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69

가슴 먹먹한 오후 : 시인 나태주 부부의 애절한 간구

가슴 먹먹한 오후 : 시인 나태주 부부의 애절한 간구 나는 지금 엉엉 소리 내 울면서 아래의 시를 올립니다. 시를 다 읽고난 뒤가 아니라 남편의 시에 화답한 부인의 시를 보면서부터 바로 봇물이 터지듯이 눈물이 쏟아지네요. 이젠 나이가 조금 드니 주위 눈치도 보질 않습니다. 소리 내어 울어도 마침 혼자 있어 흉볼 이도 없고요... 남편이 의사로부터 시한부 삶을 선고 받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중병을 앓고 있을 때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하는 아내가 안스러워 썼다는 詩로, 제목은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랍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경자년을 보내면서 다시 끄집어내는 인도이야기

경자년을 보내면서 다시 끄집어내는 인도이야기 이 해의 마지막 날, 덕담 보다 현실의 아픔, 그중에서도 빈곤과 빈부격차 그리고 인간들의 위선을 얘기하는 게 영 세모 분위기에 맞지 않아서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내 이웃의 가난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그것은 곧 세계 인류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와 인류는 인드라의 그물망처럼 서로 연기적으로 얽혀있고, 유한한 자원과 생산 환경에서 富란 제로섬이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이 한 겨울에 노숙자들이 눈앞에 있는데, 자신이 누리는 안온함이, 부족함 없음이, 그것이 행복이라면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 이런 저런 생각의 일부가 들어있는 졸고를 올리는 걸로 홀로 위안을 삼는다. 작년 2019년 8월, 두 번째로 간 인도에서 대롱으로 본 그곳 인도 ..

강남역 미화원 할머니 추모 : 사회적 약자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정의감의 다른 표현!

강남역 미화원 할머니 추모 : 사회적 약자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정의감의 다른 표현! 강남역 지하도를 걷던 중이었다. 무심하게 앞만 보고 가다가 지하 상가들이 있는 곳의 작은 계단 주위에 행인들이 여러 명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계단에는 어떤 미화원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그마한 추모 물건들이 놓여져 있었다. 장갑, 방한모자, 초코렐, 박카스, 바나나 우유 등의 음료수들, 작은 꽃다발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돌아가신 할머니로 보이는 분의 사진을 넣은 영정과 그 가족들이 쓴 편지도 함께 놓여 있었다. 날짜를 보니 사진 속 할머니는 태어나신 연도가 없어 연세는 알 수 없지만 돌아가신 날은 아마도 약 10여 일 전인 지난 12월 8일이었던 모양이다. 사진 속 할머니 모습을 보니 이쪽 지하도에..

중국방문 : 중국 국방부장 예방

중국방문 : 중국 국방부장과 정치협상위원회 부주석 예방 2001년 조성태 전 국방부 장관을 수행하여 중국 국방부 청사에서 중국 국방부장 지호전과의 대담회와 만찬에 참석했다. 중국 국방부장 迟浩田(1929. 7)은 산동성 招远출신으로서 1945년 7월에 입대해서 그 이듬해 1946년 10월 중국공산당 입당, 중국인민해방군 군사학원 合成系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상장(한국군의 대장에 해당)이지만, 제15계 중앙정치국위원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지낸 인물이다.

친구에게 전한 근황 : 선배와의 대화

친구에게 전한 근황 : 선배와의 대화 오늘 아침에 부산 사는 한 친구가 내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 왔다. 그래서 아래 글을 보냈다. "아래 글은 어젯밤 평소 내가 존경하는 선배 한 분 하고 카톡으로 주고받은 대화다. 내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엿보일 거다. 일흔이 넘은 이 선배 분은 연합신문에 언론인으로서 오랫동안 종사했고, 그 뒤 이회창 대선시엔 이 후보의 정치특보를 지내면서 잠시 정치에 입문했다가 물러나서 몇 년 전부터는 한학에 깊이 심취해서 성균관대학 부설 한림원에 입학까지 해서 집중적으로 한학을 공부하신지가 한 6~7년은 된 거 같다. 내가 그를 언론계의 선배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도 존경의 염을 품고 있는 까닭은 인품이 아주 고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어제, 먼저 그 선배 분..

여름날 밤 구룡포에서의 번개

여름날 밤 구룡포에서의 번개 올해는 코로나에, 장마에 여름을 밋밋하게 보내는가 싶더니 각재 일이 벌어졌다. 8월 19일, 수요일 평일임에도 용케 오랜 知己들이 구룡포로 몰려들었으니 말이다. 구룡포의 선배들과 친구가 멀대를 반갑게 맞아주고, 번개를 치니 연락 받은 포항 사는 아우들 4명이 바로 한 걸음에 달려왔다. 언제 봐도 헌걸찬 윤 트라볼타 승궈이(승권), 어디서든 신중과 젠틀 모드의 前途洋洋 목민관 황영워이(영원), 귀신도 못 속이는 샤프한 명세무사 배성처리(성철), 천부적인 불멸의 재담가 박화느이(환흥)! 30년도 더 된 인연들이지만 우린 언제, 어디서든 늘 만나면 반갑지 아니 하고, 유쾌하지 아니한 때가 없었으니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게 구룡포 항구에서 보게 되다니 또 한 번 반갑고 반가웠심데이~ ..

삶의 한 순간 : 소싯적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

삶의 한 순간 : 소싯적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 마산에 갔다가 부산에 거주하는 소싯적 친구와 카톡으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 친구는 성실하고 현명하게 경찰직을 37년간이나 봉직하고 정년퇴임을 한 뒤 지금은 중학교에서 지킴이 역할을 해오고 있다. 내가 그에게 먼저 나의 그림 사진을 보냈더니 그에 대한 작품평으로 아래와 같이 간단한 글을 적어 보냈다. “그림 잘 봤다. 타고난 소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전에도 내가 피력했지만 그림이 최우선 기술이다. 글은 그 다음이지. 한문도 원조가 그림 아닌가! 내가 그림을 알겠나만은 세파에 찌든 너의 심정(봉우리)을 운무로 다독이고자 하는 것 같네. 구름이 본시 희거나 회색인데 붉은 색을 덧칠한 것을 보면 응어리를 조속히 해소코자 하는 뜻이 보인다. 작품 계속 보내라. ..

故 이종판 박사 추모사

故 이종판 박사 추모사 이종판 형님, 일어나시길 간절히 바랐는데, 끝내 다시는 오지 못할 먼 길을 가셨군요. 그렇게 갑자기 빨리 우리 곁을 떠나 가셔서 너무 안타까워 허망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합니다. 종판 형님, 형님과 저는 인연을 맺게 된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요. 국방부 연구소에 같이 근무하면서 같은 연구실을 쓰면서, 또 형님이 중간에 그만두시고 영남대에서 교편을 잡은 5년 동안, 또 그 이후 퇴임하시고 난 후에도 자주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지요. 그때 국방부 연구소에 어떤 이의 전횡에 대해 아무도 바른 소리 직언을 못하던 그런 상황에서 형님은 진언하시고 사표를 던지신 것을 곁에서 지켜봤죠. 올곧은 그 기백과 용기에서 저는 옳지 못한 것을 보고도 눈을 감..

한국 주먹사 소개 : 프롤로그

한국 주먹사 소개 : 프롤로그 우리세대가 어렸을 때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혈기 왕성하던 10~20대 시절, 한국의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멋져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 중반 들어 급부상한 양아치류의 조양은이나 김태촌이 아니라 김두한이나 협객풍의 시라소니(본명 이성순) 같은 인물들 말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시절, 나는 일제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김두한과 시라소니를 좋게 봤는데, 그건 비단 나 혼자만 그랬던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히 일찍부터 한국의 주먹사에 관심을 가지고 섭렵하게 됐다. 한국사회에 조직폭력패가 생겨난 것은 구한말 조선에 진출한 일본과 중국 상인들이 상권장악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던 시대에 기원을 둘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