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207

젤 좋은 날

젤 좋은 날 비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요 눈 오는 날은 눈이 와서 좋고요 해 있는 날은 해가 있어 좋고요 구름 낀 날은 구름 끼어 좋고요 366일 싫은 날 없이 다 좋지만 친구를 만나는 날이 젤 좋네요. 2021. 7. 7. 12:20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포항, 울산, 부산에 있는 친구들이 같은 시각에 제각기 그곳엔 비가 오고 있다고 보내온 문자를 보고 즉흥해서 쓰다. 친구 비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요 눈 오는 날은 눈이 와서 좋고요 해 있는 날은 해가 있어 좋고요 구름 낀 날은 구름 끼어 좋고요 366일 싫은 날 없이 다 좋지만 친구를 만나는 날이 젤 좋네요. 2021. 7. 8. 09:06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제목을 원래대로 '친구'로 변경

방광 잔혹사

방광 잔혹사 대견하고 앙증맞다 대략 20g 정도의 오줌보 가엾게도 세 배나 늘어났단다 20여 년이나 줄기차게 마셔댔으니 放狂 짓을 참 많이도 했다 이러다가 한껏 부풀린 풍선처럼 빵? 아무래도 막걸리를 줄여야겠다 하지만 술은 끊고 싶지 않네 내가 살아야 너도 살지 미안해 아가야 정말 미안해 2021. 7. 7. 11:11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放狂의 膀胱 대략 20g 정도의 오줌보 대견하고 아기처럼 앙증맞지만 주인 잘못 만나서 가엾게도 세 배나 늘어났단다 20여 년이나 줄기차게 마셔댔으니 放狂 짓을 참 많이도 해왔다 이러다가 한껏 부풀린 풍선처럼 빵? 아무래도 막걸리를 줄여야겠다 하지만 약주는 끊고 싶지 않구나 내가 살아야 너도 살지 미안해 아가야 정말 미안해 2021. 7. 8. 08:36 북한산..

초여름밤의 형산강변

초여름밤의 형산강변 초여름밤 거슬러 올라오는 형산강물 포스코 화려한 불빛에 은비늘이 반짝인다. 강 건너 제철소 고로에서 내뿜는 흰 연기들 형형색색 조명등에 절경의 야경으로 보이지만 뭉글뭉글 솟아나는 저게 바로 소리 없이 생명을 죽이는 죽음의 수증기! 나 잘 살자고 모두를 병들게 하는 비정한 솜사탕 무관심한 시민들을 비웃듯 쏟아내는 뭉게구름 강바람에 악취 풀썩대는 밤하늘 끙끙대는 영일만 신음소리에 강변 들국화들도 힘겹게 도리질 치고 불야성에 부서지는 죽음의 여울 병든 물고기들의 흐느적거림에 가슴이 따갑다. 시원한 밤바람에 흠씬 들이마신 솜사탕 뭉게구름은 유리조각처럼 알알이 폐부에 박히고 은비늘들 비수처럼 점점이 허파에 꽂힌다 독성에 실성한 마파람이 뒷골까지 저미는데 강도 취하고 사람도 취하는 25시 형산강..

남녀차별

남녀차별 여자 공중화장실에 남자가 들어가면 비명이다 그곳을 청소하는 이가 남자라면? 여성들은 잘 나오지 않을 거다 아예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을 거다. 남자 공중화장실에 청소하는 이는 아줌마다 아줌마는 여자가 아니란 말인가? 남자들은 알고도 선뜻 들어가긴 하나 군소리 없이 잘 나올까? 세계 최고라는 '코리아'의 화장실 비명과 침묵의 공간 오늘도 고집스럽게 선남선녀를 차별한다. 2021. 6. 23. 08:49 도봉구 쌍문역 남자화장실에서 초고 6. 24. 06:05 자구 수정 雲靜

조문

조문 어제 못 간 조문 이른 새벽에 간다 오늘 출상인데 친구는 얼마나 가슴이 먹먹할까? 춘부장께서 건강하셨다는데 왠 변고인가! 얼굴은 뵌 적 없어도 생전에 인연이 없었을 리가 없다 인파 속에서 스쳐 지나갔거나 차안 옆자리에 앉았을 수도 있다 부채의식 없이 가는 문상 "한 세월 잘 사셨습니다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천국에 가시면 제 선친께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이젠 신이 되셨으니 제 이름도 아실 거잖아요." 가신 이는 여한이 없다 해도 자식은 한이 되듯 한껏 죄스럽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남은 이들끼리의 위안 잘 살라는 게 가시는 어른의 뜻일세 다음은 우리 차례라네 영안실 나서자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영들 출근길 사람들 걸음이 분주하다 아버지가 잘 드셨던 막걸리가 몹시도 땡기는 어지러운 아침 2021...

성공

성공 있잖아 고등학교 시절 싸움질도 적잖게 했고 정학도 서너 번이나 먹었으며, 잘리기 직전 학교를 옮긴 것도 사실이야 설령 "문제아"였다 해도 길어봤자 그때 3년 긴 인생길에서 한 점에 불과하다네 세월이 흘러 짧지만 기자 생활도 해보고, 유학 가서 박사학위도 따고, 공무원 고위직 연구원도 되고 보니 잘 됐다고 다시 봐주는 이도 있지만 여전히 그 시절 눈으로 보는 이도 있었어 애초부터 타고나기를 정도 많고, 배려심도 없지 않고, 정의롭게 사는 게 천성이어서 이미 그 시절 그 자체로 잘 돼 있었는 걸 남들이 말하는 "성공"은 성공이 아닐세 타고난 덕성 변치 않고 살아 온 게 성공이지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다네 문제가 있다면 누구에게 있겠나? 내겐 늘 하늘 올려다보는 일밖에 없어 그때나 지금이나 2021..

李君아 미안하다

李君아 미안하다 중학교도 알바로 힘들게 마쳤고 지금도 알바 아니면 졸업을 못 한단다 부모님이 계신다지만 각기 밤낮으로 일 다니느라 얼굴도 못 본단다 여기까지 들었을 땐 "그런 가정이 어디 한 두 집이냐"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 뭐 먹을 거 없어요?" 가끔씩 몰래 집사람 찾아와서 묻는단다 택배 상하차든 뭐든 닥치는 대로 새벽까지 일하니 학교에 가서도 허기가 지는 모양이다 한 번도 본 바 없는 이군* 얼굴이 어른거린다 편의점에서도 알바한 지 수년이 되다보니 물건 살지 안 살지 손님을 척 보면 안단다 이 말에 가슴이 미어진다. 부동산투기 한 번으로 수억씩 챙기는 세상 자식 같은 아이들 노동력 착취하는 어른들 내가 어른이란 게 오지게도 부끄럽구나 나도 이 세상의 무능한 기득권이 돼버렸네 이군아 정말 미안하다..

생각 좀 해보게나

생각 좀 해보게나 도와주고 대접 받는 식사, 당연한 걸로 받지 말게 일한 대가로 받는 급료, 당연한 걸로 여기지 말게 상속 받아 누리는 재산,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말게 생각 좀 해보게나 따뜻한 밥 한 끼에 비바람 피할 집에다 호주머니 채울 거 있는 게 왜 가능한지 말이야 늘 마시는 물과 공기,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말게 살아서 숨쉬고 있는 거,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말게 생각 좀 해보게나 먹고 마시고 두 발로 걷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어서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 아닌가? 눈물이 피잉 도는 2021. 6. 9. 16:08 합정역발 연신내행 전철 안에서 雲靜

한시 사위의 붉은 마음

사위의 붉은 마음 모처럼 처가에 갔더니 겹홍매가 반겨주는구나 한 30년을 처가에 다녔어도 활짝 핀 건 처음 보네 팔순의 어르신 기력 쇠하여 붓 놓은 지 오래다 하지만 춘심은 옛날 옛적 그대로구나 고혹적인 홍매는 아름다운 이의 자태 같고 황매도 뒤질세라 노란 꽃봉오리 맺었네 서울은 이제 겨우 녹빛 기운이 감돌텐데 사위의 붉은 마음이 남천에 피었구나! 壻赤心 久尋岳家紅梅迎 卅年初次看滿開 八旬岳父輟筆永 但春心仍如舊常 紅梅恰似佳人樣 黃梅次於結黃朵 恐京今纔放綠意 壻赤心開在南天 2019. 3. 31. 12:11 雲靜於臺北捷運南港站 草稿 ※ 위 한글은 2019년 3월 말 내 친구 김대성이 경주 자신의 처가에 갔다가 뜰 안에 핀 홍매화와 나이 들어가시는 빙부님을 뵙고 느낀 소회를 적어 친구들 단톡방에 올린 글을 내가 ..

자루

자루 차지 않으면 스스론 못 서는 자루아득바득 다 채우려고도 않고차도 서 있을 만큼만 일으킨다가득 차면 딴 이를 채우게도 한다.채워도 채워도 만족 못하는 탐욕들속 빈 자루만도 못한 群像들넣었다가 종국엔 내놓는 자루차도 그만, 비어 있어도 그만머리도 없이 손발도 없이풀썩 주저앉은 妙有의 空2021. 6. 1. 16:226호선 전철 안에서雲靜 https://m1.daumcdn.net/cfile300/image/99B256355B98D9193690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