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68

역사의 한 장면 : 해병대가 ‘해병대’로 불리지 못한 이유(강기천, 전도봉 두 전직 해병대 사령관의 증언)

역사의 한 장면 : 해병대가 ‘해병대’로 불리지 못한 이유(강기천, 전도봉 두 전직 해병대 사령관의 증언)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원장을 지낸 강기천 전 해병대 사령관은 해병대 사령관을 육, 해, 공 참모총장과 동격으로 만들어 놓은 분인데, 예편하고 한참 후인 2012~2014년 서울 잠언동 소재 중국음식점 취영루에서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에게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즉 해병대 대원들의 호칭을 해군 소속이 아니라 미국 해병대처럼 “해병대 소속의 누구”라고 표기하고 싶었지만 ‘5.16’후 해병대가 너무 튀어 보이고 타군들이 보는 눈도 있고 하니 당분간 ‘해군’대신 ‘해병’으로 표기하고 있는 게 좋겠다는 당시 국방부 장관의 요구를 수용하여 ‘해병대’라고 표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숨은 일화를..

새벽에 문득 떠올리는 오늘의 역사

새벽에 문득 떠올려 본 오늘의 역사 새벽녘에 눈이 뜨자 문득 뜬금없이 오늘은 역사상 어떤 오늘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가끔 얼토당토않다고까지는 할 순 없지만, 엉뚱한 짓은 좀 하고 살아서 그런지 괜히 과거를 뒤져 봤습니다. 그랬더니 과거 수많은 오늘들에 일어난 일들을 어찌 다 기억을 할까만, 그 중에 오늘 일어난 일들 중엔 의미를 새겨도 될 만한 일들이 없지 않네요. 1865년 4월 9일 오늘은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날이더라고요. 미국이 노예제도의 인정여부를 두고 남북으로 갈려 서로 총질을 해 6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전쟁 후 상처가 많이 아물고 치유가 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민족을 돌아보게 합니다. 한국전쟁에서 김일성의 남침으로 죽어간 남북의 군인과..

'오빠 생각'을 생각하다

‘오빠 생각’을 생각하다 ‘울산 큰 애기’가 있는 울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주위에서 보내준 글에 내용을 조금 보태서 보내 드립니다. 내용은 雲靜이 평소 자주 부르는 동요 ‘오빠 생각’이 지어진 일화와 그에 대한 생각입니다. 소싯적 오빠를 많이 따랐고, 환갑이 다 돼 가는 지금도 오빠를 생각하는 동생에게 늘 마음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오빠이기도 하고, 또 이 달이 가정의 달, 어버이날이 있는 달이기도 해서 이 노래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불거지네요. 오늘 울산행이 주례를 보기 위해 가는 길인데, 어느덧 주례 설 정도로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많지도 않은 혈육인 동생에게 잘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다 3남매를 길러주신 작고한 부모님 생각, ‘고향의 봄’ 저자 이원수의 고향이기도 하고 雲靜의..

낯선 사람에게 짐 봐달라고 맡기는 건, 또 봐주는 건 무슨 심리인가?

낯선 사람에게 짐 봐달라고 맡기는 건, 또 봐주는 건 무슨 심리인가? 어제 해거름부터 술을 마시다가 있었던 일입니다. 막걸리를 마시다보니 소피가 자주 마렵잖아요. 그래서 주인장에게 '화장'하고 올테니 가방 좀 봐주라고 하니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손님이 가방은 당연히 봐주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는 말이 "핸드폰도 내가 봐 줄테니 신경쓰지 말고 갖다오라"고 합디다. 그는 생면부지의 같은 손님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믿고"가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고맙습니다"하고 다녀왔습니다. 갖다오니 물론 가방도, 핸드폰도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뭐 오랜 경험상 관습적으로 예상을 한 거였지만...지금까지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했는데, 극장, 터미널이나 공연장 등지에서 말입니다. 한국..

을미년 送舊迎新酒 소회

을미년 送舊迎新酒 소회 을미년의 마지막 날 밤, 벗과 둘이서 마주하는 술 한 잔, 평소 보다 좋은 술과 안주에다 마주한 이가 知音이니 더 없이 기쁘고 술이 당기지 아니 하겠는가? 반평생을 고래가 大洋을 마시듯 술을 마신 몸이니 送舊迎新의 흥취를 모르는 바도 아니지 않겠는가? 허나 오늘밤은 취하고 싶지 않구나. 아니 취할래야 취할 수가 없구나. 꿈을 접으려는 벗을 위로하며 친구가 따라주는 술맛이란 그 처지가 돼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터! 후일을 도모하지만 때가 언제일지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운명의 영역일 터! 獨也靑靑으로 끝날 운명일지, 아니면 靑雲을 펼치게 될지는 정녕 알 수 없도다. 후일은 후일이고, 당장 지도층에서부터 이성과 합리성이 실종돼 나라를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어 놓은 현실을 대면하고 있으..

한 해가 저무는 황혼녘에 올리는 기도

한 해가 저무는 황혼녘에 올리는 기도 해마다 한 해의 마지막 해가 지는 걸 볼 때마다 경건함과 성스러움을 느낍니다. 인간존재의 나약함과 자연이 지닌 초월적 포용력의 대비도 갈마들듯 다가옵니다. 이 해도 경건함과 성스러운 아우라(aura)에 쌓여 그대와 함께 꿈을 꾸고 희망을 풀무질하면서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벌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꿈과 희망이 바라는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삶이란 끝이나 결과가 아니라 시작과 과정과 함(doing, 作爲)에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에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잃는 게 있는가하면 얻는 것도 있는 게 인생입니다. 낙담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고빗사위 때마다 늘 그대가 함께 해줘 원초적 에너지가 됐습니다. 부족한 나를 그대의 친구나 지인이..

德과 福은 일란성 쌍둥이 그리고 功德

德과 福은 일란성 쌍둥이 그리고 功德 덕은 덕을 부르고 복은 복을 부른답니다. 때론 덕이 복을 부르고, 복이 덕을 부르기도 합니다. 둘은 至誠에 토대를 둔 한 몸체의 다른 이름이니까요. 성은 타고날 때부터 조상이 선사한 음덕이지만, 이름은 일생 동안 자신이 가꿔가야 할 복입니다. 그 복은 또 다른 복을 부르는 첫걸음이자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자기장인거겠죠. 이름을 지어준 希願이 당사자에게 복과 덕이 자라나게 하는 평생의 염력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저마다 이름대로 사는 이유겠죠! 복덕이 나쁜 건 아니지만 주어진 자신의 그 이름으로, 행한다는 분별심이 없고 나 자신이 없다는 생각(無分別, 無我)으로 육도를 돌고 돌 福德 보다는 윤회하지 않는 반야의 지혜 결정체인 功德을 닦으면 더욱 좋겠지요. 201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