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사상 철학 종교 23

석가모니 탄생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석가모니 탄생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부처님 오신 날, 석가모니 탄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면서 이참에 불교공부를 조금 해보자! 음력으로 4월 초팔일인 오늘은 5월 22일로서 부처님 오신 날인데 마침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의 날과 겹치네요. 석가모니는 생명중시, 인간의 죽음문제 해결, 인간사회의 혁명적 변혁, 진리에 대한 인식방식의 전환, 삶의 태도의 획기적 변화를 강조한 점에서 오늘 두 기념일은 의미가 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물다양성의 날’은 유엔에서 전지구적 차원에서 날로 악화되는 환경위협과 생태계위협으로부터 생물의 다양성을 보전하고, 생물자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일 목적으로 제정한 것입니다. 생물의 다양성은 말 그대로 생물체들 간의 다양성과 변이, 그리고 생물체들이..

大慈大悲와 同體大悲

大慈大悲와 同體大悲 大慈大悲라는 말은 불교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다. 통상 부처님을 상징하는 말로서 부처의 가없는 자비를 형용할 때 쓰인다. 그런데 같은 불교 용어 중에 同體大悲라는 말도 있다. 전자에는 모든 중생에 대한 자애로움이 슬플 정도로 광대무변하다는 뜻으로서 무차별적 자애와 큰 사랑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한다면, 후자는 어떤 의미일까? 뒤의 大悲는 다르지 않으니 異說이 없고, 다른 것은 大慈와 同體라는 앞의 두 글자다. 同體! 같은 몸이라는 뜻이 아닌가? 맞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 즉 중생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자기 몸이 겪는 苦와 悲로 받아들일 정도로 아파하고 슬퍼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현실에서도 드물지만 간혹 쌍둥이 형제 중 한 사람이 아프면 나머지 다른 한 ..

하느님은 한국 교회의 궤도이탈에 대해 왜 침묵하는가?

군소리! 중언부언! 횡설수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대선을 앞둔 시점이어서 바깥엔 서로를 비방하는 소리가 춤을 추고 있다. 크고 작은 사고들이 줄을 이으니 세상이 혼탁하기 짝이 없다는 느낌이다. 세상은 왜 하루도 혼탁하지 않은 날이 없을까? 홀로 빗소리를 들으며 사무실 소파에 누워 있으니 갑자기 처량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평소 가지고 있던 질문들이 떠오른다.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오늘 우리의 현실이 이토록 혼란스러울까? 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게 연중 자살이 끊이지 않는 한국사회의 혼란, 갈등, 당쟁과 정쟁, 상식과 합리성 상실 등의 원인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평소 하던 습관대로 핸드폰에다 기독교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는 할 ..

부처님 오신 날, 우리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한다!

부처님 오신 날, 우리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한다! 우리는 언필칭 한민족의 발자취를 반만년 역사라고 하면서 역사의 장구함을 자랑하거나 긍지로 삼습니다. 신라 천년, 고려조 500년, 조선조 600년 동안 지속된 왕조가 만들어낸 문화민족의 후예임이 자랑스럽다고 얘기합니다. 맞습니다. 되돌아보면 우리역사에는 분명 자랑할 만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우리의 삶을 조건지우고 있는 역사 動因 가운데 하나인 기득권층의 역사적 책임 방기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압도적인 역사동인이 돼 있어 모든 악과 비정의의 근원임과 동시에 역으로 역사의 순류를 가로 막는 비정상적인 역사동인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천착하지 않으면 새로운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역사, 역사적 책임을 ..

친구와의 대화 :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실재하는 것인가?

친구와의 대화 :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실재하는 것인가? 좋은 아침! 어제 보낸 “시 ‘가장 외로운 날엔’을 읽고”를 본 한 친구가 깨달음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듯한 답과 함께 깨달음에 관한 질의를 보내와서 그에 대해 답을 써 보낸 대화내용을 보냅니다. 불교얘기는 쉽게 얘기할 기회가 없어 이참에 공유하면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지인들에게 어제 보냈다는 “시 ‘가장 외로운 날엔’을 읽고”라는 글은 본 블로그에 올려놨습니다. 아래 글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단락은 친구가 雲靜에게 보낸 질문입니다. 그 아래는 그에 대한 雲靜의 답변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니 굳이 사람을 만나야 답을 찾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어쩜 편안하고 깃털처럼 가볍..

부처님 오신 날 현실과 미래를 생각해본다

부처님 오신 날 현실과 미래를 생각해본다 부처님 오신 날, 부처의 가르침을 되돌아보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우리의 역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언필칭 한민족의 발자취를 반만년 역사라고 한다. 그리고 역사의 장구함을 자랑하거나 긍지로 삼는다. 신라 천년, 고려조 500년, 조선조 600년 동안 지속된 왕조가 만들어낸 문화민족의 후예임이 자랑스럽다고 얘기한다. 맞다. 되돌아보면 우리역사에는 분명 자랑할만한 것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우리의 삶을 조건지우고 있는 역사 動因 가운데 하나인 기득권층의 역사적 책임 방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이 압도적인 역사동인이 돼 있어 모든 악과 비정의의 근원임과 동시에 역으로 역사의 순류를 가로 막는 비정상적인 역사동인으로 작용하고 있..

윤회(輪廻)와 해탈(解脫)

윤회(輪廻)와 해탈(解脫)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恒河沙(불교경전에서 부처님께서 설법시 엄청나게 많음을 비유하실 때 자주 인용한 단어로서 인도 갠지스 강의 모래를 가리킴)만큼이나 많은 불교용어들 중에 비불교도를 포함한 일반인들에게 평소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용어를 들라면 단연 輪廻와 解脫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용어의 개념은 각기 어떤 의미를 지녔고, 불교사상 혹은 종교로서의 불교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또 양자의 관계는 어떠할까? 먼저 윤회는 싼스끄리뜨의 삼사라(saṃsāra)를 한자로 번역한 말로서 轉生, 再生, 流轉이라는 뜻이다. saṃsāra의 출전은 기원전 600년경 인도 바라문교의 경전인 우빠니샤드(Upaniṣhad) 문헌이라고 한다. 바라문교도들 사이에 사용되던 이 말이 ..

찰나(刹那)와 겁(劫)

찰나(刹那)와 겁(劫)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일상 언어생활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 중에는 불교용어가 상당히 많다. 예컨대 ‘유야무야’(有耶無耶), ‘야단법석’(野檀法席), '이판사판'(理判事判), 현관, 지옥, 극락, 찰나, 겁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외에도 수십 가지가 더 있다. 그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는 ‘찰나’(刹那)와 ‘겁’(劫)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불교철학과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찰나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감지하지 못할 만큼 극도로 짧은 시간이라면, 겁은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인간이 경험할 수 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무한대적 시간 개념이다. 먼저 찰나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자. 찰나는 인도 산..

종교보다 사람이 먼저다!

종교보다 사람이 먼저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인간인지 찬찬히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게을리 하면서도 자기가 믿는 종교와 교주를 절대시하면서 모든 걸 갖다 바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납니다. 자기를 낳아 길러준 부모님에게 용돈 드리는 것에는 인색하면서도 교회엔 십일조랍시고 뭉칫돈을 갖다 바치지를 않나, 사용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사찰에 눈먼 시줏돈을 아무런 의식 없이 갖다 안깁니다. 정작 예수와 석가는 헐벗고 가난한 이웃을 도우라고 가르쳤는데도 아직도 결식아동들이 있는가 하면, 벌이가 시원찮아 자살하는 사람들이 OECD국가들 중 최고이며, 교회의 뾰쪽탑과 사찰의 법당은 높고 커져만 갑니다. 이뿐만 아니라 부모님 생신날 상 하나 차리는 걸 귀찮아하면서도 종교행사엔 안방 드나들 듯이 합니다. 또한 명절날 제..

앎과 진리와 中庸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앎과 진리와 中庸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인간사회에서 우리가 날마다 접하거나 만들어내는 정보, 지식과 지혜는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이 공존합니다. 인간세상이 아닌 자연계에선 절대적인 진리만 존재합니다. 인간세상에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세상도 자연의 일부이며, 궁극적으론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서 자연계의 진리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상대적인 정보, 지식과 지혜는 모두 기준이 전제된 것들입니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도, 수학의 공리(정리, theoram)도 모두 기준을 정해놓고 논리를 전개한 인간세상의 약속일뿐입니다. 즉 누구나 알고 있는 1+1=2는 수학, 즉 인간사회에서는 참이고 진리이지만 자연계의 진리는 아닌 것이죠. 자연계에서는 1+1=2일 수도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