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443

한시 尋訪越南攀龍(베트남 번롱을 찾아서)

尋訪越南攀龍 海有下龍陸攀龍 爲游攀龍乘蘆舟 天衣蝶群風中舞 巨龍無言臥睡中 淸水罕見之越南 明水魚泳樂逍遥 微波似龍泛銀麟 誠是鳶飛魚躍境 善惡本是不定性 夢中難辨善與惡 醒来即分美和醜 願汝永睡而不醒 蓮花開謝至永生 人仙兩界水窟分 常夏驕陽下攀龍 喚客至此對幽寂 베트남 번롱을 찾아서 바다에 하롱베이가 있다면 뭍에는 번롱이라네 용에 오르고자 갈대배에 올라 번롱으로 노 저어가니 거대한 용이 말없이 누워 잠자고 있구나 하늘하늘 산들바람 하늘 옷 사이로 나비들이 떼 지어 춤춘다. 맑은 물 보기 힘든 베트남 땅 속 비치는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무리 지어 노닐고 찰랑대는 물결은 용의 은비늘 같으니 그야말로 鳶飛魚躍의 경계로구나. 선악은 본디 정해진 게 아니어서 잠자는 모습에서는 선악을 볼 수 없구나 허나 깨어나면 美醜가 분별되니 그대는 ..

한시 耳順再上路

꿀모닝! 어제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습니다. 예정 퇴직일은 12월 12일로 정했습니다. 30대 초반, 다니던 직장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단돈 50만 원을 들고 한국을 떠났을 때처럼 다시 한 번 모든 걸 내려놓고 자유의 몸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너무나도 답답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긴긴 세월 동안 많은 분들이 적지 않은 위안이 되어 주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육신은 다른 모습으로 나투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한 번 맺은 인연은 변함 없을 것입니다. 耳順再上路 耳順之際踏征程 欲走而立獨行路 彼時艱辛且歡喜 如今衆里嘗孤苦 黑髮何時已染霜 日出日落仍如初 犀利目光漸濁黄 空来空往仍未忘 路連路接無斷絶 常知天無絶人路 耳順의 나이에 다시 길을 떠나다 耳順의 나이에 다시 ..

서산대사의 임종게

서산대사의 임종게 20대 젊은 시절부터 크게 공감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늘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서산대사의 임종게 싯구입니다. 살면서 더욱 더 이 사실이 진리라는 걸 증득하고 있습니다. 臨終偈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身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태어난다는 건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는다는 건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로다 뜬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듯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로다. 2016. 12. 13. 雲靜 번역하고 옮겨 쓰다.

직장을 떠나면서 지인들에게 남기는 말

직장을 떠나면서 지인들에게 남기는 말 꼬끼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날, 雲靜도 다니던 직장에서 완전히 물러났습니다. 박근혜는 노도 같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에 밀려 뒷방으로 나앉으면서 결과가 어찌 될진 알 수 없네요. 하지만, 그에게는 희망이라도 걸어볼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고, 박정희의 모든 것을 무조건 찬양하고 추종하는 극우파에 기댈 수 있어 믿는 구석도 있습니다. 반면, 雲靜은 자진해서 스스로 물러나 믿을 곳이 한 군데도 없는 허허로운 광야로 나왔습니다. 물론 신분은 국가공무원에서 대학의 연구교수(고려대학)로 바뀌지만 하는 일은 공기관의 연구원 역할과 동일하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니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겠죠. 기댈 곳도, 나를 떠받쳐주는 배경도 없지만, 나는 지..

정의는 나와 진보진영에게만 있는 전유물인가?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 장면

정의는 나와 진보진영에게만 있는 전유물인가?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 장면 불의나 잘못은 적에게만 있는 게 아니고 아군과 동지에게도 있습니다. 반대로 정의와 옳음은 아군과 동지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적에게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도 정의는 우리에게만 있고, 불의는 적에게만 있다거나, 명백한 범죄나 잘못을 범한 동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는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기 안에 이미 팟쇼의 인자가 내재돼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이 인지될 때 마다 겸허한 성찰하에 스스로 警責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이라고, 반대 진영의 사람이라고 무조건, 즉 모든 사안에 반대하거나, 아군과 동지라는 이유로 무조건 지지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주견 없이 동원되듯 날뛴 홍위병을 자처하는 거나..

손톱 무좀과 재벌

손톱 무좀과 재벌 미물인 손톱무좀도 분수를 안다 손톱 뿌리까지 다 갉아 먹으면 손톱도 빠져서 죽고, 자신도 죽는 걸 안다 같이 살기 위해 조금은 남겨놓을 줄 안다 우리 재벌은 돈 되는 거라면 뭐든 가리지 않는다 서민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간다 저인망 훑듯이 막장까지 긁어간다 2016. 1. 19 雲靜 몇년 째 같이 살고 있는 검지 손가락의 손톱무좀을 보니 문득 한국의 재벌이 떠올라 쓰다.

한시 乙未年送舊迎新酒(을미년 송구영신酒)

乙未年送舊迎新酒 歲暮終與友對酌 美酒佳肴不比前 今逢知音唯欲喝 半生喝酒如鯨飮 但在今夜不想醉 慰吾勸酒味誰知 未知獨苟存得志 歎愚之酒曾無苦 을미년 송구영신酒 을미년 마지막 밤 벗과 마주한 대작 술과 안주가 좋기로는 비할 바 없고 知音과 함께 하니 술이 당기지 아니 하겠는가? 반평생을 고래가 大洋을 마시듯 술을 마셨다 허나 오늘밤은 취하고 싶지 않구나 꿈 접으려는 내게 친구가 권하는 술맛을 누가 알리오? 獨也靑靑으로 끝날지 뜻을 펼칠지는 알 수 없는 일 우매함을 한탄하는 술 이토록 쓴 적이 없었네! 2015. 12. 31. 23:38 草稿 구파발 寓居에서 雲靜

삶의 美醜와 균형감각 : 인간행위의 사회성 측면에서 생각해보기

삶의 美醜와 균형감각 : 인간행위의 사회성 측면에서 생각해보기 서상문(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아름다움과 추함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면 어떤 양태로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까? 한글과 한자에는 물론, 외국어에도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나타내는 한자 美醜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처럼 한자를 사용하는 곳에는 모두 통용된다. 단지 문화적으로 나라와 민족 마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약간씩 다르게 인식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언어가 다르면 사물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작지 않은 차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통적인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꽃이나 노을 등 풍광이 수려한..

어느 정신 노동자의 점심

어느 정신 노동자의 점심 하루 중 가장 긴 휴식시간 갠지스강 성수되어 흐른다 미지근한 온기의 보온도시락 속 나폴레옹이 넘은 눈 덮인 알프스를 늙은 시저의 지휘봉으로 힘 겹게 오르내린다 봄이 봄답지 않은 3월 초 한기 도는 으스스한 공장 한켠에서 설산을 구르카 용병처럼 쉼 없이 오르내릴 제 어디서 들려오는 꿈속의 취침나팔소리 띠 두른 파란 갑옷의 찬합은 귀가를 채비하고 쓰러진 주검들은 기약 없는 부활을 꿈꾼다 동학농민전쟁시 머슴들이 먹던 고봉 가득한 도시락을 다 비워도 넋 나간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데 레닌이 욕한 부르주아란 게 노예선을 상기시키고 쉰다는 게 탄광노무자의 엄동섣달이다 엄습하는 피로에 밀려 절로 감긴 두 눈 순간접착제처럼 달라붙는구나 눈을 떼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미소라 아! 이대로 시간이 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