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숫돌

雲靜, 仰天 2021. 4. 29. 08:27

숫돌

 
 
헛기침 한 번 없다
같이 있어도 있는 둥 없는 둥
다만 단단하고 조금 길고 묵직할 뿐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살아라!”
천고의 부나방 으뜸 처세들 속에
연옥색 살로 무뎌진 날만 세운다
창호지도 베일만큼 예리하게
 
날이 서야만 서는 세상
세워도 세워도 무뎌지기만 할 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봐주지 않는다고 불평도 없다.
 
살점이 뜯겨나가도 신음 한 마디 없고
육신이 닳도록 갈려도
결코 헷갑지 않는 숫돌
인간들 보다 낫다
멀대 보다 훨씬 낫다.
 
2021. 4. 29. 07:47
북한산 淸勝齋에서
숫돌에 칼을 갈던 중 초고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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