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李君아 미안하다

雲靜, 仰天 2021. 6. 18. 10:10

李君아 미안하다
 
 
중학교도 알바로 힘들게 마쳤고 
지금도 알바 아니면 졸업을 못 한단다
부모님이 계신다지만 
각기 밤낮으로 일 다니느라 얼굴도 못 본단다
여기까지 들었을 땐
"그런 가정이 어디 한 두 집이냐"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 뭐 먹을 거 없어요?"
가끔씩 몰래 집사람 찾아와서 묻는단다
택배 상하차든 뭐든 닥치는 대로 새벽까지 일하니
학교에 가서도 허기가 지는 모양이다
한 번도 본 바 없는 이군* 얼굴이 어른거린다
편의점에서도 알바한 지 수년이 되다보니
물건 살지 안 살지 손님을 척 보면 안단다
이 말에 가슴이 미어진다.

부동산투기 한 번으로 수억씩 챙기는 세상
자식 같은 아이들 노동력 착취하는 어른들
내가 어른이란 게 오지게도 부끄럽구나
나도 이 세상의 무능한 기득권이 돼버렸네
이군아 정말 미안하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단지 마음 밖에 없구나.

2021. 6. 18. 01:3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이군은 집사람이 나가는 고등학교의 3학년 졸업반 제자란다. 살면서 가장 고통스런 일은 굶는 것이다. 나도 젊은 시절 한 때 굶어봐서 그 고통을 잘 안다. 집사람에게 이 얘길 듣고선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그 학교에 전화해서 이군이 무사히 졸업할 때까지는 배라도 굶지 않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익명으로 얼마 안 되지만 장학금을 보내주기로 약정했다. 그리고 바로 송금했다. 나도 벌어놓은 돈이 없어 크게 넉넉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덜 미안해질 거 같아서다. 더 많은 아이들을 도와주지 못해서 또 미안해진다.
 
선행은 감출 게 아니라 주변에 많이 많이 알려서 바이러스처럼 퍼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돈은 돌고 돈다. 의상대사가 말했듯이 그래서 "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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