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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은 진정 관계개선을 원하는가?

雲靜, 仰天 2012. 3. 30. 21:56

미국과 북한은 진정 관계개선을 원하는가? 

 

서상문(자유기고가)

 

클린턴행정부 시절 해빙의 기대를 안겨주면서 순항하던 북미관계가 부시정권이 들어선 후 돛을 내리고 닻을 내린 지 오래다. 순항은커녕 쌍방의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 항진을 위해 다시 돛을 올릴 가능성은 없을까?

  

일반에는 최근 북미관계 경색의 원인으로 미국의 “대테러와의 전쟁”을 꼽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틀린 견해는 아니지만 감춰져 있는 핵심을 짚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테러와의 전쟁”은 양국 관계의 경색을 가속화한 한 계기였지 본질적 원인은 아니다. 경색의 진원은 부시정권의 북한정권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대북접근방법에 있다. 여기에다 북한의 구태의연한 대응태도 또한 괴리의 간극을 더 넓혀놓은 에스컬레이트 작용을 했다.

  

한국정부는 11월 2일 현재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의 금강산개최를 고수해온 북측의 입장을 수용하여 11월 9일부터 4일간 개최할 것을 제의한 상태지만 소기의 성과가 도출될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쌀 및 전력 지원과 장전항에 대한 남한정부의 보증 따위의 요청에 대해 쌀 지원을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및 제도화와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정해놓은 한국정부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서로 타협점을 좁히기엔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북쌍방의 의견이 좁혀진다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남북관계는 주도권을 미국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국내적 요소”보다 대테러전쟁이라는 “미국요소”에 더 큰 영향과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면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지금까지 부시행정부의 대북 접근방식은 한마디로 대화하자면서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의제를 독단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준수하라고 들이민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있다. 무릇 대화나 교섭이란 상대가 있게 마련이고, 상대성을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미국은 북한의 처지를 깡그리 외면하고 자기입장만 강요하는 패권적 성격이 짙다. 북한과의 대화는 언제든지 가능하다면서도 재래식 무기의 감축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들이겠다는 선 대화 전략이라지만 이래선 북한이 대화에 응할 리 없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고 먼저 대화부터 하자고 할 경우 부시를 믿지 못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재래식 무기의 감축을 정권의 사활과 직결되는 무장해제요구로 인식하기 때문에 당연히 거부할 수밖에 없다.

 

 

조지 부시 대통령. 미국의 역대 정권은 겉으론 북한과 관계개선을 하길 원한다고 하면서 먼저 북한 더러 핵을 포기하라고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정상화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북미관계를 대테러 대응책의 일환으로, 혹은 인권개선문제와 연계시키려는 미국의 대북방침이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양측 평행선의 너비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예컨대 미국은 북한을 과거 테러를 자행한 범죄국이며, 현재도 일본 赤軍派의 도피처를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중동 테러국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테러지원국으로 보는 의심에 찬 시선을 거두려 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보장받고 관계개선을 바란다면 빈 라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기 위한 성의 있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최근에 발족시킨 ‘미국북한인권위원회’의 목적, 즉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강제노동 실태규명, 식량과 생필품 분배확인, 중국 내 탈북자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의도들은 북한문제를 인권과 연계해 나가겠다는 부시행정부의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을 예단케 하고 있다. 이렇게 나간다면 대화분위기가 조성되기란 한층 더 어렵지 않겠는가? 여기에는 “대화하려면 순응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디 버텨봐라”는 오만이 깔려 있다.

  

그런데 북한의 대응태도 역시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마이 웨이”식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체제유지와 이를 해할 수준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대외개방을 펴나가겠다는 딜레마에 처해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당내 입지, 즉 북한을 대외개방으로 견인하려 해도 북한 정권내 군부를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의 반발을 다독여야 하는 처지를 십분 감안한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보기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양지 참여는 고사하고 도대체 남한과 또는 미국과 대화할 의사가 있는지 근본 의지를 의심케 하는 태도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미국과 북한이 기존에 수십년간 해오던 방식으로는 북미관계가 절대로 정상화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월 부시대통령이 제시한 북한과의 대화재개 제안과 재래식 무기감축 요구를 북한의 무장해제를 노린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주장대로 우리의 상용무력이 그토록 위협이 된다면 미군이 남조선에서 물러가면 그만”이라고 하면서 “남의 나라 절반 땅을 강점하고 있는 저들의 침략무력은 ‘억제력’이고 북의 자위적 무력은 ‘위협’이 된다는 논리야말로 미국식 논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적대적으로 인식하면서 남북대화경색에 대한 책임마저 미국이 남북의 관계완화 분위기까지 냉각시켜버렸다는 식으로 미국에 떠넘겼다. 북한은 미국이 대화를 재개하려면 최소한 클린턴행정부 말기에 취했던 입장, 즉 적대관계종식을 확약한 공동코뮤니케 성명발표 그리고 재래식무기감축을 논할 것이 아니라 미사일문제의 논의를 통한 관계정상화를 의제로 삼자는 입장이다.

  

이처럼 미국과 북한 쌍방이 각기 자국 입장만 고집한다면 대화가 성사되기는 백년하청이다. 북미는 진정 대화의 용의가 있다면 각자 한발씩 물러나 상대방의 입장으로 들어가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강자인 미국은 북한의 입장에서 현상을 되짚어보는 탄력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북한 또한 남한정부의 정권교체에 따라 어떤 식으로 변화하게 될지 가변적인 변수를 안고 있는 포용정책이 제공하는 분위기에 편승해야 한다. 지난 날 처럼 더 이상 머뭇거려 다시 한 번 실기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예전의 ‘벼랑 끝 전술’은 부시정권에게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것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즉각 용도 폐기해야 한다.

 

첫째, 미국은 북한정권이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자신들의 체제안보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스스로 과거의 테러전력을 의식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난 9월 11일 테러발생 직후 미국은 아프칸 공격 조치로 항모 키티호크를 인도양으로 이동시키고, 대신 이로 인한 한반도의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F-15E 전투기 18대를 한반도로 전진 배치시키는 전술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는데, 이에 대응하여 북한지도부가 취한 전방 및 전군 비상경계령 그리고 10월중에 계획 잡혀 있었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리비아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10월 12일 남한정부에 그 전날까지 준비해온 이산가족방문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남북장관급회담도 안전을 이유로 “불안전한 평양”이 아니라 “안전한 금강산”에서 개최하자고 우겼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변화는 북한이 회담재개 및 이산가족상봉을 통해 남한정부로부터 얻을 수확을 계산한 결과 억지를 피운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실제로 북한 지도부는 주한미군의 전략공군 전진배치 등으로부터 상당한 위협을 느꼈을 개연성이 높다.

  

미국은 관성적으로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은 물론 동북아의 안전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미국마저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현대전의 추세와 요체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은 오히려 그 반대로 인식한다. 현대전은 과거와 달리 군사력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생산력과 경제력의 군사용도로의 전환능력, 그리고 사상 및 신념의 무형적 요소와 국제환경의 유리한 국면까지 포함하는 총력전(total war)의 형태를 띤다. 게다가 유사시 전략핵 동원능력을 갖춘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감안하면 두 진영의 군사력은 더욱 격차가 진다.

 

또 미국과 수구 냉전론자들의 상투적인 위협 부풀리기와 달리 북한은 만약 침공을 감행할 경우 단기전과 장기전을 예상해야 하는데, 병력, 무기, 장비, 화력, 병참, 기동력에서 최소한 한미 군사력 총합의 2배 내지 3배는 된다는 자체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쟁과정에서 전력으로 전환될 국가의 자원 및 인력동원 능력, 즉 이른바 ‘전쟁수행능력’이 월등해야 하고, 국제적 환경 또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되지 않을 경우 막다른 코너에 몰린 한계상황이 아니고선 모험을 일으킬 확률은 생각만큼 절대적이지 않을 것이다. 섣부른 침공은 자칫 정권붕괴로 직결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전력평가의 판단착오와 전술상의 과오로 인해 맛본 한국전쟁에서의 낭패를 잊지 않고 있는 북한군사정권은 전쟁발동에 누구보다 신중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과장된 위협 부풀기를 지양하는 대국다운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미국은 전격적인 개방을 원하는 서방세계 혹은 북한정권을 의심하고 있는 수구냉전세력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하더라도 김정일이 권력 장악 후 대외진출에 조금씩 노력해온 점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것이 내부로부터 권력기반을 와해시킬 소지를 안고 있는 피폐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위기의식에서 발로된 한시적 몸짓이라 하더라도 외부세계는 그의 대외 발걸음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점과 관련해서 북한은 겉보기에는 김일성을 계승한 일인 독재체제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군부의 지지에 얹혀 있는 집단지도 혹은 집체적 지도체제 속에서 국가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명목적으로는 김정일이 군과 당을 장악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내각총리가 각각 입법 및 국가의 대외적 대표와 국가행정 및 살림살이를 분담하고 있는 분권적 요소가 김일성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 이 가운데 군부의 입김은 체제의 향방과 직결된 대외관계, 즉 북미, 대남, 대일관계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선 군통수권자인 김정일 자신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못할 만큼 무시할 수 없다. 대남사업담당 책임자인 김용순이 장기간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개방반대세력으로부터 견제당하고 있는 듯이 추측되는데, 이는 김정일의 현 입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따라서 부시행정부는 타국에 인권을 들먹여도 될 만큼 스스로 부끄럼이 없는 민주정부라면 먼저 부시 대통령 자신이 강조해온 대북대화 혹은 한반도 긴장완화의 의지가 진실인지 진지하게 자문부터 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수사적 공염불이 아닌 가식 없는 진실이라면, 한민족 문제를 남북한 당국자들이 자율적으로 풀어 나가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 주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또한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겠다면, 대화 채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고위급 관료로 격상시키고 미사일문제부터 의제로 삼아 단계적인 상승을 유도하는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한편, 북한정권 역시 국제사회에 테러반대의사를 명백히 천명하는 의사를 다시 한 번 명백히 해야 한다. 점진적인 대외개방으로 나아가겠다면, 시대조류에 역행하는 테러를 반대한다고 선언한 마당에 ‘반테러국제협약’에 가입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또 오사마 빈 라덴과 관련된 정보를 갖고 있다면, 그것도 미국에 제공해줘라. 그리고 테러지원국의 혐의를 벗도록 하라. 또한 현재 논의 중에 있는 남북 장관급회담에도 성실히 임하고 동시에 이산가족상호 방문을 정치논리에서 격리시켜 인도적인 차원에서 정례화, 제도화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대외에 한반도 긴장완화의 의지와 성의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명분과 설득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김대중 대통령 역시 부시 행정부로부터 미군의 한반도주둔과 대테러 응징에 나선 미국의 군사행위들이 대북공격용이 아니라 동북아의 힘의 균형을 위한 도발 억지력이라는 설명을 북한 스스로 믿을 수 있을 만큼 가시적인 조치를 이끌어 낼 수 없다.

 

2001. 11

雲靜

 

위 글은 월간지 『한민족포럼』, 2001년 1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