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442

어떤 대화

어떤 대화 A : 좋은 아침! 출근했능교? 오늘 불금인데 잘 지내시소~ 아침에 퍼뜩 머리를 스쳐 가는 게 있었는데 호를 하나 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東浪"이 섬광처럼 떠오릅디다. "기모"는 주민등록증 위에만 놔두고 "동랑"을 호로 삼으면 어떨까 싶심다. 어울리는지 생각 좀 해보이소! https://suhbeing.tistory.com/m/370 B : 원풍경을 잊고 살았네요. 고향의 원풍경을 가끔 그려보긴 했는데.....이런 깊은 생각도 해보진 못했고.....뿌리 없는 나무 없듯 원풍경 없는 인간 없을텐데....생각해보니 잊고 살아온 것 같아요. 가끔 생각 나기도 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채로 어쩌다 한두 번 머리속으로만 그려보며 살아왔네요.ㅎ 지한테 호까지 필요 있겠심니꺼....ㅋㅋ 그냥 기모라 불러주..

자루

자루 차지 않으면 스스론 못 서는 자루아득바득 다 채우려고도 않고차도 서 있을 만큼만 일으킨다가득 차면 딴 이를 채우게도 한다.채워도 채워도 만족 못하는 탐욕들속 빈 자루만도 못한 群像들넣었다가 종국엔 내놓는 자루차도 그만, 비어 있어도 그만머리도 없이 손발도 없이풀썩 주저앉은 妙有의 空2021. 6. 1. 16:226호선 전철 안에서雲靜 https://m1.daumcdn.net/cfile300/image/99B256355B98D9193690AC

신발

신발 하나는 외로워 둘이라네 하나로는 하나만도 못하지 값어치가 2할이나 될까나? 앞뒤가 아니다 위아래도 아니다 나란히 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멈춰 설 땐 한 줄이라네. 걸을 때나 설 때나 하나는 늘 둘임을 믿고 둘은 언제나 하나임을 안다 둘 일 때 비로소 하나가 된다. 2021. 5. 8. 15:56 고향에서 친구로부터 신 한 켤레를 선물 받고서 雲靜

"내 물고기야!" 다시 찾은 오어사(吾魚寺)

"내 물고기야!" 다시 찾은 오어사(吾魚寺) 처음 간 게 고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으니 벌써 44년 전의 일이다. 석양을 뒤로 한 억새풀이 고개를 떨구고 늦가을 호수가 물비늘로 반짝거릴 때였다. 그 때 같이 간 친구는 배용식이라는 같은 반 동기였다. 이 친구는 지금 오어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가까운 곳에서 사업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 그 후 드문드문 들렀던 포항 오천의 오어사를 이번에 다시 찾았다. 2018년 8월, 내가 10년 가까이 운영해오고 있는 환동해미래연구원이 구룡포에서 연 국제학술 세미나에 참석한 일본인 학자 일행들을 데리고 온 뒤 처음으로 찾았으니 약 3년 만이다. 雲梯山 맞은 편에 있는 오어사 경내로 들어서자 낯익은 법당과 전각들이 말 없이 나를 반긴다. 신록이 푸른 빛을 더해가고 ..

옛정취가 사라진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옛정취가 사라진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우리 일행은 안강 옥산서원을 보고 난 뒤 바로 동쪽 포항 방면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양동마을로 갔다. 승용차로 10분 남짓한 거리여서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우리 차가 지나는 도로 왼편으로 속칭 "창말"이라 불린 선친의 고향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조부모님이 생전에 사셨고, 아버지가 태어나셨고, 나도 어릴 적에 자주 다녀 많은 기억들이 묻혀 있는 곳, 달성 서씨 일가들이 모여 산 서씨 집성촌이다. 이제 곧 5분 후면 양동마을에 도착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2010년 7월)된 양동마을은 조선시대의 전통문화와 자연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데는 아마도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중심이 된 씨족..

선친의 젊은 날 낭만이 서린 옥산서원

선친의 젊은 날 낭만이 서린 옥산서원 우리는 경주 최부자 고택을 보고 김유신 장군묘에 잠시 들렀다가 곧 바로 안강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가 가는 길에 점심시간이 길게 걸터앉았다.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렷다! 특히 장인 장모님은 평소 제시간에 식사를 하시기 때문에 점심이 늦지 않게 하는 게 좋다. 해서, 이미 늦었긴 해도 옥산서원 들어가는 입구 마을에 도착해서 우리는 우선 점심을 먹고 서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오늘 우리가 가보려는 양동마을, 오어사와 마찬가지로 이곳 옥산서원에도 지금까지 너댓번 이상은 와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림을 그리러 와본 적도 있고, 그 뒤 추석 전 이곳에 있는 달성서씨 문중의 우리 선산에 벌초를 하러도 몇 번 왔었다. 또 이곳에 사시는..

복어

복어 평시엔 그저 오동통한 것이 위협을 느끼면 배를 풍선처럼 부풀리고 화나면 가시도 핏발 세우듯 곧추 세운다 무시무시한 독은 비수처럼 늘 품고 산다. 위험에 처하거나 홧기를 내뿜을 때 비로소 복어는 복어가 되지만 제 명을 생각하면 복어 아니란 소릴 듣더라도 터질 듯한 풍선 배는 싫다 싫어 가시도 뾰쪽 뾰쪽 치뻗고 싶지가 않아 그게 아녀 제 몸 지키려 용쓸 때 배가 뽀르록 뽈록 포동포동 ‘즈~엉말’ 귀엽잖아!? 본능인 걸 어떡해! 그게 복어인걸 2021. 5. 1. 19:19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草稿

숫돌

숫돌 헛기침 한 번 없다 같이 있어도 있는 둥 없는 둥 다만 단단하고 조금 길고 묵직할 뿐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살아라!” 천고의 부나방 으뜸 처세들 속에 연옥색 살로 무뎌진 날만 세운다 창호지도 베일만큼 예리하게 날이 서야만 서는 세상 세워도 세워도 무뎌지기만 할 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봐주지 않는다고 불평도 없다. 살점이 뜯겨나가도 신음 한 마디 없고 육신이 닳도록 갈려도 결코 헷갑지 않는 숫돌 인간들 보다 낫다 멀대 보다 훨씬 낫다. 2021. 4. 29. 07:47 북한산 淸勝齋에서 숫돌에 칼을 갈던 중 초고 雲靜

봄앓이

봄앓이 해마다 봄이면 봄앓이를 한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천지에 흩날리면 눈물도 후두둑 떨어진다 지는 꽃잎이 서럽게 아프듯 가슴이 따가워 펑펑 운다. 아름다운 이 별을 떠날 걸 생각하니 가는 세월 못내 아쉬워서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어서 알아주는 이 없는 세상이 야속해서 꽃이 지니 내가 지고 만다 미련 없는 無化에 미련이 남아 달구똥 같은 눈물을 떨군다. 더러운 세상이 날 찾지 않는 게 아니다 시드럭시드럭 꽃이 져버리듯이 순정한 내가 더러운 세상을 버리는 거다 꽃으로 폈다가 눈물로 버리는 것이다. 2021. 4. 21. 10:56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멀대, 동대산 쟁암당에서 가는 봄을 막아 서다!

멀대, 동대산 쟁암당에서 가는 봄을 막아 서다! 봄 기운이 막 몰려 올 때다. 겨울이 혼자 가지 않듯이 봄도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 해마다 같이 다니는 아지랑이, 꽃들, 풀과 나무들과 새들이 도반이다. 봄은 늘 그들과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하고 함께 온다. 나도 봄의 허리를 부여 잡고 산 그림자와 함께 바람처럼 찾아 왔다. 영덕 동대산 기슭 아래 쟁암리! 마을 명패에 爭岩里라 쓰여져 있으니 바위를 다투는 곳이다. 혹은 다투는 바위들이 있는 마을로도 해석이 된다. 이름의 유래가 없지 않을 듯 싶지만 그걸 톺아보는 건 풍류를 모르는 한미한 서생이나 할 짓이다. 지금은 일상을 잠시 던져두고 온전히 봄기운에 취하려고 왔지 않는가? 금강산 구경이 식후경이라면 동대산 구경은 酒情에 취하고, 인정에 취하고나서다. 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