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문의 자작시 41

잘난 그대의 習

잘난 그대의 習 천성인가? 의도된 習인가? 시작은 남들 세피하게 보다가 나중엔 그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남이 뭐라캐도 하고픈 대로 산 반 평생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치렁치렁 덕지덕지 붙은 習 어느새 떼고 싶어도 떼지 못하는 질기디 질긴 여러 갈래 고래 힘줄 얼핏 혹은 꽤나 천성인 듯이 보여도 페르소나에 몸 맡긴 계산된 習 인연을 못 만나니 그렇지 임자 만나면 뱀 허물 벗듯 벗어버릴 여리디 여린 고래 힘줄 스스로 자신이 임자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2018. 3. 13. 05:45 구파발에서 雲靜

구룡포 허재비

구룡포 허재비 얼씨구절씨구 이리 풀썩 저리 풀썩 남몰래 속울음 우는 허재비 보는 이 시린 가슴 눅눅한 심정 허재비를 보내니 허재비만 남았네 허재비가 없는 허재비는 죽은 허재비 허재비처럼 살아도 허재비처럼 죽는다 허재비가 살아 있으면 죽은 허재비 허재비는 죽어야 사는 허재비 허재비는 죽고 깨어나도 허재비 허재비가 있어 허재비처럼 산다 허재비가 허재비처럼 떠오르면 허재비만큼 하늘이 시큼하다 허재비만큼 눈시울이 불거진다 허재비가 사는 구룡포에 오늘도 하루해가 저문다. 2017. 10. 30. 06:47 고향에서 雲靜

촛불

촛불 백만 송이 촛불 어리석음을 사르네 때 늦은 후회와 분노의 변신 아둔한 개인들이 평소 홀로 사를 줄 모르고 뒤늦게 모여 분노를 태운다 사람들은 무지와 분노를 태우고 카타르시스와 희망으로 잠시 어둠을 밝히지만 촛불은 늘 사르는 본분으로 제몸 태워 빛을 발한다 촛불은 후회가 없다 촛불은 분노가 없다 2016. 11. 22. 10:22 중국 상하이에서 雲靜

다 한 때라네

다 한 때라네 걱세게 대지를 딛고 서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다 심산유곡 청산에 누운 몸 마음은 구름 위를 노닌다. 비우면 평생 극락이요 비우지 못하면 나락이네 백년을 하루 같이 살고 하루를 백년 같이 살다 가세. 허공에 부숴질 희노애락애오욕 찰나에도 태산처럼 쌓이고 영겁에도 티끌되기 어렵나니 나볏이 두고 가세. 매미 허물 벗어던지듯 허무 위에 선 애증 다 내려두고 물 흐르듯 흘러가세 바람처럼 지나가세. 2017. 1. 12. 09:1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손톱 무좀과 재벌

손톱 무좀과 재벌 미물인 손톱무좀도 분수를 안다 손톱 뿌리까지 다 갉아 먹으면 손톱도 빠져서 죽고, 자신도 죽는 걸 안다 같이 살기 위해 조금은 남겨놓을 줄 안다 우리 재벌은 돈 되는 거라면 뭐든 가리지 않는다 서민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간다 저인망 훑듯이 막장까지 긁어간다 2016. 1. 19 雲靜 몇년 째 같이 살고 있는 검지 손가락의 손톱무좀을 보니 문득 한국의 재벌이 떠올라 쓰다.

어느 정신 노동자의 점심

어느 정신 노동자의 점심 하루 중 가장 긴 휴식시간 갠지스강 성수되어 흐른다 미지근한 온기의 보온도시락 속 나폴레옹이 넘은 눈 덮인 알프스를 늙은 시저의 지휘봉으로 힘 겹게 오르내린다 봄이 봄답지 않은 3월 초 한기 도는 으스스한 공장 한켠에서 설산을 구르카 용병처럼 쉼 없이 오르내릴 제 어디서 들려오는 꿈속의 취침나팔소리 띠 두른 파란 갑옷의 찬합은 귀가를 채비하고 쓰러진 주검들은 기약 없는 부활을 꿈꾼다 동학농민전쟁시 머슴들이 먹던 고봉 가득한 도시락을 다 비워도 넋 나간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데 레닌이 욕한 부르주아란 게 노예선을 상기시키고 쉰다는 게 탄광노무자의 엄동섣달이다 엄습하는 피로에 밀려 절로 감긴 두 눈 순간접착제처럼 달라붙는구나 눈을 떼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미소라 아! 이대로 시간이 멎..

한 해가 저무는 황혼녘에 올리는 기도

한 해가 저무는 황혼녘에 올리는 기도 해마다 한 해의 마지막 해가 지는 걸 볼 때마다 경건함과 성스러움을 느낍니다. 인간존재의 나약함과 자연이 지닌 초월적 포용력의 대비도 갈마들듯 다가옵니다. 이 해도 경건함과 성스러운 아우라(aura)에 쌓여 그대와 함께 꿈을 꾸고 희망을 풀무질하면서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벌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꿈과 희망이 바라는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삶이란 끝이나 결과가 아니라 시작과 과정과 함(doing, 作爲)에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에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잃는 게 있는가하면 얻는 것도 있는 게 인생입니다. 낙담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고빗사위 때마다 늘 그대가 함께 해줘 원초적 에너지가 됐습니다. 부족한 나를 그대의 친구나 지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