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시냇가에서 오리들과의 한 때
모든 새끼는 다 귀엽고 앙증맞다. 냇가에서 유영하거나 자맥질 하듯이 대가리(짐승의 머리를 말할 때 쓰는 단어인데 사람에게 쓰면 결례가 되는 말임)와 코를 물속에 처박으며 먹이를 찾는 오리 새끼들을 보라. 꼬물꼬물, 엉금엉금, 뒤뚱뒤뚱, 정말 깜찍하지 않는가?
어미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새끼 오리들이 하나 같이 부리를 물속에 처박고 먹이를 찾는 것은 良知와 良能의 산 예다. 그저께 얘기한 왕양명의 양지와 양능의 예를 여기서 보게 된다.
새끼들을 풀어놓고 바라보고 있는 어미 오리는 뿌듯해 할 것이다. 저렇게 무심히 있는 듯해도 마음은 행여나 새끼들 중에 무리에서 이탈하는 애가 있거나 행여 다치거나 돌 뿌리에 걸리기라도 할까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거다. 모름지기 부모 마음이 원래 그러하니 오리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것은 역시 암컷이 수컷 보다 더 역할이 많은 거 같다. 인간도, 동물도 마찬가지다. 암컷이 새끼들을 돌보고 있는 사이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수놈 두 마리가 낮잠을 즐기고 있다. 저 암컷이 자기 짝인지, 새끼들은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는 물어봐도 답이 없으니 알 길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다 그렇듯이 수놈은 암컷 보다 몸이 더 화려하다. 이 수컷 오리들도 몸엔 초록색, 파란 색과 보랏빛 털이 빛나고 있다. 명품 머플러로 치장한 듯하다. 황갈색 털 뿐인 암컷에 없는, 지들이 한 게 뭐 있다고 부리는 호사일까? 하기야 암컷을 유혹해서 짝짓기를 하는 것도 큰일을 하는 것이긴 하다만.
수컷들은 암컷과 새끼들이 뭘 하든 아랑곳없이 가끔 공중을 날아오르기도 하고 꽁지를 까불면서 유영도 한다. 양육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듯이 온갖 여유를 부리면서 멋을 다 내고 있는 것이다.
양육할 아이가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저들 수컷 오리처럼 멋도 못 부리겠고, 생각만큼 여유도 없다. 다 전생 업보인 모양이다. 그래도 시멘트 덩어리의 도회지에서 이런 생명체들을 발밑에서 볼 수 있다니 그게 어디 보통 복이고 예사 여유인가!
2020. 5. 10. 15:25
구파발 은평뉴타운 생태 냇가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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