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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원칙과 우리의 무원칙

중국의 원칙과 우리의 무원칙 서상문/ 독도찾기운동본부 홍보국장 뒤늦게 나선 한국 정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중국 정부의 체계적 대응 자세 배워야 » 사진/일본 도쿄시내에서 ‘피스보트’회원과 시민 150여명이 우익 교과서의 검정통과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교토연합) 일본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 모임)이 마련해, 제출한 2002년도 일본 중학교용 역사교과서 신청본 8종이 우려대로 지난 4월3일 문부과학성의 최종 검정을 통과했다. 이대로라면 이 교과서는 오는 8월께 일선 학교에서 채택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주변국의 항의를 의식하여 130여 군데 이상 수정을 지시했다지만, ‘새 모임’쪽의 애초 취지가 그대로 반영되어, 아시아를 유린한 침략전쟁을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정당화, 미..

일 ‘역사왜곡’문제 해법

일 ‘역사왜곡’ 문제 해법 서상문 (사단법인 독도찾기운동본부 홍보국장) 구조물의 형상이 그렇듯이 부분적인 수정을 아무리 가한다 해도 과거에 대한 역사상은 기초 설계에 따라 결정된다. 일본 정부는 극우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신청한 문제의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켰다. 아시아 민중을 유린한 침략전쟁을 정당화하여 아시아 민족의 해방전쟁으로 미화한 황국사관의 얼개를 고스란히 존치시킨 것이다. 피해자의 사려 깊은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재 정부는 정부차원의 재수정 요구,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일정 재검토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한껏 늑장을 부리다가 이제 와서 일본 정부더러 근본적 방지책을 강구하라고 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냄비뚜껑’식 임기응변일 뿐..

日 교과서 문제 치밀한 대응을

日 교과서 문제 치밀한 대응을 서상문(독도찾기운동본부 홍보국장) 일본 정부는 극우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제출한 교과서 등 2002학년도 일본 중학교용 역사교과서 8종의 최종 검정을 통과시켜 우리를 격분케 하고 과거 중국 정부에 한 약속도 저버렸다. 1972년 중일 수교 때 중국 지도부는 새로운 중일 관계의 정립을 위해 일본의 과거를 용서하고, 전쟁배상 청구권을 포기해 일본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중국 정부는 그 대신 일본이 ‘침략전쟁으로 중국 인민에게 끼친 중대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깊은 반성의 표시’를 하도록 요구해 이런 내용을 명문화 했다. 정치적 사정과 맥락은 다르나 대만 국민정부의 장제스(蔣介石)도 이보다 20년 전에 일본과의 평화조약 체결 시 ‘이..

독도 사수 ‘뒷짐만 지나’

독도 사수 “뒷짐만 지나” 서상문(독도찾기운동본부 홍보국장) 신의(信義)란 벗이 벗임을 표증하는 리트머스시험지다. 신의에 금이 가는 행위가 빈번해지고, 그것이 의도적일 때 벗은 벗이 아니다. 누가 친구의 호주머니에 든 물건을 자기 것이라고 우길 경우, 처음은 자기 아버지의 주장만 듣고 하는 농담이려거니 하고 흘려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이 자자손손 내려온 가보인데다 친구가 아버지의 어거지에 동조하는 수준을 넘어 부자 간 공무하면서 그 물건을 뺏어보려는 흑심을 노골화 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지난 달 27일 일본 시마네현 지사가 행한 독도관련 망발은 곧 친구의 물건을 강탈하려는 노골적 의사표시의 경우에 해당한다. 시마네현은 경상북도의 자매 현이다. 그 현의 민선지사인 스미타 노부요시(澄田信義)가 일..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서상문(독도찾기운동본부 홍보국장) 패전 후, 일본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기회를 미필적 고의로 방기하고, 국가권력을 제국 ‘천황’에 충성했던 군벌, 정치가, 관료들로 채웠다. 그들이 꾸었던 좌절된 만세일계의 황국 꿈은 반세기도 더 지난 이 ‘문명의 시대’에 또다시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일본 극우세력들이 연출하고 있는 과거사 왜곡은 때 되면 재발하는 일본역사 특유의 계기적 대외팽창의 한 주기로 읽힌다. 새로운 대외팽창에 걸림돌이 될 과거사의 흔적을 지우고, 그것을 정당화할 터잡이 속셈이 그 바닥에 흐르고 있다. ‘한일 합방’을 한국의 “자기관리능력 결핍의 결과”였다고 한다든지, “러시아가 한반도를 장악하면 일본이 위험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러시아에 맞서 전쟁을 할 수밖에 ..

독도 찾기, 이제 민중이 일어설 때

독도찾기, 이제 민중이 일어설 때 서상문(독도찾기운동본부 홍보국장) 모리 요시로우(森 喜郞) 총리의 대독도정책을 강경일변도로 나아가도록 채찍질하거나,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일본국내의 중의원, 참의원, 그리고 시마네현 의회의 의원들과 극우단체들이다. 1993년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 이들세 기관의원들이 각기 소속의회에서 독도영유권주장 및 일본정부의 독도탈취책의 미흡함을 지적하거나, 혹은 그 대책을 논의한 횟수는 무려 150건이 넘는데, 그 주된 논점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현재 한국의 독도영유를 '불범점거'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해마다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외교적 항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주장하는 '실효적 점유'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둘째, '미군에 원조를 요구해' '불법점거상..

인천상륙작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毛澤東, 6․25전쟁에 중국해군까지 참전시켰다

인천상륙작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毛澤東, 6․25전쟁에 중국해군까지 참전시켰다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해군발전자문위원) 중국해군이 6․25전쟁에 참전한 사실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극소수의 중국해군 함정과 기뢰 전문요원들이 극비리에 한반도에 들어와 기뢰부설 작전을 수행한 바 있다. 목적은 유엔군의 후방상륙작전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 준비의 일환이었고, 그 배경은 유엔군의 동향에 대한 毛澤東 등 중국지도부의 상황오판이었다. 1951년 6월 중순부터 북한 내 중국군의 배후에 유엔군이 상륙할 것을 우려하기 시작한 중국지도부는 이듬해 하반기에 들어와 그 의구심이 더욱 깊어졌다. 근거는 세 가지였는데, 모두 중국지도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떨치기 어려웠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