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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보이지 않은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雲靜, 仰天 2014. 4. 29. 05:43

세월호 참사의 보이지 않은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의무를 버리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어라”는 안내방송만 하고 다음 단계의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절박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승객들을 놔두고 업무용 무전기로 서로 교신하면서 선교로 모여 다 같이 선원전용 통로로 빠져나갔다.

 

구출된 15명의 선원들 중 단 한 명도 승객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그 시각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실에서 대기한 단원고 학생과 승객들이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있다가 변을 당하게 된 꼴이다. 승객을 다 구하고도 남을 44대의 구명보트 중 달랑 2대만 풀려지고 나머지는 둔탁한 철선에 묶여 있었다.

   

비리, 부정, 탈법 운영, 비호 등의 구조적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탈출명령만이라도 제때에 내렸더라면 승객들이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고, 그러면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와 세월호 주위에서 대기하던 민간 구조선박들에게 거의 다 구조됐을 것이다. 선장은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들이 자신 보다 3분의 1도 살지 못한 자식 같은 아이들을 놔두고 자기만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인간성 상실이자 직업적 임무와 책임감을 내던진 행위로서 담합 살인행위나 다를 바 없는 충격이다.

   

이는 지난 세기 영국 군함 버큰헤드(Burkenhead)호의 선장 알렉산더 시튼 대령과 영국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Titanic)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의 살신성인 행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1852년 버큰 헤드호가 해군병사들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항해하던 중 침몰하게 되자 시튼 대령은 병사들에게 끝까지 여자와 어린이들을 구하게 한 후 자신은 부하들과 최후를 맞이했다.

 

 

암초에 부딪쳐 침몰해 많은 인명을 앗아갔지만 영국인, 특히 영국군이의 신사도를 세계인에게 각인시킨 버큰헤드호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시 스미스 선장도 선원들에게 최후까지 승객들을 구조할 것을 지시하고 자신은 승객들이 마지막까지 구조되는 것을 보면서 배와 함께 운명했다. 이 과정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잘 알려져 있다. 선박의 질은 더 나은 현대지만 선장의 정신은 100년도 더 뒤떨어졌다.

  

시튼 선장, 영국 병사들과 스미스 선장의 그런 정신은 어디서 나왔을까? 전자는 정신교육을 받은 군인이었기 때문에 명령에 복종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명감이 일반인 보다 더 강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보다는 귀족이 모범을 보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영국의 명예와 전통의 힘 그리고 금욕적 직업의식에서 발로된 책임의식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왕족이나 귀족이 전쟁, 외침 등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맨 먼저 자진해서 참여함으로써 일반 국민의 귀감이 돼 왔다. 사실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스미스 선장이 최후에 말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의 건아들이여,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 boys, be British)는 발언은 곧 영국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왔는가를 짐작케 한다.

  

우리에게도 호연지기와 같은 정신을 강조하고 이타심과 살신성인을 숭상하는 전통이 있다. 실제로 남을 구하고 자신은 희생된 의인도 적지 않다. 베트남 패망 직전 사이공 주재 한국인들을 끝까지 탈출시키느라 자신은 월맹군에 포로가 돼 수년 간 억류됐다가 생환한 마지막 주월 공사 이대용 장군, 일본 도쿄전철의 철길에 떨어진 승객을 구해주고 자신은 죽음을 당한 의로운 청년 김수현이 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객들을 구하다가 자신은 변을 당한 교사와 선원이 없지 않다.

 

 

베트남 주재 마지막 최후의 한국 공사로서 많은 한국인 교포를 구하고 자신은 월맹군의 포로가 된 이대용 전 공사의 군 생활시 모습
나이가 들어서도 강직하고 정의롭게 사시다 간 이대용 전 공사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그는 술취해 철길에 떨어진 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당시 고려대를 휴학하고 일본에 유학중인 26세의 대학생이었다. 죽어서 의인이 되기 보다 살아 의인이 될 순 없었을까? 세월이 지나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수현 군의 살신성인은 애증으로 얽히고 설키고 있는 한일관계에서 일본인들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시각과 평가를 달리 하게 만든 세 가지 사건 중의 하나였다. 한국인을 멸시하고 낮춰보던 일본인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내가 보기에 88서울 올림픽, 드라마 겨울연가, 이수현의 살신성인이라고 본다.

  

그런데도 문제의 선장과 다른 선원들은 왜 모두 줄행랑을 쳤을까? 선장은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하는 게 해양업계의 불문율인데, 위험에 처한 승객들을 나몰라라 하고 도망친 행위는 세계해운사상 유례가 드문 치욕이다. 일차적으로 자신의 사람 됨됨이와 관련이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성 파탄이라는 것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내재적 원인이 존재한다. 즉 단순한 선박회사의 비리, 부정, 선장 및 선원들의 뺑소니가 원인의 전부가 아니라 원인들은 좀 더 깊은 곳에 칡넝쿨처럼 얽혀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부재를 넘어 부정, 편법, 탈법이 판치는 현금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반영된 행위라는 소리다. 한국은 돈으로 안 되는 게 없고, 돈이라면 무슨 짓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황금만능주의, 공사를 구분하지 않는 인정 혹은 의리문화, 사악한 이기심으로 점철된 정치문화, 돈과 권력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사회다. 그러니 각각의 직위나 직분에 맞는 책임의식과 사명감이 무뎌지고 정상적으로 살면 자신만 손해 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청해진 그룹의 실질 사주 유모 회장의 재산이 2,400억 원대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재산축적의 정당성도 의심스럽지만 재산이 홍수처럼 넘쳐나면서도 이 회사가 비정규직 직원을 뽑아 부려먹었다는 게 더욱 개탄스럽다. 갑판부, 기관부 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전문 해기사도 없었고, 사주인 회장이 보낸 종교단체 직원이 이를 대신했다고 한다.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으로서 노동착취다. 20년 된 노후 배를 불법으로 뜯어고쳐 정원을 늘리고, 화물 적재량도 높였다.

 

승객 수와 화물중량을 허위로 조작하고 늘린 것은 탈세와 관련이 있다. 수리와 정기 검진도 형식적이었다. 사람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선장과 조타수 역할까지 비정규직 직원에게 맡겼다. 이번 운항에도 화물을 많이 실을 목적으로 평형수를 빼내 평형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채 과속으로 몰다가 갑자기 변침했다. 애초부터 세월호가 폭탄을 싣고 출발한 거나 다를 바 없었다는 선박전문가의 뼈아픈 지적처럼 이윤 극대화를 위해 선박시설의 임의 개조, 무게중심을 무시한 화물과적으로 인해 복원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기우뚱한 채로 인천항을 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해야 할 관련 기관은 해운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항로 독과점을 인정해주는 등 정부기관도 부정에 가담했고,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준 이 회사에 금융기관은 수백억씩 대출해줬다. 자질 없는 저임금 선원들을 고용해서 운행을 맡겼고, 감독기관이 이를 눈 감아 줬으니 대형 참사는 언젠가는 벌어질 예고된 시간문제였다. 잘못된 제도에다 기존 제도를 준수하지 않고 감독하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로서 관련자는 모두 공범이다. 시쳇말로 총체적 “개판”이다.

 

우리는 과거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동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재계입장을 받아들여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될 때부터 이러한 사단이 올 것임을 익히 알 수 있었음에도 정부와 재계는 물론, 일부 노동전문가와 지식인들까지 이를 극구 찬성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번 참사는 이 문제와도 연관이 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버큰 헤드호는 군함이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당시 민간 호화 유람선인 타이타닉호가 소속된 선박회사도 한국처럼 수많은 비리, 부정, 탈법으로 얽혀 있었을까? 오늘날 한국은 재벌기업과 관련 감독기관들의 도덕적 마비, 행정부처의 책임의식 결여, 재난대처의 통제시스템 부재와 무능, 제도의 운용 부실,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리더십의 부재 등이 혼재한 총체적 난국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 눈을 감는다면 국회에서 해상안전을 위한 재발방지 법안을 통과시켜도 그것은 국부적 처방에 지나지 않는 하나마나한 조치다.

 

위 글은 2014년 4월 29일자『경상매일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