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빗자루와 민족문제연구소

雲靜, 仰天 2019. 1. 26. 10:30

빗자루와 민족문제연구소

 

빗자루로 방을 쓸거나 바닥을 쓸어본 경험은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평생을 살아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수 있는 박근혜, 이재용 등 아주 극소수를 빼고는!

 

바닥을 쓸다 보면 여러 번 쓸어도 바닥이 깨끗하지 않을 때가 있다. 빗자루에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는 머리카락, 먼지, 티끌, 잡동사니 따위를 깨끗이 털어 내고 쓸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그대로 쓸면 그렇게 된다. 더러운 빗자루로 쓸려니 바닥이 깨끗해질리 만무하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경험적 이치다.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데 왜 이 말을 하냐고? 법전에 사람을 죽여선 안 되고, 도둑질을 해선 안 되고,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고 되어 있지만, 왜 세상에는 살인자가 생기고, 도둑놈이 생기고, 사기꾼이 생겨나는가? 같은 이치다.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지는 바로 알 거다. 사회운동, 시민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초심유지와 끊임없는 자정노력 그리고 적당한 량의 긴장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빗자루다. 처음엔 새로 산 깨끗한 빗자루였다. 양식과 상식이 있는 전국의 뜻있는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내어 수십 년간 쌓인 오물을 쓸어내라고 마련해준 도구다. 허나, 오래되다 보니 빗자루 스스로는 자기 몸에 쌓인 먼지와 티끌들은 씻어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니 남들은 다 아는데 제 몸에 삿기가 붙어있는지 그곳 상근자들만 모르는 모양이다. 알고서도 모른 체 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숫제 이제는 둘이 하나가 된듯해 보인다.

 

 

2021년 2월 27일,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제30주년을 맞아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가 축사를 하는 장면. 30년 전 창립 시의 초심은 어떠했는지 뒤돌아 보는 겸허함이 있으면 좋겠다.

 

빗자루는 누가 주인일까? 길게는 수십 년간, 짧게는 몇 개월 간 회비를 내어 더러운 바닥을 깨끗하게 쓸어보라고 빗자루를 안겨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주인이다. 주인이 빗자루에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는 머리카락, 먼지, 티끌, 잡동사니 따위를 깨끗이 털어 내야 한다. 그것은 주인의 권리이자 나아가 公的봉사이자 미덕이다.

 

빗자루, 주인, 더러운 바닥 사이에 내재돼 있는 방정식을 모르고서 이러쿵저러쿵 어깃장을 놓고 두둔하고 비호하는 언행이야말로 기름기 섞인 먼지들이 엉기설기 붙어 있는 빗자루와 함께 더러운 바닥(穢土)에서 같이 나뒹구는 것과 진배없는 짓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스스로를 돌아보라. 그것도 안 되면 빗자루에게 물어봐라. 도대체 자신이 뭣인지를!

 

2019. 1. 26. 10:54

臺北에서 빗자루로 방을 쓸다 생각나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