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역사왜곡’ 문제 해법
서상문 (사단법인 독도찾기운동본부 홍보국장)
구조물의 형상이 그렇듯이 부분적인 수정을 아무리 가한다 해도 과거에 대한 역사상은 기초 설계에 따라 결정된다. 일본 정부는 극우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신청한 문제의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켰다. 아시아 민중을 유린한 침략전쟁을 정당화하여 아시아 민족의 해방전쟁으로 미화한 황국사관의 얼개를 고스란히 존치시킨 것이다.
피해자의 사려 깊은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재 정부는 정부차원의 재수정 요구,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일정 재검토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한껏 늑장을 부리다가 이제 와서 일본 정부더러 근본적 방지책을 강구하라고 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냄비뚜껑’식 임기응변일 뿐이다.
지난 1980년대에 이미 두 차례나 겪은 바 있듯이,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일시적으로 일어난 우발적 사태가 아니다,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오른쪽으로 선회하는 상황에서 발아한 대외팽창적 국수주의의 발로다. 그 뿌리는 그들 국수주의자들의 핏속에 흐르는 못다 피운 대륙 ‘진출’의 꿈, 그리고 전후 일본의 전전 정치 권력구조를 그대로 온존시킨 미국의 대일정책이다. 전자가 불행의 씨앗이라면, 후자는 그 싹을 틔우는 외부적 조건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역사성을 지닌 하나의 이념이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단기적인 대책들로는 실효성이 의문시될뿐더러, 정부의 희망사항인 “역사왜곡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
해법은 정부차원의 중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들의 구비가 전제된 상태에서 단기처방으로 우선 일본을 움직이는 집권당을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핵심 요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운 ‘국민의 정부’답게 국민들의 정서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정권 유지라는 소아적 동기를 넘어서야 하고, 또한 대일 경제논리만 생각해선 안 된다. 소수 친일잔당 보수세력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은 민족적 자존심을 먹고 사는 게 아닌가! 자존심이 무너지면 경제도 무너지고, 일본과의 ‘21세기 새로운 파트너십’ 구상도 빛 좋은 개살구다.
둘째, 여야 정치인들은 이번만이라도 초당적으로 힘을 합쳐주기 바란다. 정치인들은 세계정세의 변화가 동아시아를 축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음을 혜찰해야 한다. 일본역사왜곡 사태는 중미 패권충돌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중국과 아시아의 자웅가름을 의식한 일본 극우집단의 초조함에서 비롯된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따라서 국회 안의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은 1982년 때처럼 즉각 ‘일본역사교과서 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본 쪽 의원들과 왜곡 부분에 대한 축조심의에 착수할 수 있도록 일본 집권당과 소통하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의 각 지방 교육위원회는 집권당 소속의 이른바 ‘문교족’의원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의회 내 구미=선진, 한국=후진이라는 한국무시형 의원들에게 실상을 바로 이해시키지 못하면 한일 관계는 마찰의 연속으로 늘 겉돌 수밖에 없다.
셋째, 정부는 역사왜곡 문제에 대처할 전담기구를 설립하고, 대일 민간연대 활동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 활동에는 두 나라 학자들의 과거사에 대한 공동연구, 그리고 침략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중국 정부가 시도한 바 있는 대규모 민간단체의 방한 초청도 포함된다.
넷째, 민간이든, 정부차원이든 중국과의 공동연대는 중국정부가 처한 외교적 딜레마로 인해 현시점에선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북한과의 공동보조를 긴밀히 취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공조에 응할 경우, 대북 및 한반도 정세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일본이 역사왜곡 문제를 이성적으로 풀지 않겠다면 대북관계에서 일본을 배제시키겠다고 역공을 취해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국민, 언론, 관련 단체 모두는 용두사미로 끝낼 게 아니라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일관성 있는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 국민의 ‘냄비기질’을 꿰뚫어보고 있다.
위 칼럼은『한겨레신문』, 2001년 4월 1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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