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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즈음해 바라는 작은 소망

雲靜, 仰天 2014. 8. 15. 11:36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즈음해 바라는 작은 소망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역사적인 프란치스코 교황(Francis, Jorge Mario Bergoglio, 1936. 12. 17~)의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13년 3월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는 아시다시피 남미 아르헨티나 주교 회의 의장 출신인데, 카톨릭 역사상 비유럽지역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그가 최초입니다. 보수적인 카톨릭교계에서 유럽이 아닌 지역의 사제가 교황으로 등극한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쾌거로서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128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교황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부터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합니다. 교황의 방한은 이번이 세번 째입니다. 1984년과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두번에 걸친 방문에 이은 것이죠. 그는 교황이라는 종교지도자의 신분이자 바티칸이라는 국가 정상의 신분으로 방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서 둘 밖에 없는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한반도평화와 남북통일에 관해 분명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입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기고 어떤 행보를 보여주실지 주목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이란 사도 베드로의 정통성을 잇는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임과 동시에 로마의 주교입니다. 장구한 기독교 역사에서 숱한 사건들이 많았지만 주로 교세 확장, 이교도 개종, 세속권력과의 충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교권이 세속권을 능가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시대인 11세기 후반부터였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1077년에 있었던 '카놋사의 굴욕'이라는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이들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 7세가 한 판 붙은 사건말입니다. 그 때 황제가 교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죠. 이때부터 교황의 교권이 황제의 세속권력을 제압했던 것입니다.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이 충돌한 이와 유사한 사건은 청대 중국에서도 발생했었습니다. 즉 중국 청대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康熙, 雍正, 乾隆 황제 시기 로마의 교황이 중국인들이 지내는 공자에 대한 제사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고 이를 용인한 중국 내 예수회 소속 신부들에 대해 징치하려고 하자 분노한 중국 황제는 이를 내정간섭으로 보고 중국 내 신부들을 추방한 일이 있었죠.
  
어쨌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00년의 장구한 기독교 역사에서 존재한 역대 266명의 교황 중에서 19세기의 레오 13세, 20세기의 요한  23세와 함께 개혁적인 사상과 마인드를 지닌 교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년 3월 13일 취임한 후 일관되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찾는가 하면, 사회정의를 위해 사회 참여적인 개혁적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지요. 이는 자신의 스승인 아르헨티나의 후안 카를로스 스칸노네 신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스승이 해방신학자였죠.
 
잘 아시다시피 ‘해방신학’은 정의롭지 못한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종교적, 사회적 실천을 강조했던 기독교 신학운동입니다. 1960년대 군부 독재권력이 심화되기 시작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태동돼 일군의 개혁적 가톨릭 신학자들이 주도하고 일부 진보적 개신교 신학자들까지 참여함으로써 초교파적인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기존 체제와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해온 보수적 기독교와 다른 딴 판의 교리해석과 지향을 보여주기 시작한 거였지요.
 
그들은 빈민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교리를 해석함으로써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정치적 부조리들로부터 민중들을 해방시키는 사회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빈곤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사회적 죄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은 인면수심의 신자유주의가 세계 구석구석 무차별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전지구적 범위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의의가 있는 교설입니다.
 
요컨대 해방신학의 핵심은 빈곤해소를 중심과제로 한 사회개혁과 교회개혁입니다. 가난과 차별의 해소는 사실 예수님이 몸으로 보여주신 기독교리의 핵심적 지향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한국교회에선 정치권력화 된 기성 개신교회들이 자신들이 누려오고 있는 기득권에 영향을 미칠까봐 이에 대해서 이단시, 사갈시 해왔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그가 '복음의 기쁨'에서 강설한 내용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 하셨죠.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설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랍니다.” 그는 또한 가톨릭교회에서 “가난이 신학의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주제가 돼야 하고,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발언의 내용은 사실 해방신학의 창조물이나 전유물이 아니라 '지적 소유권' 혹은 '영적 소유권'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재세시에 직접 몸으로 보여주신 진정한 사랑의 가르침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내가 방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수님의 21세기판 화신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불우한 자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어느 곳이든 다양한 형태로 부활하신다고 하잖아요? 
   
역대 교황들 중에 두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프란치스코 교황 만큼 개혁적, 진보적 사상을 가진 교황은 없었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교황께서 세계인들로부터 폭 넓게 존경을 받는 이유입니다. 그의 신학적 주장은 한 마디로 사람이 중심인 사회, 그리고 교회는 정의를 위해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묵시론적으로 보시고자 하는 구극 상태이자 우리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나는 교황의 방한을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평가절하하고 있는 개신교 내 적지 않은 대형교회의 세속화, 물신화, 정치권력화가 하루아침에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말씀을 교리에서 벗어날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식에도 어긋나게 해석하면서 기독교신도와 교회를 망치고 나아가 우리사회에 갈등을 부추기는 몇몇 수구적 정치 목사들에게 크게 반향이 미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죽어서 하늘 나라에 가기 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바로 여기가 천국이 되어야 한다는 해방신학이 우리사회에 새롭게 조명되길 기원합니다. 가난에서 비롯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차별들이 해소돼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하늘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는 해방신학의 정신이 우리사회에도 널리 퍼지길 원하는 것이죠.
  
과거 16세기 이래 적지 않은 카톡릭 신부들이 교세가 위축되고 있던 유럽을 벗어나 이교도를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새로운 기독교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아시아와 남미로 떠났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특히 인도, 필리핀,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복음전파 과정에서 보인 대부분의 사제들이 지녔던 오만과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편견의 제국주의적인 행태들이 상기됩니다. 현대에 들어와 중국 국가지도자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바티칸과도 국교를 수립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독교가 서구의 문명을 전근대적인 비유럽 지역에 전해주어 근대화에 물꼬를 트게 한 긍정적인 역할도 있었는데, 그런 긍정적 물결이 한국사회에 재현되길 희망합니다.
  
한때 기독교의 아시아 전파사를 연구한 바 있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을 한국학계에 선보이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로선 기독교에 관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종교가 한국사회의 기형적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일종의 사명의식도 작용한 겁니다. 그래서 수 년전 포르투갈을 방문했을 때도 기독교의 아시아전파사를 공부한 학인의 눈으로 유럽의 한 단면을 본 기억이 새롭습니다. 
  
다시 한 번 교황의 방한을 진심으로 축원하고,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가 사상, 신념, 종교, 가치 등에서 좀 더 다원화 되고 종교간의 화합이 진전되길 발원합니다.
 
2014. 8. 14. 06:20
구파발 寓居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