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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도에서 만난 “쟈가따라 오하루”(じゃがたらお春) : 그녀의 삶 그리고 서한의 위작 여부와 의미

히라도에서 만난 “쟈가따라 오하루”(じゃがたら お春) : 그녀의 삶 그리고 서한의 위작 여부와 의미일본 큐우슈우(九州) 서북쪽의 작은 항구 도시(인구 약 2만 7천 명) 히라도(平戶)에서 뜻밖에 슬픈 사연이 전해지는 한 소녀를 만났다. 나가사끼(長崎)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쟈가따라 오하루(じゃがたら お春, 1625?~1697)라는 여성이다. 그 옛날 16세기 일본 주재 네덜란드인들이 동인도회사의 일본 무역사무소로 운영한 '오란다상관'(オランダ商館)을 찾아가기 위해 인형처럼 예쁜 아기자기한 히라도 부두를 무심히 걷고 있는데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오란다”는 일본인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네덜란드를 칭하는 국명이다.짧은 겨울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 아름다운 황혼빛에 반사된 부둣가에 바다를 바라보..

임진왜란 시 왜군 출정의 시발점 나고야성터에서

임진왜란 시 왜군 출정의 시발점 나고야성터에서사가(佐賀) 출신 역사인물들 중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오꾸마 시게노부(大隅重信, 총리 2회 역임, 와세다대학 창설자)와 사가성터 등지를 보고 바로 큐우슈우(九州) 서북쪽의 까라쯔(唐津)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라쯔에서 1박 한 후 이튿날 새벽 일찍 첫 버스를 타고 임진왜란 시 왜군이 출정을 개시한 큐우슈우 최북단의 나고야성터(名護屋城跡)로 와서 1차로 기초적인 답사를 마쳤다. 얻은 게 적지 않다. 두 눈 버젓이 뜬 사람에게 코 베어 가듯이 바가지 씌운 까라쯔의 불한당들과 한 바탕 신경전을 벌이긴 했지만(추후 소개할 것임), “까라쯔”라는 지명의 어원과 역사의 면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불안정했지만 어쨌든 천하를 통일한 토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10주년에 일본참전의 득실 논한 논문 소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10주년에 일본참전의 득실을 논한 논문 소개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10주년이다. 1차 세계대전은 유럽이 주된 전장이었지만, 아시아에선 일본과 중국이 서로 적대국으로 참전해서 싸웠다. 일본의 참전은 일본 국내외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국외 면의 한 두 가지를 예로 들면, 일제는 중국 산동반도에 군대를 보내 중국정부를 압박해서 결국 당시 위앤스카이(袁世凱) 총통에게 치욕적인 "21개조약"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영내의 시베리아지역에까지 출병시켜 이른바 러시아혁명 간섭 전쟁까지 일으켰다. 이 간섭 전쟁으로 일본의 영토침입을 러시아 혁명정부의 사활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로 인식한 레닌이 일본군의 러시아 진격을 저지시킬 완충국으로서 극동공화국을 급조했으며, "세..

10월 26일 오늘의 역사

10월 26일 오늘의 역사10월 26일은 지난 역사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 날이다. 1597년 오늘,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52살)가 정유재란중 명량에서 13척의 배로 330여척의 왜군 수군을 크게 물리친 날이고,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오늘 동양평화의 파괴의 원구인 이또히로부미를 처단한 날이기도 하고, 1979년 오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시해 당한 날이기도 하다. https://suhbeing.tistory.com/m/535성웅 이순신 얘기는 다른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그에 관한 소회는 공이 남긴 우국충정의 근심어린 시 한편으로 대신한다.“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새벽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한산도 야..

일본 정계 동향 단신!

일본 정계 동향 단신!얼마 전 자민당 총재로 내각 총리가 됐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1957~) 수상이 어제 개표가 끝난 중의원 선거에서 연립 여당인 자민, 공명 양당이 과반수에 못 미쳐 패배했지만 야당인 국민당-민주당과의 “부분연합”을 명분으로 수상직에 유임하려는 의도를 내보였다. 과연 야당이 그의 제의를 받아들여 줘서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것이 가능해지면 평양과 도쿄에 각기 연락사무소를 두고 일북수교를 논의하자는 의사를 김정은에게 전달해놓은 그의 구상이 시도는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아시아판 나토를 제안했다가 미국에게 거절당한 이시바 주변에서 생성되고 있는 일본 정계의 흐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행정 및 경제 개혁에 관련 되는 법안 타결을 통해 오랜 침체국면을 타개함과 동시에 밖으로는..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6·25한국전쟁 인식 변화의 정치학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6·25한국전쟁 인식 변화의 정치학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이 달 10월 19일로서 중공군(중국은 국가 군대가 없고 중국공산당에 소속된 군이어서 ‘중국군’은 잘못된 용어임)이 한반도에 발을 디딘지 75년 되는 해다. 이날 제1진으로 25만 748명의 중공군 군대가 북한으로 극비리에 잠입해 들어왔다. 그런데 최초로 한국땅을 밟은 것은 그보다 3일 전인 10월 16일 밤 정찰 임무를 띠고 먼저 잠입한 ‘선발대’ 제12사단 제370연대 병력이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중공군의 한반도 파병이 개시된 정확한 날짜는 1950년 10월 16일이었다. 참전 후 중공군은 군사적, 정치적 남북통일을 목전에 둔 한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을 저지함으로써 통일을 가로 막았다. 1953년 7월 휴전으로..

개악된 6.25의 노래 가사, 원상회복 필요!

개악된 6.25의 노래 가사, 원상회복 필요! 김일성이 도발한 6.25한국전쟁은 남북한 사이를 철천지 원수로 만들었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로 인한 상처와 인식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없고 남북한 간 평화가 지속되어도 그런 인식이 삭히기 어려운데 북한이 지금까지 수많은 도발을 일으켜오고 있으니 치유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대북 인식에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지금 40대 이상의 기성 세대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6.25전쟁의 노래를 통해서 이런 인식을 지속시켜왔다. 그런데 원래 우리가 어릴 때 배우고 자주 불러온 6.25전쟁의 노래 가사가 전혀 뚱딴지 같이 바뀌어져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도발은 변함 없는데 북한을 바라보는 6.25의 노래 가사 내용은 북한의 남..

TV조선 출연

TV조선 출연 지난 9월 29일 밤에 방영된 한국전쟁 다큐멘터리에 인터뷰한 바 있다. 아래에 소개한다. 우리가 몰랐던, 진짜 6.25 4회 - 국제적 내전 6.25 전쟁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긴장관계 TV CHOSUN 240929 방송 - https://naver.me/Fk7ttO5A 우리가 몰랐던, 진짜 6.25 4회 - 국제적 내전 6.25 전쟁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긴장관계 [우리가 몰랐던, 진짜 6.25 4회]중공군의 개입 이후부터는 미·중 전쟁이라고 볼 수 있었던 6.25 전쟁link.naver.com 2024. 10. 15. 01:14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대만의 한국전쟁 참전 활동” 졸고, 대만 언론매체에 게재

“대만의 한국전쟁 참전 활동” 졸고, 대만 언론매체에 게재 지난 8월, 대만 국립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장개석 연구그룹의 초대를 받아서 대만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내용이 대만의 인터넷 유력 매체에 실렸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첨부해 놓았다. https://www.storm.mg/article/5231790

경향신문 사우회 제16회 문화탐방(경주) 동행

경향신문 사우회 제16회 문화탐방(경주) 동행 경향신문 사우회(회장 황우연, 사무국장 김홍운)에서 주관한 제16차 문화탐방 행사인 경주여행에 참여했다. 경향사우회의 문화탐방은 이번이 열 여섯 번째였지만, 나는 몇 년 전 춘천 문화탐방을 간 이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경주는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거대한 불교 유적지이자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실제로 경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 도시다. 게다가 내겐 나의 고향 포항과 자동차 거리로 30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웃 마을 같은 곳으로 소싯적 때부터 자주갔던, 고향이나 진배 없는 곳이어서 반갑기도 했다. 함께 떠난 도반은 사우회원과 가족을 포함해서 28명이었다. 잘 아는 선배들도 계셨고 동기도 있었다. 석가모니가 얘기한 바 있지만 길을 떠날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