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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베트남 여행 :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최초의 베트남 여행 :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식민통치 시절 프랑스인들이 "아시아의 진주"라 일컫던 상하의 나라 베트남! 1960년대 중후반 포항 기차역에서 해병 청룡부대 용사들의 파월 발대식을 봐오던 소싯적 때부터 말로만 듣던 베트남을 찾았다. 난생 처음이다. 2000년 10월 23일이었다. 호치민(Hồ Chí Min)시에 20여년 째 살고 있던 초등학교 친구를 볼겸해서, 또 베트남에 비지니스 일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친구와 같이 갔다. 가을이 익어가는 10월 하순, 4박 5일의 짧은 일정이어서 우리는 수도인 북쪽의 하노이(Hà Nội)는 가지 못하고 경제 수도로 일컬어지는 남부의 호치민시에서만 지냈다. 도착한 첫날은 친구의 비지니스 볼일도 볼 겸해서 호치민 시내 번화가, 백화점, 프랑스인들이 지어..

당시 약 40번 째의 중국여행(1998년 7~8월)

당시 약 40번 째의 중국여행(1998년 7~8월) 또 다시 중국을 찾았다. 1998년 7~8월 한 여름이었다. 이번엔 친구의 박사학위 취득 기념으로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이다. 북경에서 서안으로 가서 서안 일대를 본 후 낙양으로 이동해서 그곳의 소림사, 윈깡 석굴, 백마사를 중심으로 낙양을 보고 정주를 거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서 귀국하는 약 보름 간의 일정이었다. 첫번째 여행지인 서안에서는 순조롭게 많은 곳을 잘 보았다. 그런데 두 번째 여행지인 낙양에서 심상치 않은 여러 가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서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서 정주를 보지 못하고 급히 바로 북경으로 돌아왔다. 북경에서도 또 불상사가 일어났다. 낙양에서 당한 것처럼 또 다시 우릴 태운 버스 차장이 우리를 또 속이려 들어서 급기야 내가 천..

사막문명권의 실루엣을 만지게 한 몽골여행

사막문명권의 실루엣을 만지게 한 몽골여행 199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에 몽골을 일주일간(6. 5~6. 10) 여행한 적이 있다. 동행자는 후배 일명 "윤 트라볼타" 윤승권이었다. 당시 그는 중국 북경에서 또 다른 내 후배인 그의 친구와 함께 둘이서 여행사와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연구에 필요한 자료수집차 중국을 자주 드나들 때였다. 일이 있거나 할 때는 한 달에 두 세 번 갈 때도 있었다. 나는 북경에 갈 때마다 중국의 다른 지방으로 가지 않는 한 대부분 그 후배들 집에서 묵었다. 6월 초 어느 날, 후배집에 갔더니 후배가 팔지 못하고 남은 한국산 브로치, 머리핀, 악세사리 등의 재고가 많다고 푸념을 늘어 놓고 있었다. 그 물건들은 그들이 모두 남대문시장에서 도매로 떼..

최초의 해외여행지 일본(1985. 7~8)

최초의 해외여행지 일본(1985. 7~8) 1985년 7월, 대학 3학년 때 같은 과의 친하게 지내는 두 형과 함께 생애 최초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지 않아서 아무나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시절이아니었다. 행선지는 당시 "가깝고도 먼 나라, 멀고도 가까운 나라"로 일컬어지던 일본이었다. 여행기간은 원래 한 달 계획으로 떠났지만 나는 중도에 조금 앞당겨서 귀국했다. 출발은 부산에서 카페리호로 떠났다. 귀국은 오사카에서 비행기로 했다. 우리가 거쳐 간 곳은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히메지, 고베, 오사카, 나라, 교토, 나고야 등지였고, 나머지 두 형은 계속해서 도쿄까지 가서 내가 소개해준 내 친구를 만나고 돌아왔다. 이 때의 일본여행은 나에게 일본을 이해하는 데 많은 공부가 된 기회였..

군대생활

군대생활(1979. 12. 4~82. 9. 16)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하는 군대생활! 나도 여느한국남자처럼 34개월간 군대생활을 했다. 당시는 복무기간이 33개월이지만 나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남들보다 한 달 늦게 제대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또 다른 설명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기선 건너뛰기로 한다. 차후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3전 전승으로 헤비급 우승을 먹고 포상으로 1주일간 휴가를 받아 나간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등병 달고 자대 배치 받고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상등병 때! 권총 차고 똥폼 한 번 잡아 봤다. 뒷 친구는 군번이 두 달 정도 앞선 상황실 동료였는데 군대 생활 동안 재미 있게 잘 지냈었다. 지금은 한국 조경업계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유수의 기업체 사장..

고교시절의 한 때

고교시절의 한 때 고2 때 태권도 도복으로 폼 잡은 모습! 공격은 친구 손태진이 하고, 방어는 내가 했는데, 고수 티가 나니껴? 이 때 나의 돌려차기 모습을 찍은 사진은 제법 이소룡 같은 작품이 나왔었는데(그래서 여동생이 자랑삼아 시집가서도 수년간 보관하고 있었음) 나중엔 어데로 사라지고 없어 대단히 아쉽네요. 하라는 공부는 열심히 한 기억은 없다. 허구한 날 운동이 아니면 그림 그리러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 기억이 다수인 시절...... 그 시절엔 정말 힘이 넘쳐흐를 때였었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한판 붙은 합기도 식의 자유대련에서 포효(?)하는 자는 누군감? 스무살 시절,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에게 묻는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에게 묻는다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계열 국회의원 당선자 중 이석기와 김재연이 결국 대한민국 국회에 입성했다. 그들이 반대파와 대다수 국인(國人)의 반대를 묵살하고 막무가내로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목적이 무엇일까? 수치는 순간이지만 ‘출세’가 좋고 ‘가문의 영광’은 영원하기 때문에? 사회발전을 위해 봉사하고자? 아니면 주사파처럼 북한지령을 받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대한민국 전복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들의 진정한 동기와 목적은 자신 외엔 아무도 모른다. 국가공직자라면, 더욱이 1급 국가기밀을 접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줄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치를 하고, 의원이 된 동기와 목적을 가늠할 수 있는 국가관이나 대북관과..

기로에 선 한국불교

기로에 선 한국불교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30대 초반 유학시절을 전후 해서 각기 다른 두 스님으로부터 출가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 법기가 아닐 뿐만 아니라 계율도 잘 지키지 못할 텐데 겉으로 잘 지키는 척 행세한다면 그건 위선이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굴레이자 속박이라는 이유들 들어 제의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때의 결정이 옳았는지는 선뜻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제대로 된 승려가 돼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이뤄낸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 출가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와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성취하려는 발원이 선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출가수행은 엄격히 계(Sila)와 율(Vinaya)을 지켜 욕망을 끊는데서 출발한다. 욕망은 ..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상식’으론 해결이 안 된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상식’으론 해결이 안 된다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통합진보당의 공방 소음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통진당 당권파가 관련된 정당 사상 초유의 불법선거는 상식에 대한 몰상식의 폭거다. 1904년 토마스 페인의 저서 ‘Common Sense'가 일본에서 ‘상식’으로 번역돼 한국에 들어온 이래 상식이 이처럼 위협 받기는 처음이다. 당권파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사퇴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그런데 비판과 사퇴요구가 빗발쳐도 그들은 부정을 ‘실수’라고 항변하면서 사퇴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일반에 노출되지 않은 그들만의 논리 때문이다. 첫째, 국민 보다 당원을 우위에 두는 전도된 선민의식과 열등감으로 점철된 엘리트주의다. 어떤 정치체제 세력에게도 불변의 가치인 국민은 당원 위의 상위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