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69

좀 더 보듬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다 가자!

좀 더 보듬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다 가자! 다시 부산으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근 달포만이다. 허기진 배를 기내식으로 달랜다. 지난 며칠간 계속 무리했던 몸을 낭창낭창 허물 거리게 하려고 설 잠이라도 청할 요량으로 승무원에게 양주를 부탁해 두 잔을 연거푸 비웠다. 그랬더니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흐느적거려야 할 정신이 되려 더 말똥말똥해진다. 기내 뒷자리의 빈 좌석에 드러누웠지만 한 달 만에 술이 들어가니 잠이 아니라 오히려 난 데 없이 눌려 있던 思念들이 맹속으로 엄습해온다. 흡사 흡혈귀들이 먹을 것을 보고 달려드는 것처럼. 창밖으로 보이는 코발트 빛 벽공에 주변 정겨운 사람들의 얼굴이 그믐날 밤의 별똥처럼 펼쳐진다. 새삼스럽게도 평소 늘 해오던 생각이 다시 고개를 빳빳이 든다. 누구든 시간을 ..

빗자루와 민족문제연구소

빗자루와 민족문제연구소 빗자루로 방을 쓸거나 바닥을 쓸어본 경험은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평생을 살아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수 있는 박근혜, 이재용 등 아주 극소수를 빼고는! 바닥을 쓸다 보면 여러 번 쓸어도 바닥이 깨끗하지 않을 때가 있다. 빗자루에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는 머리카락, 먼지, 티끌, 잡동사니 따위를 깨끗이 털어 내고 쓸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그대로 쓸면 그렇게 된다. 더러운 빗자루로 쓸려니 바닥이 깨끗해질리 만무하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경험적 이치다.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데 왜 이 말을 하냐고? 법전에 사람을 죽여선 안 되고, 도둑질을 해선 안 되고,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고 되어 있지만, 왜 세상에는 살인자가 생기고, 도둑놈이 생기고, 사기꾼이 생겨나는가? ..

최서면 선생의 구술

최서면 선생의 구술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해서 다음 주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할 졸문 1편을 매듭 지어 넘겨주고 나니 시간이 빠듯했다. 급히 점심 때 12시~2시 30분까지 진행되기로 예정된 최서면 선생 오찬 초청 강연장으로 달려갔다. 장소는 덕수궁 옆 한식집 달개비. 한국콜마의 윤동한 회장님이 만드신 자리다. 참석자는 윤동한 회장과 함께 최서면 선생님, 서울대 명예 교수 이태진 선생님을 포함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현재 김구재단 이사장), 백범 김구 전문가인 창원대 도진순 교수,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김구포럼 간사 오정섭 박사, 도리우미 유타카 박사, 김구포럼 학술기획위원 서상문 본인 등등 총 11명이었다. 최서면 선생은 1928년생으로, 해방 후 1947년 연희전문 재학중에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찬성한..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의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직 사퇴 선언문

여기 해병대를 편제상 해군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충정으로 정치에 몸 담으려다 중도에 뜻을 접은 노병이 있다. 힘이 돼주지 못해 송구스런 마음이다. 각국에서 해병대의 독립은 해병대의 오랜 숙원이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군사적 효율성 보다는 군대 내 힘의 역학관계라는 정치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게 현실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말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의 애끊는 심정을 들어보자.--편집자 주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의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직 사퇴 선언문 살 만큼 살았는데, 무슨 야욕이나 욕심이 있겠습니까? 잘못 되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고, 모군 해병대를 최강의군대로 세워주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제 죽어도 무슨 일인들 못 할까 하고, 늘푸른한국당 창당에 뛰어들었지만, 전..

역사의 한 장면 : 해병대가 ‘해병대’로 불리지 못한 이유(강기천, 전도봉 두 전직 해병대 사령관의 증언)

역사의 한 장면 : 해병대가 ‘해병대’로 불리지 못한 이유(강기천, 전도봉 두 전직 해병대 사령관의 증언)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원장을 지낸 강기천 전 해병대 사령관은 해병대 사령관을 육, 해, 공 참모총장과 동격으로 만들어 놓은 분인데, 예편하고 한참 후인 2012~2014년 서울 잠언동 소재 중국음식점 취영루에서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에게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즉 해병대 대원들의 호칭을 해군 소속이 아니라 미국 해병대처럼 “해병대 소속의 누구”라고 표기하고 싶었지만 ‘5.16’후 해병대가 너무 튀어 보이고 타군들이 보는 눈도 있고 하니 당분간 ‘해군’대신 ‘해병’으로 표기하고 있는 게 좋겠다는 당시 국방부 장관의 요구를 수용하여 ‘해병대’라고 표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숨은 일화를..

새벽에 문득 떠올리는 오늘의 역사

새벽에 문득 떠올려 본 오늘의 역사 새벽녘에 눈이 뜨자 문득 뜬금없이 오늘은 역사상 어떤 오늘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가끔 얼토당토않다고까지는 할 순 없지만, 엉뚱한 짓은 좀 하고 살아서 그런지 괜히 과거를 뒤져 봤습니다. 그랬더니 과거 수많은 오늘들에 일어난 일들을 어찌 다 기억을 할까만, 그 중에 오늘 일어난 일들 중엔 의미를 새겨도 될 만한 일들이 없지 않네요. 1865년 4월 9일 오늘은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날이더라고요. 미국이 노예제도의 인정여부를 두고 남북으로 갈려 서로 총질을 해 6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전쟁 후 상처가 많이 아물고 치유가 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민족을 돌아보게 합니다. 한국전쟁에서 김일성의 남침으로 죽어간 남북의 군인과..

'오빠 생각'을 생각하다

‘오빠 생각’을 생각하다 ‘울산 큰 애기’가 있는 울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주위에서 보내준 글에 내용을 조금 보태서 보내 드립니다. 내용은 雲靜이 평소 자주 부르는 동요 ‘오빠 생각’이 지어진 일화와 그에 대한 생각입니다. 소싯적 오빠를 많이 따랐고, 환갑이 다 돼 가는 지금도 오빠를 생각하는 동생에게 늘 마음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오빠이기도 하고, 또 이 달이 가정의 달, 어버이날이 있는 달이기도 해서 이 노래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불거지네요. 오늘 울산행이 주례를 보기 위해 가는 길인데, 어느덧 주례 설 정도로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많지도 않은 혈육인 동생에게 잘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다 3남매를 길러주신 작고한 부모님 생각, ‘고향의 봄’ 저자 이원수의 고향이기도 하고 雲靜의..

낯선 사람에게 짐 봐달라고 맡기는 건, 또 봐주는 건 무슨 심리인가?

낯선 사람에게 짐 봐달라고 맡기는 건, 또 봐주는 건 무슨 심리인가? 어제 해거름부터 술을 마시다가 있었던 일입니다. 막걸리를 마시다보니 소피가 자주 마렵잖아요. 그래서 주인장에게 '화장'하고 올테니 가방 좀 봐주라고 하니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손님이 가방은 당연히 봐주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는 말이 "핸드폰도 내가 봐 줄테니 신경쓰지 말고 갖다오라"고 합디다. 그는 생면부지의 같은 손님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믿고"가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고맙습니다"하고 다녀왔습니다. 갖다오니 물론 가방도, 핸드폰도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뭐 오랜 경험상 관습적으로 예상을 한 거였지만...지금까지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했는데, 극장, 터미널이나 공연장 등지에서 말입니다. 한국..

을미년 送舊迎新酒 소회

을미년 送舊迎新酒 소회 을미년의 마지막 날 밤, 벗과 둘이서 마주하는 술 한 잔, 평소 보다 좋은 술과 안주에다 마주한 이가 知音이니 더 없이 기쁘고 술이 당기지 아니 하겠는가? 반평생을 고래가 大洋을 마시듯 술을 마신 몸이니 送舊迎新의 흥취를 모르는 바도 아니지 않겠는가? 허나 오늘밤은 취하고 싶지 않구나. 아니 취할래야 취할 수가 없구나. 꿈을 접으려는 벗을 위로하며 친구가 따라주는 술맛이란 그 처지가 돼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터! 후일을 도모하지만 때가 언제일지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운명의 영역일 터! 獨也靑靑으로 끝날 운명일지, 아니면 靑雲을 펼치게 될지는 정녕 알 수 없도다. 후일은 후일이고, 당장 지도층에서부터 이성과 합리성이 실종돼 나라를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어 놓은 현실을 대면하고 있으..

한 해가 저무는 황혼녘에 올리는 기도

한 해가 저무는 황혼녘에 올리는 기도 해마다 한 해의 마지막 해가 지는 걸 볼 때마다 경건함과 성스러움을 느낍니다. 인간존재의 나약함과 자연이 지닌 초월적 포용력의 대비도 갈마들듯 다가옵니다. 이 해도 경건함과 성스러운 아우라(aura)에 쌓여 그대와 함께 꿈을 꾸고 희망을 풀무질하면서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벌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꿈과 희망이 바라는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삶이란 끝이나 결과가 아니라 시작과 과정과 함(doing, 作爲)에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에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잃는 게 있는가하면 얻는 것도 있는 게 인생입니다. 낙담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고빗사위 때마다 늘 그대가 함께 해줘 원초적 에너지가 됐습니다. 부족한 나를 그대의 친구나 지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