있다. 덕분에 매월당의 시를 재미있게 감상했다. 아래에 본격적인 해..

同學 소식

同學消息 同門修學友先去 因在遠未聽寄別 遲聞她離開人世 吾只能痛飮歎息 同學 소식 한 때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먼저 갔단다 멀리 떨어져 있어 기별도 제때 듣질 못했네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릴 뒤늦게 들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술로 탄식하는 것밖에 없구나! 2021. 8. 31. 01:25 북한산 淸勝齋에서 대만에서 박사반 동기가 病逝했다는 소식을 듣고 雲靜

테스야

테스야 겁탈 당한 테스가 말한다. "한번 당하면 영원히 당하죠. 그게 세상이에요!" 변함없이 위선과 탐욕이 날뛰지만 지금은 누구든 당하는 세상이야 남의 부인이 된 테스가 자길 찾아온 옛연인에게 말한다. "오늘 밤엔 별도 없네요. 우리 영원히 함께 날아가면 좋겠어요!" 이 땅엔 해와 달이 다 죽고 밑둥 빠진 하늘에 같이 목 맬 동반자는 없어 테스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난 준비됐어요!" 나도 준비 됐어! 독주를 연거푸 털어 넣는다 사랑을 위해 情夫를 죽이고 죽음을 택한다고? 테스야 정신 차려! "Know yourself!" 내키는대로 산 가수까지 테스형을 들먹이고 철학마저 값싸게 농하는 세상에 사랑이라니! 2021. 8. 21. 05:01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매미

매미 수년 간 인고의 탈태 끝에 많이 살아야 달포뿐인 생에서 여름 막바지에 부르는 애절한 구애의 노래 숫컷만 우는 처절한 간구 짝짓기 못하고 갈까봐 몸을 떠는 노총각의 울림 생태계 지속에 제몫은 하려는 숭고한 몸짓 이승에서의 마지막 외침인듯 찌르르르르 매앰 맴메에에에~ 소리 큰 놈에게 혹하는 암컷의 간택 황홀한 분비에 8월이 흥건히 젖는다. 2021. 8. 13. 09:41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거미

거미 망을 치지 않으면 자신이 굶는다 등산길 빈 거미줄엔 이슬만 맺혀 있다. 투명해서 미물들이 걸려든다 어쩌다 나비도 잠자리도 잡히지만 죄다 걸리는 건 아니어서 애먼 날파리 하루살이들만 걸려든다 눈 밝은 벌레는 피해가고 촉수가 발달한 곤충도 비켜간다 몸집 큰 들쥐는 거미줄을 앗아간다. 인간세상이라고 다를 게 없다 힘없는 무지렁이들만 걸려들고 邪曲한 자들은 이리 튀고 저리 빠져나간다 망을 치는 자 누구며 아예 뭉개버리는 자 누군가? 곤궁한 이들만 산 입에 거미줄 친다 빈 거미줄에 맺힌 이슬은 누구의 눈물인가? 2021. 8. 12. 10:57 아침등산 중 북한산 자락에서 雲靜 초고

시인

시인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다 똥도 누지 않고 사는 줄 알았다 삿기라곤 없는 사슴눈처럼 마음도 생각도 선한 줄 알았다 가식만큼은 없는 탈속초인이 아닌가? 시집엔 미사여구란 다 있다 윤리와 양심도 번지레하다 시집 한 권 팔기 위해 짓는 비굴한 웃음 세상일은 뒷전 자기일이 세상일 명욕에 취해 사는 잉여인간 시인마저 그러니 누가 누굴 믿겠는가? 이슬만 먹지 않고 풀도 뜯는 노루가 있듯 토끼를 못살게 구는 못된 토끼도 있듯이 시와 달리 언행은 개차반으로 살면서 뱀의 혀로 말로써 말만 먹고 산다. 시인 없는 시인 고갈 시대에 시인은 아직도 낯 두껍게 살고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뱀장어처럼 2021. 8. 12. 07:18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환선굴 Ⅱ

환선굴 Ⅱ 누에가 뽕잎사귀 갉아 먹듯이 어둠이 빛을 먹어치우는 곳 시간이 자랄 엄두를 내지 못했을 때 침입자가 되려 신선이 됐다는 환선굴 신선은 없고 인간의 이기심만 박쥐처럼 붙어 있다. 빛속에 들려오는 칠흑의 신음 소리 조물주도 모르는 갈피 갈피에서 晦冥이 격한 고통을 쩌억 쩍 뱉어내고 있다. 2021. 8. 10. 17시경 삼척 환선굴 안에서 착상 8. 12. 08:23 북한산 淸勝齋에서 정리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