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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 이대로 좋은가?

雲靜, 仰天 2014. 5. 21. 16:51

한국의 교육 이대로 좋은가?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우리의 교육 이대로 좋은가? 세월호 참사의 배후 간접 원인이 부패와 부정이었다는 점에서 교육체제가 개혁되지 않으면 재발방지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번 계기로 교육개혁은 반드시 착수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다. 교육개혁의 필요성은 이번 참사가 아니더라도 이미 교육계와 학자들 사이에 여러 차례 제기돼 왔지만 지도자의 결단이 따르지 않아 기존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유년시절과 청소년기의 시간과 경험은 성인이 돼 사회로 나아가기 전 거치는 필수과정이다. 이 시기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내용과 그것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방법이 중요하다. 두 시기 모두 인성과 예절, 공동체의식 등 삶에서 필요불가결한 교육내용이 있지만 중점이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가정에서는 인성, 예절, 기본가치의 가르침이 중요시 된다면 학교에서는 지덕체의 균형 잡힌 교육을 통한 기초지식, 인성, 예절, 공동체의식, 타인과 조화할 능력 등의 사회성 함양이 주된 목적이다. 이 시기는 가정에서 부모가 많은 역할을 해야 할 때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가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교육을 학교에 맡겨 버린다. 즉 가정교육까지 학교가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교육이 과연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선 크게 회의적이다. 한국의 교육이념은 널리 인간사회를 이롭게 할 인간, 이른바 ‘홍익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만한 보편성을 띤 교육이념이다.

 

여기에다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한국사회의 문제해결에 필요한 인간형이 접목돼야 한다. 즉 평화, 공존, 번영, 정의, 인권, 자연보호 등 인류보편 가치에다 사회적 약자보호, 남을 위해 봉사하고, 정의감, 사익 보다 공익을 우선시 하는 ‘섬기고 베푸는 리더십’이 갖춰진 인재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인류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가슴이 넓은 호연지기의 인재가 배출돼야 할 때다. 이는 맹자가 제시한 군자상에 부합된다. 예컨대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서 천하의 큰 길을 걸어가고, 관직에 등용됐을 때는 백성들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며, 관직에 등용되지 않았을 때는 홀로 그 길을 걸어간다. 부귀해져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빈천한 상황에 처해도 의지가 변함이 없고 위세와 무력에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인간형이다.

  

국가는 왜 교육하는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혹은 공익적 차원이다. 전자에는 개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있으며, 후자에는 국가, 민족, 사회를 지속시키고 국가와 사회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소양과 지식을 배양해주는 것이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주관적인 가치이긴 해도 안전, 안녕, 건강한 삶, 개인의 권리 보장 및 충족, 최소한의 경제적 보장 등의 다양한 가치들이 내포된다.

 

 

세계 어떤 나라든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그 만큼 한 나라와 한 민족의 존속에 절대적이다. 교육이 국가, 민족과 문화의 전승, 통합과 유지 및 발전에 필수적인 만큼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하는 이유다.

 

과연 우리의 공교육은 이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우리 청소년들이 그런 인간으로 길러지고 있는가? 전인(全人)교육을 한다고 해왔지만 구체적인 교육목표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바뀌어 왔다. 교과과정도 자주 개편돼 왔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교육의 최종 목적이 오로지 대학진학에 맞춰져 있고, 이를 위한 지식 전달에 치우쳐 온 건 변함없다. 즉 전인교육과 새로운 시대변화에 부응한 교육목표가 설정돼 있지 않다.

 

모든 교과과정은 입시위주, 아니 ‘입시올인’을 위해 짜여 있다. 입시에서 배점이 높은 국어, 영어, 수학 세 과목이 반 이상 배당돼 있다. 나머지 과목들은 부차적이다. 인성과 안전교육이 파행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 미술 등의 예술과 체육과목은 구색 갖추기로 끼워 놓았다. 그나마 주어진 최소한의 예체능 시간도 국영수를 예습, 복습하게 하는 보충시간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모자라서 학생들은 방과 후 각종 학원으로 몰려간다. 사교육으로 들어가는 돈이 최소 연 20조원(정부 공식 통계인데 실제로는 이 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임)에 이를 정도다.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은 차치한다손 치더라도 공교육이 사교육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만큼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과연 전인교육이 이뤄지고 창의성과 정의감과 호연지기의 리더십이 길러질 수 있겠는가? 학생들이 어떤 인간형으로 길러질지는 불문가지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발전론자들은 국․영․수를 중심으로 한 학과 지식이 경쟁력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에서 안전과 건강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일생동안 생명, 행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안전교육은 일선 학교에서 행사시 집체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이걸 정규 교과목에 넣고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또한 성장기 때 다져놓은 체력과 성장판 확대는 육체의 한계 능력을 높여놓아 평생 간다.

 

단체경기와 놀이를 통한 합심, 단결, 인화 등의 부수적 교육효과를 얻을 수 있는 체육시간도 늘려야 한다. 육체적 능력에 비례해 예술적 감수성, 리더십 등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사물의 원리, 도리와 근본을 깨치는 비축적적 지혜가 우선이다. 축적적 지식은 그 다음이다. 다른 학과목들은 행복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과목을 도외시 하고, 입시 관련 지식주입에 올인 한다는 건 본말전도다.

  

어른들의 사악한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한꺼번에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안전교육의 중요성과 안전교육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안전교육이 치밀하게 돼 있었더라면 당시 인솔교사와 아이들은 배가 기울어지는데도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어이없는 죽음의 안내방송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을 터다. 그리고 탈출을 시도했더라면 침몰되기 전 황금시간대에 대부분 능히 구조됐을 거다.

 

이 주장은 변을 당한 아이들이 남긴 동영상 및 카톡내용과 각종 배와 헬기들이 세월호 주위에 대기한 상황을 종합하면 적실성이 충분히 입증된다. 나는 지금 아이들의 죽음이 그들 자신의 안전지식 미비나 판단미숙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무엇이 중요한 교육내용인지 본말이 전도된 현주소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교육개혁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개혁은 교육계 내부의 개혁만으로는 달성되지 못한다. 사회적 가치, 수요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가치관 재정립, 대학입시 및 취업제도개선 등의 사회개혁과 연동돼 전개돼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전체가 돈이 전부인양 전도된 가치관에 매몰돼 돈 버는데 혈안이 돼 있고, 일류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우를 받는데 어떤 부모가 제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전도된 현실을 되돌려놓지 않으면 교육개혁은 녹록치 않다.

 

또한 다른 부모가 먼저 경쟁대오에서 손을 놓지 않으면 자신은 절대 먼저 손을 놓지 않는 불신의 문제도 숨어 있다. 따라서 교육개혁은 교육부 수장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최고 책임자가 용단을 내릴 일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전문가들의 여론을 수렴해 국가개조와 사회개혁에 발맞춰 가도록 큰 방향과 틀을 제시해야 한다.

 

위글은  2014년 5월 21일자『경상매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