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는 왜 만들까? 현명한 대처는?
위에 올린 동영상은 교회 목회자로서 누구 보다 성실히 사는 내 친구가 오늘 아침에 나에게 보내온 것이다. “이게 진짜라면 정말 이 나라는 큰일이다”라는 말을 덧붙여서 왔다. 즉 그 친구는 이 내용을 반신반의하면서(아니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그럴 것이라고 이미 믿는 상태에서 “이거 봐라 이런 것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잠재의식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 진위를 물어 본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이 친구의 간접적인 물음에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굿모닝! 친구야~ 이런 가짜뉴스에 넘어가지 마라. 나는 작년에 이것이 게재된 일본 잡지의 원본을 봤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엉성하고 사실도 맞지 않고 조작됐다는 느낌을 받았다네. 그에 대해서 일일이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아까워 글을 다 못 쓰겠다. 내가 바쁘긴 해도 이런 글에 속아 넘어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게 안타까워서 오늘 오후에 가짜뉴스에 대해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려놓을 테니 참고하게.”
지금부터 읽게 될 본 졸고는 이 친구가 보내준 동영상과 질문을 접하고선 다시 한 번 가짜뉴스의 폐해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의 진위를 분별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급하게 쓰게 된 것이다. 이참에 가짜뉴스의 각종 사례와 개인이 그에 휘둘리지 않는 지식과 지혜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가짜뉴스(fake news, 假新聞, にせニュース)는 과거부터 쭉 있어 왔다. 인류가 모두 머리통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뉴스가 사라져야 된다는 이상론에 기대어 그것들이 사라지길 기다리고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 오히려 가짜뉴스나 의도적인 왜곡에 당하지 않기 위해선 진위를 구별하고 실상을 알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갖추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끝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아래에 가짜뉴스의 예 두 가지를 올려놨다. 참고하기 바란다.
http://blog.daum.net/suhbeing/673
http://blog.daum.net/suhbeing/815
더 많은 이들이 가짜뉴스의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위 내용을 축약해서 아래처럼 인터넷 매체에도 실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62721
위와 같은 예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심지어 일반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그래서 맹신하게 되는 언론매체마저도 가짜뉴스를 만들어왔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엔 개인은 엄두도 못 내던 가짜뉴스를 언론만이 독점해왔다. 언론 매체들 중에는 주로 기존의 이익과 기득권을 보호, 유지하려는 보수주의자와 보수 언론매체에서 왜곡과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정도가 심하다.
한국사회에서 싫든 좋든 가장 유력한, 그래서 그들 스스로는 최고의 신문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언제부터, 왜, 어떻게, 얼마나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렸는지를 보면 바로 그 폐해의 정도가 어느 만큼 심각한지 절감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일제의 홍보지로 전락했으면서도 “민족지”를 자임했다. 그러면서도 일제에 항거한다고 강변하는 거짓 기사를 내거나 심지어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를 “兇行”이라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물론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창간 후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줄기차게 가짜뉴스를 생산해왔다. 광복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시절에도 그랬다.
특히 1980년대 전두환 등 신군부의 권력찬탈을 지지하고 그들에게 아부하면서 신문을 전국적으로 보급해 사세를 크게 확장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치부다. 1986년 10월 31일부터 북한이 물로 水攻으로 남침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에 대비해 이른바 ‘금강산댐’과 ‘평화의 댐’ 건설이 필요하다는 논조의 기사를 연일 펴내면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턴 것도 수많은 가짜뉴스와 왜곡들 가운데 하나인데, 가히 빙산의 일각이랄 수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엔 이미 대략 1990년대부터 보수언론의 횡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런 가짜뉴스의 폐해를 알리는 파수꾼들도 있어왔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의 강준만 교수가 그런 선각자적 역할을 해왔다. 나는 1990년대부터 강 교수의 주장을 접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의 취지와 한국 언론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최근의 자유언론실천재단도 그런 단체다.
하지만 거대 언론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들의 굽힘 없는 노력으로 국민들에게 보수언론의 가짜뉴스와 그 폐해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 수많은 가짜뉴스들을 선정해 책으로도 펴내고 있다. 아래 책이니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 국가 혹은 국가의 비호를 받아 공생해온 거대자본의 독점에서 벗어나 그 환경이 ‘개인미디어’, ‘1인 미디어시대’에 들어온 이후엔 온당하지 못한 의도와 목적을 가진 가짜뉴스들과 왜곡된 정보들이 이전 보다 더 많이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와서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오대양 곳곳에 떠돌아다니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온라인을 타고 온 지구촌에 부유물로 떠돌아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의도와 목적은 제작자 마다, 내용마다 다르지만 일단 매체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에게 무방비로 열려있다. 우선 국내에 유통되는 가짜뉴스는 한국인이 만드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한국인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에서 만들어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내보내는 것도 있지만, 중국공산당의 지시와 지원을 받고 하는 중국인 및 조선족(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내 거주자 포함), 이와 유사한 같은 류의 일본인, 심지어 간혹 이들 외에 국가가 직접 제작하거나 정보원들도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임무와 목적을 달성하고자 갖가지 수단과 내용을 만들어 퍼뜨리는 것도 많다. 아래의 예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아래에 첨부해놓은 동영상은 지금까지 일본이 한중간의 사이를 이간시키기 위해 혹은 실제로 그 동안 중국내 혐한주의자들이 한국인이나 한국문화 및 역사를 비틀거나 흠집 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내용이다. 주제는 중국에서 떠돌아다니는 한국비하 뉴스들이 모두 중국인 혹은 일본인들이 중한 양국 국민들을 이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누가, 왜 한국을 00로 만드는가!”라고 문제제기를 한 뒤 그것들은 “모두 오해이니 철저히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과거 1930년대 일본이 한중 양국의 민중을 서로 질타하고 잡아 죽이게 만든 결과 양국에서 각기 상대 중국인과 조선인들이 적지 않게 사상자들이 난 ‘만보산사건’ 관련 가짜뉴스를 떠오르게 한다.
21세기에도 동아시아 지역에선 민족들 간의 반목과 질시는 물론, 무시하고 곡해까지 서슴지 않는 각종 비정상적인 행위들이 지속되고 있다. 오늘 아침에 친구가 나에게 보낸 동영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동영상의 내용은 일본의 ‘하나다’(Hanada)라는 주간 잡지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기사를 발췌해서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원본으로 아래에 동영상을 올려놨으니 내용을 대조해보면 진위를 알 수 있다.
https://www.iza.ne.jp/smp/kiji/world/news/190927/wor19092720240022-s1.html
기사의 내용에 대해선 별도로 진위를 소상하게 논급해야 할 필요가 있고, 좀 더 본질적인 증거는 별도의 다른 글에서 밝히겠지만, 우선 여기서 제시하는 이런저런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에 근거해 결론부터 말하면 한 마디로 이 또한 가짜뉴스다. 그 증거들로는 먼저 무엇보다 정황상 문재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서명했는지에 대해선 한 마디도 밝힌 것이 없음에도 그가 한 것처럼 해놓은 점이다.
이 기사의 원본에는 이 선언문이 한국사회에선 좌파에 대한 기피 현상 때문에 발표되지 않았다고 돼 있다. 글쓴이 혹은 제작자는 이런 해명이 이해될 것이라고 기대했을까? 만일 한국에서 입수했다는 이 선서문이 한국에서 소위 “우파”의 손에 들어갔다면, 또 일본 잡지에 나온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틀림없이 지금이라도 이를 절호의 호재로 삼고 벌써 터트려도 몇 번은 터트려 기회 있을 때마다 우려먹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선거 때 마다 나온 단골 메뉴인 고질적인 “빨갱이” 프레임으로 걸어 선거용으로 왕창 한탕 크게 써먹고 있을 것인데, 지금까지 그런 징후는 없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문재인 등 이 명단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본인이 직접 선서하고 서명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는 북한식 용어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는 것도 기이하다. “력사적”, “남반부”라든가 “6.25조선전쟁”, “박근혜 괴뢰패당”, “령도” 등의 용어들은 남한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쓰지 않는 것들이다. “6.25조선전쟁”이라는 용어도 아예 북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조선전쟁”이나 “북침전쟁”으로 부른다.
그런데 이들이 선서를 하면서 이처럼 북한식 표현을 썼다고? 철저한 충성심과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박근혜에 대해서도 "괴뢰패당"이라고 칭했다면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지 않는가? 이 선언문이 다분히 북한 용어를 조금 아는 일본인이 날조했을 냄새가 짙어 보이는 이유다.
“검찰, 경찰에 침투한다”는 것도 어색한 표현이다. 대통령이 이미 검찰과 경찰 권력을 손 안에 갖고 있으면 굳이 침투가 아니라 “검찰, 경찰을 움직여서”라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소한 문제로 보이긴 하지만, 선서의 명단 중 성명과 직책도 제대로 표기돼 있지 않을 정도로 엉성하고 (예컨대 문재인을 문제임으로, 이석희를 리서기, 박원순을 박원숨으로, 조희연을 조히연으로, 정청래를 청정래로, 재독 학자 송두율을 송두유로, 곽선희를 곽서니로), 시점도 세월호 침몰 사건이 터졌을 때인 2014년 6월로 돼 있음에도 일부 등장인물들의 직책이 다른 점도 이상하다.
선서했다고 한 당사자들이 한글을 잘못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기가 일본 잡지 측에서 범한 실수였다면 꼼꼼하기로 소문난 일본의 언론매체의 특성상 이 정도로 많은 실수를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이 방송의 후반부에 비친 하나다 잡지의 일본어 선서문을 해석하는 이 여성이 말하는 한국어 어투로 봐선 북한 출신 새터민이거나 혹은 중국 조선족 출신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 여성이 첫 줄을 잘못 해석하는 걸 보면 일본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 동영상의 두 남녀는 문재인 정권을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본 극우 매파들의 혐한의도와 목적으로 아는지 모르는지 개의치 않고 그냥 퍼나르기에 급급한 듯이 보인다. 이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동영상을 퍼뜨려오고 있는데, 유튜브에는 이것 말고도 복수의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의 혐한 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이 매체가 악의적으로 심지어 조롱까지 하면서 한국 관련 왜곡, 편파보도를 계속해오는 이유는 근거 없는 반한과 혐한 기사로 반한자들, 나아가 혐한자들을 양산해 극우세력을 결집해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막고 북한의 존재를 지속시켜서 궁극적으로는 평화헌법을 전쟁이 가능한 법으로 개악하기 위함이다.
북한과 중국이라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일본이 평화헌법의 수정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개선과 화해를 막는 게 그들로선 최대의 과제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선봉에 선 매체가 바로 ‘하나다’다. 이 점에서 이 잡지의 편집장인 하나다 가즈요시(花田紀凱)는 십중팔구 아베 세력의 후원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런 류의 가짜뉴스는 아시아 지역에만 국한 된 게 아니다. 유럽과 미국, 남미, 중동 등 전세계에 널려 있다. 아래 동영상은 멀리 있는 터키인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에 관한 것이다. 주제는 “한국이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한 터키는 한국을 형제라고 생각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위 동영상의 결론은 터키인들 중에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고, 그것은 국내 민족들 간의 투쟁의 결과 곡해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멀리 터키의 경우지만, 이 나라가 골이 아플 정도로 복잡한 다민족 국가인데다 이슬람교파들에다 기독교들 간의 종교분쟁문제가 걸려 있어 특정 민족이 국내 자기 나라에서 소수민족을 소수로 남게 하고 봉쇄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민족적 수준의 것도 있지만, 명색이 범인류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유엔 기구마저도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고의로 왜곡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 무한 발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해서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가 중국이 유엔의 운영비를 많이 내서 그런지 누가 봐도 바이러스 전염 관련 정보를 숨기는 등 초반 중국 지도부의 실수를 보고서도 지적하기는커녕 오히려 두둔하고 변호한 발언도 그 한 예다.
유엔 사무총장이 수많은 생명이 죽어 가는데도 이따위 한가한 소리를 해대다니!! 그야말로 세상에 정의는 실종되고 믿을 놈이 없다고 느껴지겠다. 현실의 삶에선 정의의 실현은 창백한 이상에 불과할 뿐, 온 세계가 자본의 힘에 휘둘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실증적인 사례다.
가짜뉴스는 최근 한국에도 부지기수로 기승을 부릴 정도로 더 많아 졌다. 몇년 전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이 YTN 방송에 출연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개인 청구권까지도 다 포함됐다고 발언한 경우도 악의적인 왜곡인데 보수언론에서 이를 여과 없이 내보낸 것은 명백한 가짜뉴스다. 이것은 송언석이 정말 국회의원 신분에 걸맞지 않게 너무 무지한 소치였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일본에서 나온 발언들을 찾아보면 바로 자신의 발언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음에도 사실이 아닌 발언을 했으니 말이다.
송언석의 발언이 사실과 다른 무지한 소치라는 것은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 심지어 극우파이자 변호사 출신으로 오사카 시장을 지낸 젊은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도 “한일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발언한 바 있고, 전 일본 변호사협회 회장 우츠노미야 겐지도 “강제징용 배상판결은 상식”이라면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지지한 사실을 제시하는 걸로 족하다.
그런데 어느 나라 언론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일보를 위시한 국내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일본 편에 가세해서 일본의 법원, 당사자인 해당 징용기업과 이 판결을 주도적으로 유도한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기사를 써댔다. 결국 송언석의 이 발언은 누가 봐도 공신력 있어 보이는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서 명백하게 이 문제와 관련해 대일 관계를 주도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
http://m.hani.co.kr/arti/politics/assembly/904293.html
이외에도 국내외 가짜뉴스만 해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아마도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서 보도된 기사나 방송멘트의 원고만으로도 지구에서 달까지의 왕복 거리를 잇고도 남을 분량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끊임없이 가짜뉴스들이 근절되기는커녕 더 한층 기승을 부릴까? 가장 먼저 가짜뉴스를 목적 실현의 유력한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 중요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이와 맞물려서 전반적으로 도덕의식과 윤리의식이 퇴보한 점, 세계경제가 위축된 가운데 경쟁이 살인적이 된 생존환경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본다.
도덕의식과 윤리의식이 이전 시대 보다 퇴보했다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평가다. 그렇다면 차라리 권위주의 시대, 독재시대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고 일상의 삶까지 제약을 받거나 위축되었던 금기들이 거의 사라지고 없고 그에 비례한 만큼 자유가 신장된 것이 가짜뉴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전반적인 환경이라고 보는 게 더 실재에 가까운 평가일 것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성격이 조급해진 점, 기사에 대한 감별안이 부족하고, 가짜뉴스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점도 원인의 하나임을 무시해선 안 된다. 물론, 가짜뉴스의 진위를 분별, 판별하지 못하는 지식 및 지혜가 없는 이들 그리고 특히 어떤 사람이나 정당, 정치세력, 지역에 대해 무조건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편견의 소유자들은 스스로 가짜뉴스를 반기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일차적 요인이다. “거 봐라 내말이 맞제?”라거나 “이놈들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이런 류의 가짜뉴스들은 안 그래도 밉고 싫은 사람, 특정의 정치인, 지역, 국가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강화 고착해 자기확신과 자기위안을 가져다주는 심리적 만족감을 맛보게 만든다. 이처럼 어리석고 단세포적인 자들이야말로 가짜뉴스를 만들려는 작자들이 적지 않고 가짜뉴스들도 횡행하는 만드는 조건이요 환경이다. 그와 동시에 크게 보면 그들은 가짜뉴스의 소비자로서 지지자이기 때문에 공범들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짜뉴스를 접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장 먼저 자신은 신이 아니어서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논의의 주제가 약간 확대되긴 하지만, 뉴스에 나오는 모든 정치인들과 유명 인사들도 신적인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박정희든, 김영삼이든,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박근혜이든, 문재인이든 모두 신이 아니어서 완벽한 정책과 정치를 펼 수 없는 “인간”일 뿐이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지나친 기대와 환상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가짜뉴스에 속게 되는 거름이자 지름길이다.
다음으로 일반상식만으로는 현명하게 대처하기엔 부족하다. 전문성의 영역을 많이 넓혀 나가는 게 중요하다. 특히 북한문제나 안보와 관련된 주제는 사실 확인이 어려워 왜곡하고 거짓을 말해도 분간하기 쉽지 않는 분야다.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일반인이 아니라 학문하는 학자들도 사실 전공이 아닌 이상 과학 분야의 기사에는 진위와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이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보면 안목이 생긴다.
상식과 지식을 넓혀가는 과정이나 가짜뉴스를 접할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게 역사연구 방법론을 익히는 것 그리고 논리력과 합리성과 이성력을 증장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이다. 역사연구 방법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주로 사료를 접하고 해석할 때 진위여부와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 그 어떤 선입견을 배제하고,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증명, 균형감각의 유지, 휴머니즘의 견지에서 봐야 한다는 태도가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준거 및 방법을 적용해 자신이 접하는 뉴스의 진위를 판단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선 “생각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기존 철학계의 철학방법을 설파한 르네 데카르트의 회의론적 사고(즉 방법서설)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우상(종족, 동굴, 시장, 극장)파괴론을 늘 염두에 두는 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들 중엔 지금 당장 바로 진상을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해당사자들이 죽거나 권력에서 멀어지는 등 세상의 먼지가 가라앉을 때가 돼야만 진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혹은 법으로 규정돼 당시 사실을 공표를 해도 무방한 때가 아니면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역사학과 역사학자가 존재해야 하는 當爲이고 역사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오늘은 미디어에서 코로나19와 곧 있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과 관련해서 어떤 가짜뉴스들이 떠돌아다니는지 새로운 눈으로 보시기 바란다. 눈을 돌려 중국의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감 추이와 미국의 대선 상황, 북한의 동향과 관련해서도 어떤 가짜뉴스들이 있는지 유심히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2020. 3. 10. 08:3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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