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442

초여름밤의 형산강변

초여름밤의 형산강변 초여름밤 거슬러 올라오는 형산강물 포스코 화려한 불빛에 은비늘이 반짝인다. 강 건너 제철소 고로에서 내뿜는 흰 연기들 형형색색 조명등에 절경의 야경으로 보이지만 뭉글뭉글 솟아나는 저게 바로 소리 없이 생명을 죽이는 죽음의 수증기! 나 잘 살자고 모두를 병들게 하는 비정한 솜사탕 무관심한 시민들을 비웃듯 쏟아내는 뭉게구름 강바람에 악취 풀썩대는 밤하늘 끙끙대는 영일만 신음소리에 강변 들국화들도 힘겹게 도리질 치고 불야성에 부서지는 죽음의 여울 병든 물고기들의 흐느적거림에 가슴이 따갑다. 시원한 밤바람에 흠씬 들이마신 솜사탕 뭉게구름은 유리조각처럼 알알이 폐부에 박히고 은비늘들 비수처럼 점점이 허파에 꽂힌다 독성에 실성한 마파람이 뒷골까지 저미는데 강도 취하고 사람도 취하는 25시 형산강..

남녀차별

남녀차별 여자 공중화장실에 남자가 들어가면 비명이다 그곳을 청소하는 이가 남자라면? 여성들은 잘 나오지 않을 거다 아예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을 거다. 남자 공중화장실에 청소하는 이는 아줌마다 아줌마는 여자가 아니란 말인가? 남자들은 알고도 선뜻 들어가긴 하나 군소리 없이 잘 나올까? 세계 최고라는 '코리아'의 화장실 비명과 침묵의 공간 오늘도 고집스럽게 선남선녀를 차별한다. 2021. 6. 23. 08:49 도봉구 쌍문역 남자화장실에서 초고 6. 24. 06:05 자구 수정 雲靜

조문

조문 어제 못 간 조문 이른 새벽에 간다 오늘 출상인데 친구는 얼마나 가슴이 먹먹할까? 춘부장께서 건강하셨다는데 왠 변고인가! 얼굴은 뵌 적 없어도 생전에 인연이 없었을 리가 없다 인파 속에서 스쳐 지나갔거나 차안 옆자리에 앉았을 수도 있다 부채의식 없이 가는 문상 "한 세월 잘 사셨습니다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천국에 가시면 제 선친께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이젠 신이 되셨으니 제 이름도 아실 거잖아요." 가신 이는 여한이 없다 해도 자식은 한이 되듯 한껏 죄스럽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남은 이들끼리의 위안 잘 살라는 게 가시는 어른의 뜻일세 다음은 우리 차례라네 영안실 나서자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영들 출근길 사람들 걸음이 분주하다 아버지가 잘 드셨던 막걸리가 몹시도 땡기는 어지러운 아침 2021...

성공

성공 있잖아 고등학교 시절 싸움질도 적잖게 했고 정학도 서너 번이나 먹었으며, 잘리기 직전 학교를 옮긴 것도 사실이야 설령 "문제아"였다 해도 길어봤자 그때 3년 긴 인생길에서 한 점에 불과하다네 세월이 흘러 짧지만 기자 생활도 해보고, 유학 가서 박사학위도 따고, 공무원 고위직 연구원도 되고 보니 잘 됐다고 다시 봐주는 이도 있지만 여전히 그 시절 눈으로 보는 이도 있었어 애초부터 타고나기를 정도 많고, 배려심도 없지 않고, 정의롭게 사는 게 천성이어서 이미 그 시절 그 자체로 잘 돼 있었는 걸 남들이 말하는 "성공"은 성공이 아닐세 타고난 덕성 변치 않고 살아 온 게 성공이지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다네 문제가 있다면 누구에게 있겠나? 내겐 늘 하늘 올려다보는 일밖에 없어 그때나 지금이나 2021..

李君아 미안하다

李君아 미안하다 중학교도 알바로 힘들게 마쳤고 지금도 알바 아니면 졸업을 못 한단다 부모님이 계신다지만 각기 밤낮으로 일 다니느라 얼굴도 못 본단다 여기까지 들었을 땐 "그런 가정이 어디 한 두 집이냐"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 뭐 먹을 거 없어요?" 가끔씩 몰래 집사람 찾아와서 묻는단다 택배 상하차든 뭐든 닥치는 대로 새벽까지 일하니 학교에 가서도 허기가 지는 모양이다 한 번도 본 바 없는 이군* 얼굴이 어른거린다 편의점에서도 알바한 지 수년이 되다보니 물건 살지 안 살지 손님을 척 보면 안단다 이 말에 가슴이 미어진다. 부동산투기 한 번으로 수억씩 챙기는 세상 자식 같은 아이들 노동력 착취하는 어른들 내가 어른이란 게 오지게도 부끄럽구나 나도 이 세상의 무능한 기득권이 돼버렸네 이군아 정말 미안하다..

몽골의 하루(One day of Mongolia)

몽골의 하루(One day of Mongolia) 오늘 토요일 오전, 평소 거의 안 보던 TV를 보게 됐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프로에서 몽골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다양한 모습들이 나오는 걸 보니 문득 27년 전 내가 여행한 몽골의 이런저런 광경들이 떠올랐다. 세월이 너무 흘러 지금 당장 여행기를 쓰기에는 기억이 퇴색돼 적절하지 않고 해서 나중에 기억을 되살려 별도로 언급하기로 한다. 오늘 이 공간에선 당시 내가 특별히 찾아 가서 아주 재미있게 감상한, 울란바타르 시내에 위치한 '자나바자르 미술관'(Zanabazar Museum of Fine Art)의 소장품 가운데 인상 깊었던 그림 한 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이 작품은 몽골어로 '몽골링 내그 우두르'(Монголын нэг өдөр)라고 불리는데 "..

희비가 교차하는 환락의 성 라스베가스

희비가 교차하는 환락의 성 라스베가스 지난 해 10월, 미국 여행 중에 들른 라스베가스에서 환상의 쇼를 봤다. 나 혼자 보고 말기엔 너무 아깝다 싶어 그 때 촬영한 것을 공유한다. 당시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여서 도박장들이 축소 운영되고 공연도 많이 생략한 상태였지만 운 좋게도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의 안내 덕분에 감상하게 된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다. 백만불 짜리 쇼를 보게 해준 "내 친구 해용아 고맙심데이!"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미국 서부 건설 혹은 개척의 대표적 전설 중에 하나인 라스베가스는 1년 365일 매일 밤 인간의 욕망과 좌절, 희비가 쌍곡선을 그리면서 명멸하는 곳이다. 환락과 쾌락과 일확천금의 꿈을 쫓는 호걸들이 모여드는 곳! 이곳의 부와 번영과 휘황찬란함은 인간의 4가지 도덕적..

생각 좀 해보게나

생각 좀 해보게나 도와주고 대접 받는 식사, 당연한 걸로 받지 말게 일한 대가로 받는 급료, 당연한 걸로 여기지 말게 상속 받아 누리는 재산,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말게 생각 좀 해보게나 따뜻한 밥 한 끼에 비바람 피할 집에다 호주머니 채울 거 있는 게 왜 가능한지 말이야 늘 마시는 물과 공기,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말게 살아서 숨쉬고 있는 거,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말게 생각 좀 해보게나 먹고 마시고 두 발로 걷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어서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 아닌가? 눈물이 피잉 도는 2021. 6. 9. 16:08 합정역발 연신내행 전철 안에서 雲靜

자기 자신을 똑 바로 보고, 의미 없는 일에 연연치 말라!

자기 자신을 똑 바로 보고, 의미 없는 일에 연연치 말라! 자기 자신만큼 자신을 잘 아는 이도 없다. 자기가 한 언행이 옳은지 그른지, 또 어떤 목적을 갖고 그런 언행을 했는지 잘 안다. 그래서 잘못이 있거나 실수가 있으면 남들에게도 그대로 시인하고 스스로 반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솔직하고 용기 있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소수의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십중팔구는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적절치 않는 언행을 합리화 하면서 산다. 솔직하지도 못하고 용기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않고 자신을 바로 본다는 것은 말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옛 현인들도 비유를 들어 그걸 많이 말한 바 있다. 아래처럼! 見秋毫之末者 不能自見其睫 擧千鈞之重者 不能自擧其..

한시 사위의 붉은 마음

사위의 붉은 마음 모처럼 처가에 갔더니 겹홍매가 반겨주는구나 한 30년을 처가에 다녔어도 활짝 핀 건 처음 보네 팔순의 어르신 기력 쇠하여 붓 놓은 지 오래다 하지만 춘심은 옛날 옛적 그대로구나 고혹적인 홍매는 아름다운 이의 자태 같고 황매도 뒤질세라 노란 꽃봉오리 맺었네 서울은 이제 겨우 녹빛 기운이 감돌텐데 사위의 붉은 마음이 남천에 피었구나! 壻赤心 久尋岳家紅梅迎 卅年初次看滿開 八旬岳父輟筆永 但春心仍如舊常 紅梅恰似佳人樣 黃梅次於結黃朵 恐京今纔放綠意 壻赤心開在南天 2019. 3. 31. 12:11 雲靜於臺北捷運南港站 草稿 ※ 위 한글은 2019년 3월 말 내 친구 김대성이 경주 자신의 처가에 갔다가 뜰 안에 핀 홍매화와 나이 들어가시는 빙부님을 뵙고 느낀 소회를 적어 친구들 단톡방에 올린 글을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