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문의 자작시 41

미친 세상Ⅰ

미친 세상Ⅰ 사람이 술을 마실 땐 땅은 땅이고, 하늘은 하늘이다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어 땅이 하늘 되고, 하늘이 땅이 된다 천지가 뒤바뀐 카오스 세상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지 왜 사는지 무얼 위해 사는지 전도된 가치 죄다 미쳤네 나도 왜 이러고 사는지 몰라서 밤마다 독한 빼갈을 털어넣는다 날 먹는 술이 낮밤인들 못 삼키겠나? 2021. 7. 11. 02:2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https://t1.daumcdn.net/cafeattach/1DtJf/128a454f46bacf3426a440e58a59b3a41d39473d

성공

성공 있잖아 고등학교 시절 싸움질도 적잖게 했고 정학도 서너 번이나 먹었으며, 잘리기 직전 학교를 옮긴 것도 사실이야 설령 "문제아"였다 해도 길어봤자 그때 3년 긴 인생길에서 한 점에 불과하다네 세월이 흘러 짧지만 기자 생활도 해보고, 유학 가서 박사학위도 따고, 공무원 고위직 연구원도 되고 보니 잘 됐다고 다시 봐주는 이도 있지만 여전히 그 시절 눈으로 보는 이도 있었어 애초부터 타고나기를 정도 많고, 배려심도 없지 않고, 정의롭게 사는 게 천성이어서 이미 그 시절 그 자체로 잘 돼 있었는 걸 남들이 말하는 "성공"은 성공이 아닐세 타고난 덕성 변치 않고 살아 온 게 성공이지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다네 문제가 있다면 누구에게 있겠나? 내겐 늘 하늘 올려다보는 일밖에 없어 그때나 지금이나 2021..

신발

신발 하나는 외로워 둘이라네 하나로는 하나만도 못하지 값어치가 2할이나 될까나? 앞뒤가 아니다 위아래도 아니다 나란히 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멈춰 설 땐 한 줄이라네. 걸을 때나 설 때나 하나는 늘 둘임을 믿고 둘은 언제나 하나임을 안다 둘 일 때 비로소 하나가 된다. 2021. 5. 8. 15:56 고향에서 친구로부터 신 한 켤레를 선물 받고서 雲靜

단풍

단풍 여름 내내 진공처럼 빨려든 엽록소 푸른 기운 소진 되고 하늘거리는 불덩어리 암세포 마디마디 저밀수록 고혹이 더해지는 역설 스스로 불태워 영과 육 분리시켜 선홍빛 기는 하늘로 오르고 각질은 대지에 눕는 숭고한 최후 돌아가야 할 때를 아는 겸손 미련일랑 티끌도 없이 넋만 남기고 저 홀로 환생을 갈무리한다. 2016. 11. 10. 11:45 경기도 여주 금사면 이천 및 달성 서씨 제3대 조 서희 장군 묘소에서 雲靜 초고

과보

과보 자지러지듯 터져나오는 비명들 으~악~ 아이고~~엄마~아 어~어~억 소리만 들어도 오금 저리는 내 차례 보기만 해도 수시로운 30센티 긴 장침 먼저 목 뒷덜미 우에서 좌로 관통한다 이어서 정수리 두피 곳곳이 뚫리고 어깨, 등짝, 양팔, 양 손톱 밑까지 찔리고 복부, 단전, 다리, 발로 전신에 꼽히면 100여 군데서 붉은 피가 줄줄이 흘러내린다. 마지막 대미로 양 비익과 인중을 뚫고 쑤욱 들어온다 머릿속 肉塊를 헤집고 쑤욱 쑥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20센티 굵은 대침 세 개가 뇌 속을 저민다. 평생을 몸뚱이 아끼지 않고 살았던 과보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어금니를 문다 왜정 때 모진 고문에 횡사한 독립지사 떠올라 내가 세상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다고 간간이 뱉어지는 신음소리조차 부끄러워 흡, 쓰..

羅城의 가을

羅城의 가을 羅城 들머리부터 뒤덮인 희뿌연 스모그에 숨 막힌 듯 야자수들이 머리만 깨깨 주억댄다. 친구 만나러 가는 풀러톤 길가의 황량함은 소싯적 내고향 항구동 풍경의 재현이다. 다운타운이 틈새 없이 정적을 내뿜을 때 서울인지 미국인지 모를 코리아타운엔 아침이 선다. 비버리힐즈 호화저택들도 스모그에 갇혀 겨울을 알 리 없는 갈맷빛만 할리우드를 감싼다. 길바닥마다 별들이 총총 박힌 철시된 상가로 조깅으로 달려오는 근육질 흑인 “Hi friend!” “Hi!” 11월 초엽의 로스앤젤레스에는 보이지 않는 균들에게 도시 전체가 점령당한 채 결코 가을일 수 없는 가을만 가뭇없이 서 있다. 그나저나 코로나는 언제나 물러나노? 2020. 11. 4. 11:23 로스엔젤레스에서 雲靜

카테고리 없음 2020.11.07

미국여행

미국여행 네 곳이 바다였다는 뜨막한 네바다에서 5억 년 전 대로망을 본다 태곳적 시간이 미래의 갈피에 접혀 있고 언어가 사라진 정적의 세계 갈등과 투쟁이 생겨나기 전 오직 생존과 삶만 있던 곳 암벽에 새겨진 인디언의 상형문자 그들의 꿈과 사랑과 삶은 울프의 울음소리에 달로 뜨고 풀들이 눕는 산들바람에 별로 진다. 16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대지 아메리칸드림이 사막처럼 말라버리거나 사보텐꽃으로도 피는 곳 천국과 지옥이 서로 입 맞추고 성실과 나태가 뒤엉켜 있는 곳 정의는 음모와 탐욕의 화려한 포장지일뿐 오만한 마천루 속에 초점 풀린 노숙자의 동공 부실한 코커와 햄버거가 먹이처럼 팔려나가고 뉴욕의 하루해가 핏기 없이 쓰러진다. 내가 본 곳은 동부 남부 서부 내가 갈 곳은 서부 남부 동부 집이 없어 미국이..

꽃들처럼 살아라

꽃들처럼 살아라 자기보다 못 났다고 남을 무시하지 말라 자기보다 잘났다고 남을 험담하지 말라 못나면 못난 만큼 장점이 있고 잘나면 잘난 만큼 단점이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존재란 없다네. 꽃들처럼 살아라 장미가 호박이 못났다고 무시하던가? 호박이 장미가 잘났다고 험담하던가? 장미가 잘났다고 뻐기고 호박이 못났다고 비관하던가? 장미는 예쁘고 호박은 추하다는 건 인간의 편견일뿐 다들 고만고만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라. 잘났다고 뻐기는 자는 장미꽃을 보라 못났다고 자책하는 이는 호박꽃을 보라 잘난 사람 험담하는 자는 자기심사가 뒤틀렸다는 걸 알아차려라 못났다고 무시당하는 이는 왜 못나 보이는지 자신을 돌아보라. 2020. 7. 20. 09:34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1천 명 이상..

인간관계

인간관계 인간들의 관계는 초겨울에 언 살얼음 사소한 일로도 여지없이 바스라지고 만다 내동댕이쳐진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버린다. 정치견해가 다르다고 친구도 등 돌리는 세상 종교 다른 이를 꼭 자기종교로 개종시키려는 자 자기 전화 제때 받지 않았다고 연락 끊는 동기 꼴랑 돈 몇 푼에 양심까지 속이는 친구 자길 도와주지 않는 걸로 오인해 전화도 받지 않거나 난데없이 전화에다 미친 듯이 쌍욕 퍼붓는 친구 정말이지 사람간의 관계는 얼마나 취약한가? 흐르는 강물에 형체 없이 녹아버리는 진눈깨비 어떻게 대해줘야 관계가 바스라지지 않을까? 이기적인 자란 걸 알고도 친구가 된 내 탓이로고 남세스러워 남세스러워 터진 입이 닫히고 만다. 2020. 1. 18. 10:15 진눈깨비 흩날리는 체코 프라하 블타바 강변에서 雲靜

프라하의 밤

프라하의 밤 시차 여덟 시간의 체코 프라하 시간을 거슬러 와서 먼저 간 시간을 기다린다 끝내 날이 새지 않을 듯한 긴긴 밤 칠흑 속 오래된 환영들만 갈마든다. 예서 더 가면 더 과거로 거슬러가겠지 계속 가면 대서양 너머 미국이 나올테지 또 더 가면 태평양 너머 영일만이 나올테지 어무이 아부지가 잠들어 있는 그 바다 계속, 계속 더 가면 2008년이 나올까? 어무이 아부지 살아 계시던 그때 그 시절 2020. 1. 13. 02:57 체코 브르노의 호텔방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