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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직업윤리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雲靜, 仰天 2014. 5. 2. 16:5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직업윤리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초동 대응만 제대로 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음에도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혼자만 살겠다고 서둘러 이선했다. 그들의 범죄적 도피행위는 먼저 승객을 구출한 뒤 선장과 선원들은 배와 함께 최후를 마친 영국의 버컨 헤드(Burken head)호 사고(1852년), 타이타닉호 사고(1912년)와 대비된다.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대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일반화 할 순 없지만 상류층이 국가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통과 유럽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이른바 ‘금욕적 직업윤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에 비해 우리사회에는 그런 가치관이 박약한 것만은 분명하다.

 

독일 근대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제시한 금욕적 직업윤리는 직업을 자신의 천직, 즉 소명(calling)으로 생각하고 신의 은총을 위해 끊임없이 행하는 노동을 신에 대한 봉사로 이해하면서 개인적 쾌락과 향락을 절제하는 태도를 말한다. 엄격한 규율과 조직 아래 자신의 직책을 헌신적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나태와 태만을 모든 악의 원천으로 본 그들은 근면을 지향하는 한편, 쾌락이나 사적 이익추구를 철저히 자제하고 기업에서 번 이윤을 박애주의적 목적을 위해 기꺼이 사용했다. 당시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요구된 사회적 덕목이자 직업윤리였다.

 

 

근대 독일이 낳은 걸출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법학자였던 막스 베버. 그의 학문영역은 사회학에서부터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통합적, 융섭적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정신이 기독교 신교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임을 증명하고 역설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반면,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전통시대 동아시아 사회의 직업윤리는 정치, 사상 등 모든 면에서 전일적으로 사회를 지배한 유교의 영향을 받아 노동을 천시하고 천민자본주의적 졸부 행태를 보였다.

 

동아시아 국가에 속하지만 서구 같은 종교적 배경이 없었음에도 근대화 과정에서 금욕적 직업윤리 정신이 나타난 일본은 약간 예외였다. 칼뱅적 프로테스탄티즘을 기초로 한 금욕적 직업윤리가 직업적 헌신의 구심점인 신이라는 초월적 대상이 없는, 즉 기독교 전통이 없었던 일본에서 생겨난 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원을 평등하게 대하고 신용과 정직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기업을 사회에 유익한 것으로 인식하는 일본인의 전통과 계합됐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가족, 가문이 삶의 중심이 됐던 전통시대 조선에는 직업의 종류가 많지 않았던 데다 국가재정을 떠받칠 정도로 국부를 창조한 대기업도 형성되지 못했으며, 가족윤리가 전체 인간의 윤리체계 가운데 기둥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1세기도 채 안 돼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은 한국사회는 대기업이 즐비하고 직장, 직업생활이 일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직업윤리가 삶의 근간이 돼버렸다.

 

문제는 직업윤리가 어떻게 형성돼 작동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금욕적 직업윤리와 달리 한국사회는 직업윤리의식이 전도돼 있다. 직업은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직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직업을 통한 인격완성이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직업이 목적이 돼 있다. 전문가가 돼 부와 명예를 누리기 시작하면 우쭐하고 자신이 최고인양 안하무인의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전문지식과 기술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성취한 사회적 인정과 부와 명예를 인생의 전부로 본다.

 

이 경계를 넘어 인생과 삶의 의미를 깨달아 성숙한 인격체가 되도록 수양을 쌓아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프로바둑을 예로 들면 대국에서 피를 말리면서 기량을 겨루지만 시합에 이겨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되고 바둑의 메카니즘을 통해 삶과 인생의 의미를 깨쳐 실제의 삶과 인생에도 그러한 지혜를 현재화 하는 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국민 대다수가 돈과 권력을 지향한다. 2011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의 15~64세 일반인 1,500명(재직자와 무직자 비율 약 6대 4)을 대상으로 행한 한국인의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 실태조사에서 한국인들은 직업생활에서 경제적 보수와 고용안정성을 가장 중시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 판검사, 의사, 대학교수, 대기업 사원 등 사회적 지위와 부가 보장되는 직업만 선호한다.

 

직업에 귀천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직업 선택의 동기에서 수입을 중요시하고 내재적 가치보다 외재적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 또 공과 사의 구분이 미흡하고 뇌물이 횡행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컨대 전체의 32.2%가 직무 관련 선물을 받아도 된다고 인식했는데, 대졸 이상(35.5%)이 고졸 이하(29.1%)보다 더 심했다. 자기직업이 사회에 봉사하는 바가 크다고 인식한 비율도 4분의 1을 조금 상회했을 뿐이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범죄적 행동은 직업윤리의식이 박약한 이런 현실의 반영이다. 직업의식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직업의 조건 가운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69세의 세월호 선장이 받은 월급은 3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런 박봉을 주면서 그에게만 직업윤리를 실천하라고 하면 그건 가혹하다. 해운회사가 먼저 직업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청해진해운 사주는 선원들이 평생직장처럼 주인의식과 애사정신을 갖고 일하도록 처우개선과 비정규직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을까 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선장과 선원들이 수백 명의 승객들, 특히 파릇파릇한 어린 생명들을 두고 뺑소니치는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등 직업윤리를 저버린 것은 개인의 인격 탓도 있겠지만 이런 직업적 여건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세월호 침몰은 악덕 기업주와 영악한 감독기관 사이에 검은 거래가 이뤄지면서부터 배태된 참사다. 직업윤리의 재정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직업윤리는 어떤 쪽으로 바뀌어야 바람직할까?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설정된 ‘예정조화설’(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사회로 갈 수 있는 이론임) 그리고 개인의 자아실현을 허용하지 않은 몇 가지만 제외한다면 금욕적 직업윤리는 새로운 모델로 받아들일 만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사적 이익 보다 공익적 이익을 우선시 하고 기업의 이윤을 박애주의적 목적을 위해 활수롭게 쓰는 기업주가 다수인 사회가 돼야 한다. 이는 모든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의 선으로서 살신성인정신을 실천하는 인간애의 추구와도 통한다.

 

성실한 근무수행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한 경제행위라는 인식에 머물지 않고, 승객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하기 위한 노력이 자연스레 회사지명도를 높게 만들어 회사수입을 증가시킴으로써 자신에게도 득이 되는 노동으로 인식되게끔 해야 한다. 금권을 쫒는 출세지향적이기 보다 직업적 양심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금전 보다 더 상위 가치인 삶의 의미를 우선시하고 타인과 공동체에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항공, 해운, 자동차 운수사업은 단순한 운송업이 아니라 사람의 안전, 생명과 직결된 업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함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양호한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매뉴얼이 수천가지라도 항시 이를 점검하고 안전관리와 사고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투철한 직업윤리의식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직업관이 바뀌고 직업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케 할 바람직한 직업윤리와 직업의식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되도록 우리 모두가 분연히 깨어나야 한다.

 

위 글은 2014년 5월 2일자『경상매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