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짧은 글, 긴 생각

휴일 새벽에 떠오르는 성인의 가르침 :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법론의 美學

雲靜, 仰天 2015. 12. 1. 15:27

휴일 새벽에 떠오르는 성인의 가르침 :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법론의 美學

  
인간관계는 대체로 생각이나 마음에서 시작돼 그것이 말로 표현되고 행위로 결정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말이 복덕이 되거나 독이 되는 게 다반사이기도 하죠.
 
우리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 경우도 있지만, 말 한 마디로 멸문지화를 당한 예를 역사에서 숱하게 봅니다. 말이 복덕이 되거나 화가 되는 까닭은 그 내용에 남의 잘잘못이 거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직장, 단체, 군대 등과 같은 조직생활에선 피치 못하게 남의 잘못을 거론해야 할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자신이 남에게 비판 받을 때도 있지만 남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거론할 때도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지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해 석가모니는 남의 잘못을 들춰야 할 때는 다섯 가지에 유념해야 한다고 설한 바 있습니다.
 
첫째, 들추려는 잘못이 사실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둘째, 시기가 적절한지 살펴야 한다.
셋째, 이치가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도 이익이 있어야 한다.
넷째, 부드럽고 조용하며, 시끄럽게 하거나 까다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사랑하는 마음을 꾸준히 유지하며 성내지 않아야 한다.
  
참으로 마음에 새겨야 할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마디로 남을 경책할 시에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는 진심어린 마음이 우선돼야 하며, 사실에 근거해 그 방법이 따뜻하고 온건해야 함과 동시에 시의에 맞아야 한다는 걸 강조한 것입니다.
  
경책하고자 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고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방법이 적절해야 하는데, 말의 어투와 용어도 세심히 배려하고 주의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이르고자 하는 때와 장소의 적절성이 중요합니다. 이 점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몰라도(사실은 그것도 아닌 경우도 많은데,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강도행위나 약자에 대한 폭행, 납치, 성추행, 교통법규 위반해서 사고를 유발할 정도의 행위 등등을 하는 자에 대해선 침묵해선 안 됨), 같은 직장내 특히 공무원 집단 내에선 남의 잘못을 보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선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적 차원의 업무니까 모르는 척 눈을 감으면 그 폐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할 때는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다르고 일률적으로 적용할 순 없다. 다만 위 본문의 내용은 말로 해도 충분히 해결되거나 개선될 사안에 국한 것이다. 노상에서 강도짓을 하는 강도나 폭행자에게는 이런 말로는 전혀 효과가 없듯이 말이다.


옛사람들이 말의 시의성과 적절성에 대해 강조하고 자주 경구로 남긴 이유입니다. 조선조 후기 유학자 姜樸 선생 역시 말의 시의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는 선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금과옥조 같은 좋은 말이나 생각이라도 때와 장소가 아닌 상황에서 말하면, 곧 망언이 된다(思而雖得, 言之有時, 匪時則妄)고 경계한 바 있습니다.
  
복덕은 말에서 오고 말에서 사라집니다. 시의 적절한 말로 복덕을 수미산처럼 쌓고 그것이 인간사회에 유익하도록 하해와 같이 널리 퍼지게 되길 바랍니다. 어제 밤 서울에서 가야산으로 내려오기까지 도중에 차안, 매장에서 우연히 목도하게 된 뭇사람들의 적절치 못한 언행을 접하면서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2015. 11. 29 겨울로 들어선 일요일 06:38
친구들과 찾아온 가야산 해인사 인근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