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205

하이쿠 箕靑山

어제 처음으로 청하에 있는 자연식물원 기청산을 찾았습니다. 겨울과 봄 사이에 생명과 우주가 보였습니다. 식물원 이사장 이삼우 선생님이 가꾸신 필생의 노고가 감지됐습니다. 다음에는 동트는 새벽에 가서 조금 찬찬히 음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 없는 생명체들에 대한 고마움과 선생님의 노고에 대한 경외감을 달리 표현할 길은 없고 해서 어줍잖지만 느낌을 하이쿠로 적어봤습니다. 箕靑山 箕靑山 宇宙抱き 人生きる 箕靑山 箕靑山 우주를 품고 사람이 산다 2017. 1. 31 淸河 箕靑山에서 雲靜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 신은 만들어졌다 아득히 먼 오래 전 이곳 캄보디아에도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자가 고안했었지 가루다 치솟고 아수라 널브러진 砂岩의 향연은 백성의 무지와 왕의 탐욕이 빚은 환영일 뿐 신전은 쥐 죽은 듯 비어 있고 불볕에 말라버린 신의 존재감이 인간들에게 垓子를 넘게 할 때 200만 원혼의 中陰神들은 구천을 떠돈다 신들도 학살된 킬·링·필·드 신의 도시라는 앙코르와트에는 신은 없고 신을 만든 자만 누워 있다 신의 나라 캄보디아에는 또 다시 신이 창조되고 있다 신들이 서로가 서로를 할퀴어대고 있다. 2017. 1. 24 앙코르와트에서 雲靜

한시 從弟失明

從弟失明 昨從弟勞中失明 骨折就再被膠接 失眼再也不能蘇 以一眼活過半生 吾雖病盡力執筆 刊書遲懲罰處分 吾自說我書不佳 讓辭被獪審評低 述眞率倒受屈辱 無比痛憤心至極 因不通孤心重多 大事積似如太山 精力費於些煩重 但想到從弟失明 此操碎心倒奢靡 雖不良而兩眼全 何時能看美天下 사촌 동생의 失明 어제 사촌 동생이 일과 중에 한 쪽 눈을 잃었다 뼈는 부러지면 다시 붙게 되지만 잃은 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남은 반평생을 한쪽 눈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몸이 성치 않았음에도 저서집필에 열성을 다했지만 발간이 늦었다고 징계를 받았다 내 저서의 수준은 욕먹지 않을 정도라고 겸양을 말했더니 노회한 평심원들이 그말은 받아서 책을 낮게 평가해버린다 진솔함이 되려 흠이 돼 교활한 자들에게 굴욕당하니 분하다 근래 말이 통하지 않는 자가 많아져 ..

가을 客談

가을 客談 칸트와 헤겔은 어렵다 말로써 말을 짓는다 내가 볼 게 아니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쉽다 공자와 맹자는 더 쉽다 말로써 말을 죽인다 아주 아주 쉽다 반년이면 절로 깨쳐진다. 노을 지고 낙엽 지는 뜻을 알기란 칸트와 헤겔 이상이다 깨치는데 반평생 걸렸다 노을이 되고 낙엽이 되기란 관념과 말을 넘은 경계 노을은 노을이다 낙엽은 낙엽이다 내가 노을이고 노을이 나다 낙엽이 나고 내가 낙엽이다 나는 나다. 2016. 11. 15. 09:27 雲靜

다 한 때라네

다 한 때라네 걱세게 대지를 딛고 서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다 심산유곡 청산에 누운 몸 마음은 구름 위를 노닌다. 비우면 평생 극락이요 비우지 못하면 나락이네 백년을 하루 같이 살고 하루를 백년 같이 살다 가세. 허공에 부숴질 희노애락애오욕 찰나에도 태산처럼 쌓이고 영겁에도 티끌되기 어렵나니 나볏이 두고 가세. 매미 허물 벗어던지듯 허무 위에 선 애증 다 내려두고 물 흐르듯 흘러가세 바람처럼 지나가세. 2017. 1. 12. 09:1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한시 工夫

工夫 學習卅仍無工夫 追知却不求眞義 何異互市之商人 知涌動而義落地 人爲何獲知心得 鳳凰在籠久忘飛 碧空碧而紅花紅 何時能大聲放題 공부 배우고 익힌지 30년 아직도 工夫가 없구나 지식만 쫓고 참과 의로 나아가지 않는데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와 다를 게 뭔가? 지식은 넘쳐나지만 도의는 바닥에 떨어졌도다 사람들은 지식 얻고 마음 깨쳐 어디다 쓰려는 걸까? 봉황이 새장에 오래 갇히면 나는 걸 잊는다네 碧空은 푸르고, 紅花는 붉은데 자유로운 大聲放題는 언제나 가능할까? 2016. 7. 20 구파발 寓居에서 雲靜

한시 追念胡志明而想起韓國女王(호치민을 추념하면서 한국의 여왕을 떠올리다)

追念胡志明並想起韓國女王 無時無處不戰火 國民受凍亦挨餓 一生襤褸宿茅屋 每餐不可超三饌 泣不成聲胡志明 罪唯在與國結婚 爲民盡忠終病死 己死而永在民心 庶民天天艱難過 女王日日華貴衣 山海珍味享不盡 自認皆爲當然事 功在與渾奢結婚 總爲榮華弄權勢 雖生似亡民心離 罪必推上斷頭臺 호치민을 추념하면서 한국의 여왕을 떠올리다 언제 어디서나 전쟁의 포화가 없는 곳이 없어도 집이 없어 한 데에서 헐벗고 굶주린 국민을 생각해서 안락한 公館을 두고 초가에 머물며 남루한 옷으로 지냈고 한 끼에 세 가지 이상 반찬을 올리지 말라 했네 눈물에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은 호치민이여 지은 죄라곤 조국과 결혼하고 나라와 국민에게 진충하느라 병들어 죽은 것뿐이네 죽어서도 민중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구나! 서민들은 하루하루 고되게 살아가는 데도 여왕은..

한시 尋訪越南攀龍(베트남 번롱을 찾아서)

尋訪越南攀龍 海有下龍陸攀龍 爲游攀龍乘蘆舟 天衣蝶群風中舞 巨龍無言臥睡中 淸水罕見之越南 明水魚泳樂逍遥 微波似龍泛銀麟 誠是鳶飛魚躍境 善惡本是不定性 夢中難辨善與惡 醒来即分美和醜 願汝永睡而不醒 蓮花開謝至永生 人仙兩界水窟分 常夏驕陽下攀龍 喚客至此對幽寂 베트남 번롱을 찾아서 바다에 하롱베이가 있다면 뭍에는 번롱이라네 용에 오르고자 갈대배에 올라 번롱으로 노 저어가니 거대한 용이 말없이 누워 잠자고 있구나 하늘하늘 산들바람 하늘 옷 사이로 나비들이 떼 지어 춤춘다. 맑은 물 보기 힘든 베트남 땅 속 비치는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무리 지어 노닐고 찰랑대는 물결은 용의 은비늘 같으니 그야말로 鳶飛魚躍의 경계로구나. 선악은 본디 정해진 게 아니어서 잠자는 모습에서는 선악을 볼 수 없구나 허나 깨어나면 美醜가 분별되니 그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