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공지 및 정보 마당 170

멀대, 뜻밖에 시인이 되다!

멀대, 뜻밖에 시인이 되다! 평소 착상이 될 때 마다 조금씩 기록해온 졸시들이 어느덧 수십 편이 됐다. 한시와 일본 하이쿠까지 포함하면 100여수가 훨씬 넘는다. 그 가운데 지난 연초에 응모한 한글시 5편(눈물, 바람, 촛불, 단풍, 봄날-모두 나의 이 블로그에 등재돼 있음)이 월간 『純粹文學』 시 부문 신인상 심사를 통과해 『純粹文學』 2021년 3월호(통권 328호)에 등재되고, 이어서 지난 3월 6일 신인상을 수상함에 따라 시인으로 등단하게 됐다. 시재가 둔한 내가 시인이 된 건 전적으로 졸문들을 심사하고 의미 있게 평가해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 덕분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직접 세심한 심사평을 써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시인이자 소설가이신 박경석 예비역 장군님은 나의 삶의 역정에서 잊을 수 없는..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동산 과다보유, 빙산의 일각!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동산 과다보유, 빙산의 일각! 정부 여당이 이제서야 충격을 받은 시늉을 하면서 국회의원, 지자체단체장, 고위 공무원을 대상으로 부동산 보유현황을 신고하게 하거나 조사를 했다. 여기에서 드러난 바로는 조사 전에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듯이 그들이 놀랄 정도로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빠져 나간 자들도 있을 것을 감안하면 최소한 이 보다는 더 많을 것이다. 여기에다 재벌 기업 오너와 중소기업 오너들, 언론사 간부들, 학계의 교수들, 의사들, 판검사와 변호사들, 종교단체, 고위 군인, 개인 사업가와 개인 다주택자, 그리고 친일파 후손들 등등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합하면 실로 지금 드러난 것 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이다. 가히 누구 할 것 없이 한 마디로 부동산..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무산 내막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무산 내막 10여년 전, 이명박 정권 때 백선엽 장군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시도하다가 무산된 바 있다. 이른바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세 가지가 핵심사항이었다. 1.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는 것, 2. 백선엽의 개인 전기를 공간사로 출간하는 것, 3. 백선엽상 제정이었다. 그런데 백선엽의 과거 전력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라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정상적인 게 없고 그래서 만들 명분도 없다는 점을 바로 알 수 있다. 보수체제의 이념적 공고화를 노린 이명박 정권과 사후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반전될 것을 우려한 백선엽 자신의 노파심 및 명예욕이 맞아떨어져서 추진된 것으로 판단된다. 명예원수 만들기는 백선엽..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인고의 세월 절치부심 16년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인고의 세월 절치부심 16년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소령 계급으로 야전 보병대대장에 보임돼 1963년 10월 1일 국군의 날 보.전.포.공 전투시범도 수행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해 훈장까지 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보.전.포.공 시범이란 전차, 포병, 공군 전폭기의 지원하에 보병의 공격을 막는 입체작전의 시범을 가리킨다. 그러나 박 장군은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하는 심사 때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정치군인으로서 하나회의 모사를 받은 당시 박정희의 총애를 받은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소장의 진급자 바꿔치기 그리고 그 뒤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의 견제를 받아 진급심사에서 번번히 탈락됐다. 박경석 장군은 우여곡절 끝에 대령과 준장으로 진급하긴 했지만 더 이상 진급은 없었다. 전두환..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전무후무한 DMZ 상주 장군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전무후무한 DMZ 상주 장군 1975년 3월 24일, 남한사회가 또 한 번 충격에 빠진 날이었다. 철원의 DMZ 아래 지점에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인 제2땅굴이 발견됐다는 보도를 본 국민들이 크게 동요했다. 철원의 제2땅굴은 오늘날까지 북한이 판 총 4개의 땅굴들(제1땅굴경기도 연천, 제3땅굴 경기도 파주, 제4땅굴 강원도 양구) 중 두번째로 발견된 땅굴이다. 이 땅굴은 깊이가 가장 깊은 곳은 160m나 되며, 길이는 철원의 전방 DMZ를 중심으로 북쪽 2.4km 지점에서 갱도를 파기 시작한 북한은 남쪽으로 1.1km나 파내려온 것으로서 총 3.5km나 된다. 박경석 장군은 당시 준장으로서 북한군이 철원의 이 제2땅굴이 한국군에게 발각되자 지하에서 황급히 북쪽으로 도주..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장군이면서도 장군의 혜택을 줄이라고 주장하는 군인됨의 사표와 양심의 귀감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장군이면서도 장군의 혜택을 줄이라고 주장하는 군인됨의 사표와 양심의 귀감 얼마 전부터 우연한 계기로 박경석 예비역 장군의 얘기를 소개해오고 있지만 한 번도 올리는 글을 독자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유한 적은 없다. 읽고 안 읽고는 개인의 자유니까. 그러나 이번 박경석 장군의 글은 꼭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인간 박경석이 걸어온 군인의 길, 사상의 일부, 과거 군실태의 한 면도 동시에 알 수 있게 해주고, 이런 내용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의 주목을 끈 것은 장군이면서도 장군에게 주어진 혜택이 과하다면서 그것을 반으로 줄일 것을 주장해오고 있다는 대목이다. 이 점은 군인의 사표, 국가 공무원은 어떠해야 하는지 청렴의 귀감이 될 만한하다 싶..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전두환의 12.12 및 5.18관련 2차 무공훈장 수여 내막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전두환의 12.12 및 5.18관련 2차 무공훈장 수여 내막 5·18과 관련한 정부의 훈포장과 표창은 2006년과 2018년 모두 취소됐다. 하지만 군사반란을 일으켜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을 최소한 반세기는 지체시킨 수괴 전두환씨가 12.12쿠데타와 5.18학살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에게 직접 수여한 훈장은 그동안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치탈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총 들고 나와 무력으로 국가권력을 찬탈하고선 온갖 부귀영달을 누려온, 지금도 살아서 영화를 누리고 있는 국가반란자들에게는 의법 처리해 모두 사형(이 점에서 김영삼이 대통령 시절 전두환을 사면해준 것은 잘못임)이나 혹은 징역형을 살게 하고 그들이 누린 모든 시혜는 모두 환수나 소급해서 국고에 반환하도록 조치해도 시원치 ..

중국어 주요 간체자 소개

중국어 주요 간체자 소개 1964년 중국은 모택동이 단행한 이른바 문자개혁의 일환으로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새로운 자형이 만들어져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기존 한자는 더욱 간략화됐다. 문자개혁을 통해 만들어진 간체자는 대략 2000여 자 정도 된다. 문자개혁에 따라 기존 한자의 정자체는 간체자 보다 상대적으로 번거롭다는 의미에서 繁體字로 명명됐고, 새로운 간체자는 그로부터 중국 대륙의 글자로 정착했다. 반면, 정자체 즉 번체자는 대만과 홍콩, 싱가폴에서 쓰이고 있다. 간자체가 만들어진 배경 및 목적, 그리고 制字 원리, 문제점, 번체자와 비교되는 장단점 등에 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소개할 것이다. 제주도 여행 중 이곳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위해 안내표지나 안내 책자..

미얀마, 군부 쿠데타 또 발생!

미얀마, 군부 쿠데타 또 발생! 미얀마에서 또 다시 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외신이 보도됐다. 자세한 소식은 관련 보도를 접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외신들은 이 사태를 군부 주도의 쿠데타로 보도하고 있다. 는 "2015년 총선 이후 문민정부에 권력을 이양해 왔다는 군부의 약속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권력을 좌우할 힘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찌가 이끄는 NLD는 지난해 11월 8일 총선에서 의회 476석 중 396석을 차지하면서 5년 전의 총선 때보다 더욱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는데, 군부의 위성정당은 3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지만 이번 사태로 군부가 폭력에 기초한 실권을 유지해온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미얀마군 TV는 1일(현지시간) "지난..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박정희 대통령의 將軍劍

박경석 장군의 못 다한 이야기 : 박정희 대통령의 將軍劍 30대 후반 무렵인 1995~66년 경, 내가 대만에서 적지 않은 풍상을 겪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가끔 집안 일로 귀국하면 경주 인근 안강에 계시던 조부를 찾아뵈었다. 어느 날, 그날도 조부님을 찾아갔더니 조부께서 손자인 나를 당신 앞에 앉으라고 하신 후 바로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게 전화를 걸더니 30분 이상 길게 통화를 하셨다. “나를 쏙 빼닮은 손자 녀석이 하나 있는데, 꼭 雲庭(김종필 전 총리의 호)에게 인사를 시키고 싶으니 가면 많이 거둬주라”는 취지의 말과 함께 “이 놈이 돈 없이 어렵게 공부한다는데 서울 올라가는 대로 바로 찾아가게 하겠다”고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1912년생의 조부님은 당시 80대 중반이셨지만 쩌렁쩌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