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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오늘의 역사 : 히로시마 원폭 투하

8월 6일 오늘의 역사 : 히로시마 원폭 투하 8월 6일 오늘은 지난 세기 1945년 일본 히로시마(당시 인구 33만 명이 거주)에 최초의 원자폭탄(이름 ‘꼬마’ 길이 3m에 무게 4,082㎏ 파괴력 TNT 12,000t 상당의 우라늄 폭탄)이 투하된 날이다. 이날 원폭을 투하한 직후 비행기 조종사 루이스는 이렇게 외쳤다. “하느님,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이까!” 이 원자폭탄으로 일본왕이 항복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원폭피해자들과 그 후손들까지도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다. 당시 히로시마 거주 한국인 8만명 중 7만 명이 피폭돼 35만 명이 사망했다. 1985년 처음 일본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 히로시마 중앙공원 원폭기념관에서 본 피해의 참상은 충격적이었다. 피폭자들이 눈알이 빠지고 손톱이 길게 휘어지고..

8월 15일, 1년 중 가장 답답한 날

8월 15일, 1년 중 가장 답답한 날 1년 중 내가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날은 바로 오늘 8월 15일이다. 일본 왕은 결코 항복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림 잡아서 거의 95% 이상의 한국 사람들은 지금도 그가 “무조건 항복”을 한 걸로 알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문제들도 제대로 알면 한일 관계나 대일정책에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것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 국내의 역사 문제도 마찬가지! 박정희 평가, 김구와 이승만 평가 및 재조명, 백선엽 장군 영웅시 문제, 4.3사건 평가, 한국전쟁의 남침, 북침 시비 등등 과거의 역사 사실을 정확하고 제대로만 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좌우 진보 보수가 박 터지게 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데 잘 모르니까 싸울 필요가 없는 것들로 싸..

8월 23일 오늘의 역사 :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1년

8월 23일 오늘의 역사 :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1년 오늘 8월 23일 부로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방류해도 ‘마르지 않는 오염수’ 때문에 불안감이 여전하다. 일본은 현재 8차 방류를 진행하는 중에 있지만 핵연료 잔해 반출 첫 시도에 실패했고 빗물 등 접촉 오염수가 계속 생성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기준 초과 사례는 없다”고 얘기하고 있어 “안일하게 대응”한다는 환경단체의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도쿄 전력은 지난 5월 17일,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후쿠시마현 오쿠마쵸, 후타바쵸)의 오염수를 정화 처리한 후의 방사성 물질의 트리튬을 포함한 물에 대해서, 통산 6번째가 되는 해양 방출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6월 4일의 종료를 예정..

마침내 이뤄낸 박경석 장군(예)의 장거!

마침내 이뤄낸 박경석 장군(예)의 장거! 왜곡된 한국전쟁 및 한국군의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일념으로 오랫동안 홀로 외롭게 고군분투해온 박경석 예비역 장군의 노력의 산실이 마침내 이뤄졌다. 1차 결실로, 자신의 연구 내용이 공영방송에서 재조명됐다. 즉 이미 1984년에 박경석 장군이 당시 6.25전쟁에 참전한 군의 원로(제1군 사령관을 역임한 이한림 장군, 제2군 사령관을 역임한 이병형 장군, 국방부전사편찬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박정인 장군)들의 자문을 받아 선정한 6.25 한국전쟁 4대 영웅(맥아더 원수, 워크 장군, 김홍일 장군, 김종오 장군)과 박경석 장군 자신이 쓴 저서『五星장군 김홍일』의 내용을 1985년 KBS 1TV가 3부작으로 방송한 것을 다시 2020년 11월 중순에 KBS 1TV에서 재방영..

8월 27일 오늘의 역사 : 콜레라 단상

8월 27일 오늘의 역사 : 콜레라 단상 1997년 8월 27일 오늘, 1980년대 이후로는 좀 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강화도에서 콜레라환자가 발생했다. 현대에 들어와서 콜레라는 사실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중대한 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 이 병이 생겨났을 때는 달랐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래서 심각한 위협의식이 있었고 공포 그 자체였다. 지난번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과거에 없던 병균들이어서 한 동안은 대응할 수가 없어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백신이 개발되고 해서 큰 위협이 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콜레라가 이 지구상에 처음 발생한 것은 19세기 인도 뱅갈 지역에서였다. 영국이 인도를 침략한 뒤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게 최초였다. 물론 콜레라균이 영국에서 바로 인도..

인간관계의 '235법칙'

인간관계의 '235법칙' 오늘 8월 26일은 과거 역사에서 주목하지 않아도 될 사건들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메뉴를 바꿔봤다. 열 사람 중에 두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고, 세 사람은 싫어하고, 다섯 사람은 관심이 없다. 인간관계의 '235법칙'이란 거다. 100% 맞는 말은 아니지만, 본시 인간관계란 대략 평균치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자기와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과 만나야 된다. 부처님도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길을 떠날 때 자기보다 나은 친구나 스승이 될 사람과 같이 떠나거나 혹은 적어도 자기와 비슷한 사람과 같이 가야 한다. 그러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같이 갈 바에는 차라리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다. 공자께서도 세 사람 이상이 같이 길을 떠나거나..

주변 4강의 어느 나라에도 휘둘리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한다!

주변 4강의 어느 나라에도 휘둘리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한다! https://www.youtube.com/live/UZ1W_uX1HBo?si=keS4A9noE6CSgvGU 어느 선배가 알려줘서 우연히 알게 됐는데 '이춘근TV'에서 열정적으로 방송하고 계시는 이춘근 박사가 어느 유투브 방송에서 나의 글 일부를 인용했다. 내가 나의 저서에서 한 말이 맞지만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데, 이런 식으로 세상에 회향이 되다니 반가운 일이다. 내용은 위에 올려놓았다. 위 동영상 1시간 28분에서 인용되고 있다. 인용문에서 내가 주장한 방점은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그 어떤 나라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만큼 강력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걸 이뤄낼 수 있는 국가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도 나의 이 ..

박동우 전 미 백악관 위원께 저서 기증

박동우 전 미 백악관 위원께 저서 기증오늘은 한국챔피온 체육관의 최덕수 관장(태권도 공인 9단)이 주최한 전 미 백악관 국가장애원회 위원 박동우 선생 환영 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박동우 전 위원에게 나의 졸저들(한국전쟁 연구서 상하 2권, 자서전과 시집)을 증정했다. 박동우 선생은 열 두 살 때 도미하여 미국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미 서부의 명문 남가주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을 졸업한 후 전신전화국, 은행 등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은행에서는 부장으로까지 진급해서 근무하다가 정년을 마쳤다. 그러다가 기회가 닿아 오바마 제1기 행정부가 출범할 때 백악관 직속 국가장애위원회 위원으로 봉직하게 됐다. 그는 무려 7개월이나 걸린 FBI의 엄격한 신원조회와 ..

8월 25일 오늘의 역사 : 니체와 징기스칸의 사망

8월 25일 오늘의 역사 : 니체와 징기스칸의 사망 8월 25일 오늘은 지난 인류 역사에서 깊고 길게 족적을 남긴 두 사람이 사망한 날이다. 몽골인들이 위대한 영웅으로 숭앙하는 징기스칸과 독일 철학자 니체가 그들이다. 징기스칸은 아시아를 넘어 멀리 러시아와 헝가리까지 침공해서 좋든 나쁘든 인류의 동서회통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니체 역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당시 유럽 지성계에 엄청난 사상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훗날 유럽을 넘어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인들에게까지 사상적 회통에 일조했다. 나도 과거 20대의 젊은 시절 니체의 영향을 받은 바 있지만 오늘 여기선 그가 남긴 사상적 편린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 징기스칸의 죽음에 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그는 어떻게 죽었고 그의..

KBS의 박경석 예비역 장군 인터뷰

KBS의 박경석 예비역 장군 인터뷰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두 전쟁에 참전한 백전 노장인 박경석 장군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박 장군은 육사 생도 시절 터진 6.25전쟁에 17세의 나이로 참전했다가 북한군에 포로가 된 바 있고 베트남전쟁에는 재구대대(고 강재구 소령의 이름을 딴 부대)의 지휘관으로 참전해서 수 많은 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살아 있는 현역 예비역 군인으로서는 무공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분이다. 군 혁역 재직 시절에 시인과 소설가로 문단에 등단해서 수많은 시와 소설작품을 발표해온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신군부 세력의 대표 주자 전두환의 부당한 요청을 거부한 일로 신군부의 박해를 받아서 결국 진급을 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전역한 억울한 경우를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전역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