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최서면 선생의 구술

雲靜, 仰天 2018. 12. 12. 06:47
최서면 선생의 구술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해서 다음 주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할 졸문 1편을 매듭 지어 넘겨주고 나니 시간이 빠듯했다. 급히 점심 때 12시~2시 30분까지 진행되기로 예정된 최서면 선생 오찬 초청 강연장으로 달려갔다. 장소는 덕수궁 옆 한식집 달개비. 한국콜마의 윤동한 회장님이 만드신 자리다.

 

참석자는 윤동한 회장과 함께 최서면 선생님, 서울대 명예 교수 이태진 선생님을 포함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현재 김구재단 이사장), 백범 김구 전문가인 창원대 도진순 교수,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김구포럼 간사 오정섭 박사, 도리우미 유타카 박사, 김구포럼 학술기획위원 서상문 본인 등등 총 11명이었다. 
 
최서면 선생은 1928년생으로, 해방 후 1947년 연희전문 재학중에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찬성한 장덕수를 암살한 공범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에 처해졌다가 1년 뒤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여느 사람과 다른 이력이 있는 분이다. 그는 당시 한독당 산하 남한 단독정부수립 반대운동을 주도한 김구 선생을 모신 대한학생연맹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 그는 장면 박사의 비서로 일하다가 이승만 정권 말기의 정치세력이 장면 박사 세력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피신하라는 장면 박사 측의 권유로 1957년 미 군용기를 타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최서면 선생은 안중근 전문가, 독도전문가, 일본전문가, 몽골 전문가로 알려져 있고, 박정희 정권 시절 한일외교에도 여러 가지 막후 역할을 한 분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로 있는 선생은 안중근에 관해선 당시까지 전혀 알려진 게 없던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라는 책을 일본 생활 중에 입수해 국내 최초로 "안중근전"이 출판될 수 있게 한 공로가 컸다. 
 
최서면 선생은 일본으로 밀항을 했을 때는 원래 이탈리아로 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탈리아 출국수속을 밟는 동안 책이나 읽으려고 일본 국회도서관에 나갔다. 그런데 그기서 일본인들이 모아 놓은 한국 관련 엄청난 자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한국인으로 부끄러움을 느껴 이탈리아 행을 포기하고 5년 동안 국회도서관에서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일본 동경에 한국연구원을 세워 한국과 한일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연구하는 학자의 인생으로 바뀌게 됐다. 그 뒤 권력을 잡은 장면 박사 쪽에서 그에게 "일할 사람이 없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했지만 장면 정부가 오래 갈 것 같지 않다는 소문을 들은 최서면 선생은 "1년만 기다려 보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장면 정부가 무너졌다. 최서면 선생의 삶이 큰 각도로 곡선을 그리게 된 곡절인 듯하다.
 
최서면 선생은 일본에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을 반대한 강연을 많이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박정희에게 최서면을 한 번 만나보라고 권유한 주한 일본 대사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1909~1997, 2대 주한 일본대사를 지냄)의 말을 듣고 자신을 청와대로 부른 박정희를 면담했다. 면담 중, 그는 다른 고위 관료들이 오메가 시계를 차고 일본에 와서 거들먹 거리던 것과 달리 박정희가 국가 최고 권력자였음에도 터진 구두를 신고 있고, 국산 조립시계 '시티즌'을 차고 있는 등 검소한 면을 보고나서부터는 박정희를 새롭게 인식하고선 일본과의 경제협력 등 일본의 도움을 필요로 한 그를 많이 도왔다고 한다. 
 
최서면 선생은 곧 90세가 되는 연세임에도 건강해서 그런지 여러 가지 많은 얘길 해주셨다. 특히 안중근 피살, 백범 김구와 관련해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도 많았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이토 히로부미의 셋째 아들이 증언한 것을 소개하면서 이토가 하얼빈에서 안중근의사에게 총을 맞았을 때 그가 비서 모리(森)에게 "모리! 너도 맞았냐?"라고 물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어서 그럴만한 경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말은 훗날 신문기자가 지어낸 것이라고 한다. 또 광복 후 백범일지가 현대 한글로 번역되어 출판된 데는 당시 '미스 홍'이라는 여성이 김구를 도와 초고 번역을 했다는 사실 등이다. 
 
 
왼쪽은 멀대, 중간이 최서면 선생, 오른쪽은 윤동한 회장

 

강연이 끝난 뒤 이태진, 도진순, 김형오, 서상문 등의 이런 저런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한 선생의 답변도 아주 유익했다. 주최 측에서 녹취도 했다. 혹시 훗날 최서면 연구의 자료가 될 수 있는 '구술작업'인 셈이다. 구순이 된 그였지만 아직도 그의 목소리와 톤에는 젊은 장년 못지않은 열기가 있었다. 평생을 공부하고 연구한 학자답게 博覽强記가 배어 있는 노익장이었다. "學然後知無知"라고 하지 않는가?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 한다. 아무 것이나 막 배우는 게 아니라 배우기도 잘 배워야 한다. 우리 후세대도 이 사회를 위해, 또 다음 세대를 위해 뭔가 해야 할 최소한의 자기 몫은 하고 살다 가자는 생각이 든다. 초겨울, 공기가 차갑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북한산의 자태가 如如하다.
 
2018. 12. 10. 16:54
광화문에서 초고,
12. 12. 06 : 21
북한산 淸勝齋에서 퇴고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