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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 탄생기념비에서 그의 일본제국 이념 정초활동을 다시 보다!

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 탄생기념비에서 그의 일본제국 이념 정초활동을 다시 보다!11월 14일, 3박 4일 간의 짧은 일본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아침. 쿠마모또(熊本)의 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 1844~1895)의 탄생 기념비가 있는 곳을 가보기로 하고 호텔을 일치감치 체크아웃 하고 나왔다. 기념비가 있다는 곳은 마침 내가 머문 호텔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이수였다. 목적지 부근에 거의 다 와서 이곳 동네 노인 몇 명에게 이노우에 코와시 기념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다들 이노우에 코와시라는 사람 자체를 모른다고 했다. 한 사람은 쓰레기를 버리는 걸로 봐선 이 동네 주민이고 나이도 7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노인인데 이노우에 코와시를 모른다니 조금 의아했다...

아소산(阿蘇山), 큐우슈우인의 심령적 聖地, 그 고아한 자태를 품다!

아소산(阿蘇山), 큐우슈우인의 심령적 聖地, 그 고아한 자태를 품다!아소산(阿蘇山)을 오늘 드디어 올랐다. 일본 큐우슈우(九州) 지역에선 최고의 명산이다. 아니 큐우슈우인들에겐 단순한 명산이 아니라 성산이다. 중국의 불교 4대 명산이 그렇듯이 자연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고 불교 및 샤머니즘과 관련된 민간신앙의 넉넉한 품이기도 하다. 공자가 태산에 올라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登泰山而小天下)”(孟子 盡心上)라고 읊었듯이 나도 아소산에 올라 “아소산에 오르니 일본이 작구나(登阿蘇山而小日本)”라고 외쳐보고 싶었다. 해서, 적어도 일본 큐우슈우에선 오래 전부터 꼭 한 번은 올라와보고 싶어 했던 버킷리스트에 들어가 있던 곳이다. 그런데 아소산의 정상 타까다께(高岳) 등정에는 실패했다. 왜, 무엇 때문에? 글..

명국환의 엘레지(élégie) '방랑 시인 김삿갓'과 '백마야 울지마라'

명국환의 엘레지(élégie) '방랑 시인 김삿갓'과 '백마야 울지마라'2023년 8월 19일, 원로 가수 명국환 선생이 작고했다. 향년 96세였다. 최근 몇 년간 TV도 보지 않고 제때 뉴스를 접하지 않고 살다 보니 뒤늦게 우연히 알게 되었다. 고인은 돌아가시기 전에 홀로 외롭게 양로원에서 투병생활을 했다고 한다. 퍼뜩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튼 가요계에서 노후에 혼자 남아 어렵게 지내는 원로 가수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책이 마련되면 좋겠는데 고인의 타계가 그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1927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난 명국환 선생은 한국전쟁 발발 후 남한으로 피난 와서 한국군으로 전쟁에 참여해서 전공을 세우고 전역 후 가수로 데뷔한 실향민 ..

대만 가요 月兒像檸檬

대만 가요 月兒像檸檬 경쾌한 가요 한 곡을 소개한다. '달은 레몬 같아(月兒像檸檬)'라는 대만 노래다. 가사는 慎芝가, 곡은 紅葉이 해서 1990년에 대만의 인기 여가수 등려군이 노래한 것이다. 중국어 가사는 아래와 같다. 月兒像檸檬 月兒像檸檬淡淡地掛天空 我倆搖搖蕩蕩散步在月色中 今夜的花兒也飄落紛紛 陪伴着檸檬月色迷迷蒙蒙 多親愛蜜語重重輕輕耳邊送 我倆搖搖蕩蕩散步在檸檬一般月色中 月兒像檸檬晃晃地掛天空 我倆搖搖蕩蕩散步在月色中 就像是魚兒在雙游海中 兩旁的椰子樹是海浪重重 多逍遙其樂融融脈脈情意通 我倆搖搖蕩蕩散步在檸檬一般月色中 月兒像檸檬晃晃地掛天空 我倆搖搖蕩蕩散步在月色中 今夜的風兒也撩人心胸 我和你不是在那虛幻夢中 多幽静夜已深沉深情比酒濃 我倆搖搖蕩蕩散步在檸檬一般月色中 연인이 달밤에 둘만 걸으며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것이..

참전과 파견

참전과 파견참전은 “전쟁에 참가함”을 말하고 파견은 “일정한 임무를 주어 사람을 보냄”을 뜻한다. 우리말 사전에 그렇게 뜻풀이 돼 있다. 틀린 설명이 아니다. 그런데 참전여부를 판단함에 전쟁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어떤 사람이 참여하는가에 따라 참전인가 아닌가 하는 성격이 결정된다. 전쟁 아닌 곳에 참여하는 것을 '참전'이라고 할 수 없고, 그 싸움터에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참전하는 경우도 그 민간인이 속한 국가가 참전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단의 관건은 전쟁의 정의와 피파견자의 신분이다. 나는 수년 전 전쟁 관련 연구저서에서 전쟁의 정의에 관해 정규군 연대 병력 이상의 부대가 참가하여 상대 군대와 전투를 벌인 기간이 최소 2주일이 되고 1명 이상의 전사자가 나오면 그것을 전쟁이라고 정의한 ..

일본 정계 동향 단신!

일본 정계 동향 단신!얼마 전 자민당 총재로 내각 총리가 됐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1957~) 수상이 어제 개표가 끝난 중의원 선거에서 연립 여당인 자민, 공명 양당이 과반수에 못 미쳐 패배했지만 야당인 국민당-민주당과의 “부분연합”을 명분으로 수상직에 유임하려는 의도를 내보였다. 과연 야당이 그의 제의를 받아들여 줘서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것이 가능해지면 평양과 도쿄에 각기 연락사무소를 두고 일북수교를 논의하자는 의사를 김정은에게 전달해놓은 그의 구상이 시도는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아시아판 나토를 제안했다가 미국에게 거절당한 이시바 주변에서 생성되고 있는 일본 정계의 흐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행정 및 경제 개혁에 관련 되는 법안 타결을 통해 오랜 침체국면을 타개함과 동시에 밖으로는..

생각 좀 하면서 살자!

생각 좀 하면서 살자!미국 대선은 확실히 매 선거 때마다 세계적인 이슈가 된다.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세계 정세가 현상유지되거나 달라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뒤집어지거나 요동을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교, 안보, 통상 등 국가의 안위와 국익에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미국 대선에 관심을 가지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한국 사회의 일각에는 이상한 현상이 자주 눈에 띈다. 즉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트럼프가 돼야 된다는 식으로 해리스를 지지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고 질타 내지는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후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트럼프가 돼서는 안 된다고 열을 올리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

한국이 망한다면 망하는 이유가 뭘까?

한국이 망한다면 망하는 이유가 뭘까?대한민국이 망하면 어떻게 하지 않아야 망하지 않는지 몰라서, 혹은 조금 알아도 국가권력을 쟁취하거나 뺏기지 않으려고만 하는, 하나만 알고 나머지 아홉은 모르는 탐욕 때문에 망할 것이다.이승만과 김구, 박정희와 김대중, 윤석열과 이재명을 동시에 넘어서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천신만고 끝에 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대한민국이 망하게 되면 이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터다. 이 시대는 근대화,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지나 후기 정보화, 우주개척시대로 가파르게 넘어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가치와 철학과 비전과 정신이 필요하다.당장 눈앞에 보이는 구시대적 이념세력, 범죄집단, 적폐세력 앞에서 자신이 먼저 변하면 권력을 뺏길 것 ..

환동해미래연구원 주최 인문학 강연 : ‘독도밀약설’이란 무엇인가?

환동해미래연구원 주최 인문학 강연 : ‘독도밀약설’이란 무엇인가? Ⅰ. ‘독도밀약설’의 출현 : 폭로? 혹은 주장? 1. 1960년대 요미우리신문 서울특파원을 지낸 시마모토 겐로(嶋元謙郞)가 2005년 『日韓協力』이라는 계간지에 기고한 ‘독도밀약’의 내용이 한일 양국에 알려지게 됐다. 이 기고문에서 시마모토 겐로가 주장한 독도밀약설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한일 양국 정부의 비선라인 간에 비밀 회담이 있었다. 2) 시기는 1965년 1월 11일 쯤(1965년 6월 22일 한일 협정 조인식 6개월 전)이었다. 3) 장소는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집이었다. 4) 참석자는 한국 측 정일권 국무총리, 문덕주 외무차관, 김종락 VS 일본 측 고노 이치로(河野一郞, ‘고노 담화’의 河野洋平 전 ..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6·25한국전쟁 인식 변화의 정치학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6·25한국전쟁 인식 변화의 정치학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이 달 10월 19일로서 중공군(중국은 국가 군대가 없고 중국공산당에 소속된 군이어서 ‘중국군’은 잘못된 용어임)이 한반도에 발을 디딘지 75년 되는 해다. 이날 제1진으로 25만 748명의 중공군 군대가 북한으로 극비리에 잠입해 들어왔다. 그런데 최초로 한국땅을 밟은 것은 그보다 3일 전인 10월 16일 밤 정찰 임무를 띠고 먼저 잠입한 ‘선발대’ 제12사단 제370연대 병력이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중공군의 한반도 파병이 개시된 정확한 날짜는 1950년 10월 16일이었다. 참전 후 중공군은 군사적, 정치적 남북통일을 목전에 둔 한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을 저지함으로써 통일을 가로 막았다. 1953년 7월 휴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