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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보이지 않은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보이지 않은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의무를 버리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어라”는 안내방송만 하고 다음 단계의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절박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승객들을 놔두고 업무용 무전기로 서로 교신하면서 선교로 모여 다 같이 선원전용 통로로 빠져나갔다. 구출된 15명의 선원들 중 단 한 명도 승객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그 시각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실에서 대기한 단원고 학생과 승객들이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있다가 변을 당하게 된 꼴이다. 승객을 다 구하고도 남을 44대의 구명보트 중 달랑 2대만 풀려지고 나머지는 둔탁한 철선에 묶여 있었다. 비리, 부정, 탈법 운영, 비호 등의 구..

대학 2학년 때의 습작

대학 2학년 때의 습작 대학 2학년 때의 습작을 정말 오랜 만에 볼 수 있게 됐다. 선사한 나의 여러 졸작들 중에 드물게 행방을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다. 다른 두 작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파도치는 밤바다를 20호에 담은 것과 8호에다 그린 겨울 풍경도 있는데 고등 동기와 6촌 누나네에 선물했다. 아래 유화는 겨울이 막 지나고 초봄인 3월 말경,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안개 속 계곡의 숲속 풍경을 그린 것이다. 약 30년 전 선배에게 선물한 것을 최근 사진으로 찍어 받았다. 그림 가운데 빛 같은 희끗한 자욱은 이사 때에 긁혀 손상된 흠테라고 한다. 산에 오르면 어디에서든 쉽게 눈에 띄는 아침 풍경을 습작으로 그린 것이어서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코멘트는 없다. 내 품을 떠난 것이 사진으로라도 나에게 나타..

부패 고리를 끊지 않으면 참사는 계속 된다

부패 고리를 끊지 않으면 참사는 계속 된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분노가 치밀어 오르시죠?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초동대응만 제대로 했더라면 자신 보다 3분의 1도 살지 못한 많은 어린 생명들을 구할 수 있었을테니깐요. 전원 구속된 선원 15명은 사주 측이 경비절감 한답시고 고용한 함량미달의 비정규직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한 뺑소니 차원을 넘어 깊숙한 곳에 칡넝쿨처럼 얽혀 있던 원인들이 일거에 분출된 예고된 인재입니다. 지금까지의 경찰수사가 말해주듯이 언젠가는 분명 사고가 날 거라는 걸 알고서도 정부 감독기관이 20년간 항로를 독점하도록 해운 선박회사의 갖가지 탈법과 부정을 눈감아 줬으니까요. 우리사회에 고질화 돼있는 황금만능 의식과 게..

안전불감증 공화국이 빚은 ‘세월호’ 참사, 총체적 부정합이 공범

안전불감증 공화국이 빚은 ‘세월호’ 참사, 총체적 부정합이 공범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아이들이 한 줄기 빛처럼 기적 같이 우리 앞에 나타나길 간절히 기원했지만 신은 외면했다. 슬프고 참담하다! 온 나라,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초상집을 방불케 한다. 세계가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다. 차디 찬 바다 속 선실 안에 갇혀 산소가 떨어져 가는 상황,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가운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어린 생명들. 그 아이들이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친구를 부르짖으며 죽어가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뭍에서 분초를 다투며 조난자들이 구조되기를 기다리며 절규하는 부모와 가족들, 그러나 결국엔 버젓이 눈 뜨고 그들을 사지로 떠나보내고 말았다. 국민들에게도 애통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당사자..

『奉天承運—皇帝制度』讀後感

中國制度史研究報告 『奉天承運 : 皇帝制度』讀後感 指導教授 :王壽南 學 生 : 徐相文 班 級 : 博一 學 號 : 85153506 本篇「奉天承運—皇帝制度」為刑義田對中國皇帝制度所論析的文章。著者論析該問題的動機為著者認為「欲了解傳統中國的真貌,就不能不一探傳統社會紐帶所系的皇帝制度。」著者就在為提供了一個了解傳統中國的線索之目的下,將歷代皇帝制度在政體層面劃分為三個時期 :一、夏、商、周三代以前所行的「禪讓傳賢」、「天下為公」的時代 ;二、三代以後迄1912年清帝退位的「家天下」時代 ;三、自辛亥革命後在名目上又回複的「天下為公」民主時期。然後從七個議題,即皇帝制度的出現、天下為家、皇權的運作、皇權的繼承與轉移、皇帝制度的發展、皇帝與中國社會、皇帝制度的結束及其餘波等論述。 著者論述的脈絡是自從皇帝制度的來源→皇帝制度的確立以及其鞏固→皇權的運作→對各方面的影響。如果將它..

『新唐書』「僕固懷恩傳」

「史料與史學專題研究」讀書報告 『新唐書』「僕固懷恩傳」 所 級 :歷史所博二 姓 名 :徐 相 文 指導教授 :王壽南 日 期 :1998.3.2 中國史學歷來就有寓褒貶、別善惡這一套所謂「春秋筆法」的表述傳統,使得歷史的書寫,無可避免地以意識形態為導向。尤其,在歷代專制帝王有意識地鼓吹之下,再加上儒家名份綱常思想的浸潤強化,以君主制度為核心所規範的道德標準,長期籠罩著史學領域,甚且成為衡量歷史是非功過、評斷人物長端最重要的一把標尺。特別是官修史書所反映的觀點與立場,一定程度地沾染著此種政治因素所框限的倫理色彩。所以,對於『新唐書』叛臣列傳的解讀,理應嵌置在這種特定的背景脈絡中去作考察。 據此,我們可以提出一項合理的質疑:以叛臣的歷史定位廁身史籍的僕固懷恩,在帝王政治強加的道德框架裏,是否即因為忠君觀念的道德屬性被無限上綱,從未致使其背反李唐王朝的行為蒙受了過度的道德撻伐與譴責? 僕..

『廿二史劄記』「東漢、唐、明的宦官」

「史料與史學專題研究」讀書報告 『廿二史劄記』「東漢、唐、明的宦官」 所級:歷史所博二 姓名:徐 相 文 指導教授:王壽南 日 期 :1998.3.2 趙翼所著『廿二史劄記』,其內容的構成固有考證,但尤以史論見長。所論多是淬煉歷代政治史的特點,析分條目,從史實的客觀呈顯當中,有針對性地發表議論。中國政治舞臺獨特的官宦問題,即為其史論中的一環。 宦官這個類群,是中國王朝政治時代,皇帝「家天下」心理叢結下的特殊產物。而不僅只是宦官身份的出現和存在,與皇帝制度的總體架構纏結難解,若進一步推究,東漢、唐、明三朝萌發的宦官之禍,追本溯源,也是根植於皇帝制度的土壤。更確切地說,中國過往的王朝政治時代,皇帝為主權的唯一來源與擁護者,任何其他的權力運轉,皆須夤緣皇權而行。換言之,宦官成就威勢的權力臍帶,即是源於皇帝制度。因此,宦官所擁有的權力,實可視為皇權的變體延伸。 而皇帝之所以將權力交付自己側近的..

아베 총리가 일본의 과거사를 되돌아 봐야 할 이유

아베 총리가 일본의 과거사를 되돌아 봐야 할 이유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한 게 뭐가 있을까? 아베 신조 총리를 위시한 일본의 극우정치인들이 저토록 방약무인하게 이웃 국가의 화를 돋우는 요즘 새삼 떠오르는 의문이다. 잘라 말해 일본이 한 건 거의 없다. 역사발전에 공헌하기는커녕 해만 잔뜩 끼쳤다. 과가 공을 압도한다. 굳이 공을 꼽으라면 서양문물의 수입과 근대화의 동아시아 전이, 즉 번역자와 중개자 역할 정도다. 반면 일본이 받은 수혜는 천문학적이다. 한자와 불교를 수입해 문자생활이 가능하게 됐으며, 정신적 고등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유교는 일본정신을 발현시킬 수 있었던 토대가 됐다. 또 농경에서 건축, 도자기술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

동아시아의 역사판도를 바꾼 淸日전쟁 : 사실과 영향

동아시아의 역사판도를 바꾼 淸日전쟁 : 사실과 영향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21세기 초엽, 동아시아가 굉음을 내면서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다. 공전과 자전의 두 축은 중미관계와 중일관계다. 중국과 미국은 갈등과 경쟁의 반복이라는 싸이클을 타고 있지만 오랜 숙적 중국과 일본 사이에 붙은 패권경쟁의 불은 사그라지지 않는 상황이다. 중국, 일본의 패권경쟁과 충돌의 접점은 역사, 영토문제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역사적 원인이 내재돼 있다. 중일 간의 현안들은 대부분 120년 전 청일전쟁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답이 명료해진다. 이 전쟁을 알면 오늘날 현안들의 근원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난 달 15일 황해를 건너 120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간 역사 여행을 떠난 이유였다. 목적지는 청일전쟁의 ..

중국군 유해송환, 한중관계의 새 이정표

중국군 유해송환, 한중관계의 새 이정표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지난 주 중국군 유해 437구가 마침내 그리던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갔다. 작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한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두 나라 최고 지도자간에 이뤄진 이 결실은 한중관계에서 한 시대를 매듭짓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아무도 찾는 이 없이 반세기 이상 외로이 ‘북한군 중국군 묘지’에 누워 있던 유해가 이번에 완전히 귀환된 것은 인도주의의 실천이자 인정미의 발현이다. 한국전쟁이 끝나도 중국군 유해는 중국에 모셔지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적군이라도 묘지를 조성해 존중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정에 따라 전쟁 후 전국에 산재한 중국군 유해를 찾아 1996년 7월부터 파주시 적성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