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나와 진보진영에게만 있는 전유물인가?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 장면
불의나 잘못은 적에게만 있는 게 아니고 아군과 동지에게도 있습니다. 반대로 정의와 옳음은 아군과 동지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적에게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도 정의는 우리에게만 있고, 불의는 적에게만 있다거나, 명백한 범죄나 잘못을 범한 동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는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기 안에 이미 팟쇼의 인자가 내재돼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이 인지될 때 마다 겸허한 성찰하에 스스로 警責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이라고, 반대 진영의 사람이라고 무조건, 즉 모든 사안에 반대하거나, 아군과 동지라는 이유로 무조건 지지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주견 없이 동원되듯 날뛴 홍위병을 자처하는 거나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나, 자기성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민운동의 영역에 있는 분들이라면 아군과 동지에 대한 비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한 비판이라면 귀기울 줄 아는 겸허함과 자기성찰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의는 자신과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니까요.
어떤 사안이나 사람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하는 사람에게 "너는 어떤데?", "우리 중에 자신 있게 돌을 덜질 수 있는 자가 누가 있는가?"라면서 당신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질책이나 비아냥도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거나 문제를 덮으려는 물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대화 태도 또한 자제할 수 있는 마음의 힘, 즉 자기절제력이나 자기통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완벽한 인간만이 남의 허물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이 짧은 인간사에서 예수나 석가가 되기 전에는 누구도 자격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허물은 정도의 차이일뿐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완전무결성은 남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못합니다.
자연계를 제외한 인간세상에 절대적인 참과 정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비판하는 이가 내놓은 글의 취지와 행간의 문맥을 잘 헤아리는 신중함은 물론이요, 良知와 明哲이 먼저겠지요. 한국인들이 대부분 정치나 종교얘기만 하면 쉽게, 자주 입씨름을 하게 되는 이유도 상대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성급하게 그를 비난하는 데 많은 원인이 있습니다.
평소 시민운동이든, 정치인이든 먼저 한국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토론하는 방법론과 겸허함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한국어능력(주로 독해뿐만 아니라 토론시의 용어 선택능력 등의 언어구사력을 가리킴)이 사회의 성숙도를 높이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화란 언어만이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 보다는 표정, 눈빛, 말의 톤, 얼굴색, 손짓, 몸짓 등 비언어적 요소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도 일정한 소양을 갖춰야 하겠지만요.
명백한 잘못이나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범죄를 비판하는 정당한 문제제기임에도 자신과 견해 혹은 希願과 다르다고 해서,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인격비하, 상대 말의 의도적 곡해나 비아냥 거리는 어투는 건전한 논쟁마저 개인 차원의 소아병적 언쟁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오류가 있습니다.
겸허해야겠습니다. 사악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전선의 공고화와 외연확대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시대사적 엄중한 시기라 할지라도 함량 미달의 대화자세나 지적 결례가 아니라면 특정 정치인 혹은 특정 정당의 패착이나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하는 정도의 문제제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나 비판에 대한 논리적 反合은 나오지 않고, 단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과 그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사람 간의 개인 문제로 치부되거나 봉합되는 걸 보니 치열성과 논리가 많이 취약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더 많은 성찰과 겸허가 필요합니다.
2016. 10. 17
雲靜
진보라고 자칭하는 밴드 내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방식을 보고 한 마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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