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을미년 送舊迎新酒 소회

雲靜, 仰天 2016. 4. 13. 15:05

                       을미년 送舊迎新酒 소회

을미년의 마지막 날 밤, 벗과 둘이서 마주하는 술 한 잔, 평소 보다 좋은 술과 안주에다 마주한 이가 知音이니 더 없이 기쁘고 술이 당기지 아니 하겠는가? 반평생을 고래가 大洋을 마시듯 술을 마신 몸이니 送舊迎新의 흥취를 모르는 바도 아니지 않겠는가?

 

허나 오늘밤은 취하고 싶지 않구나. 아니 취할래야 취할 수가 없구나. 꿈을 접으려는 벗을 위로하며 친구가 따라주는 술맛이란 그 처지가 돼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터! 후일을 도모하지만 때가 언제일지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운명의 영역일 터! 獨也靑靑으로 끝날 운명일지, 아니면 靑雲을 펼치게 될지는 정녕 알 수 없도다. 후일은 후일이고, 당장 지도층에서부터 이성과 합리성이 실종돼 나라를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어 놓은 현실을 대면하고 있으니 어찌 미래가 암담하고 뒷세대가 염려되지 않겠는가?

 

大同의 이상은 차치하고서라도 이토록 부박한 난세에 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나이까? 시국을 논하고 세인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술맛이 이토록 쓴 적이 없었구려!
  

저무는 歲暮에 사람들은 저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또 다시 새해의 꿈과 희망을 얘기하고 덕담을 나누지만 정치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허당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끝날 뿐, 昏庸無道의 절대군주가 버티고 있는 한 새해라고 딱히 달라질 게 있겠는가? 사슴을 말이라고 저렇게 우기는데도 누구 하나 바른 소리 하는 충신이 없으니 나라가 바로 서겠소이까? 없이 살고 비정규직이라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미물 보다 못한 존재는 아니지 않소이까? 그들도 국가에 세금을 또박또박 바치고 부모형제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일진대 정말 이 나라의 근로자가 아니란 말인가? 해마다 1년 내내 뼈 빠지게 농사 지어도 빚만 더 늘어나는 농민들의 처지는 또 어떤가?
  

그런데도 엄청난 시혜라도 베푸기라도 하듯이 그런 근로자를 마음대로 짜를 수 있는 법을 근로자들을 위한 것이며, 대책은 마련해주지 않고 값싼 농산물 개방만이 살길이라고 강변하는 이가 있다면 안드로메다에서 지구로 이민온 사람이 하는 말로 들리지 않겠소이까? 단순무식의 소치인지, 태엽 감긴 장난감의 말인지, 무슨 심보에서 하는 말인지 당최 알 수 없으니 참으로 뇌회로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열어보고 싶구나. 더 가관인 게 이처럼 백성을 마음껏 조롱하고 자신도 모르는 소릴 해대도 그를 우상시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 무슨 기괴한 일인가?


   사람들이여! 
제발 이제부터라도 일월성신, 신이나 하늘 따위에만 소망을 빌지 말고 어처구니 없는 방약무인의 엄혹한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행동하면 좋겠소이다. 정식 직원이 되기 전에 업주가 자신을 마음대로 짤라도 되는 사회를 만드려고 하는 자가 누구인지 말이오. 서민 쌈짓돈 털어 가진 자의 배를 더 불리기 위해 겁박하고 꼼수를 부리는 자가 누구인지 말이오. 수 많은 청년들이 지옥 같은 나라라고 욕할 정도로 저토록 분노하는 이유를 말이오.
 

일국의 군주에 대한 험담이 왜 개인의 호오를 넘어 집단적으로 섬뜩하리만치 저주까지 할 정도가 됐는지 말이오!

   이유 있는 저주에도 끝까지 눈과 귀를 막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뻔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말이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저 자식 같고 손주 같은 젊은이들을 기만하면서까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누구인지 말이오!

   갖은 갑질과 부정과 거짓으로 온 나라가 악취에 쩔어 있는데도 진실을 감추고 혹세무민 하는 자가 누구인지 말이오!

  

민족정기와 정의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고, 나라야 어찌되든 자신들의 부귀영화만 생각하는 삿된 기득권자들의 게걸스런 탐욕과 厚顔無恥의 교활한 권력이 만나 매일 밤 맘껏 춤 추고 난장판, 개판을 벌여도 아무렇지도 않는 세상!

 

오히려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 급급하고 권력자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선 관심을 가질 수 없도록 개판이 되면 될수록 기득권층의 부귀영화가 더 여물어 지고 파이가 더 커지는 법칙이 존재하는 요상한 千一夜話의 나라!

 

거의 예외 없이 비리의 백화점이 되다시피 한 정치인, 정부의 장차관 이상의 고관, 법조계, 언론계, 세속 권력 보다 더 사악한 꼴통 종교계 지도자들 사이에 마치 얼룩말들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크랩을 짜듯이 견고하게 한 통속이 돼 공동의 이익인 기득권의 영속과 공고화를 위해 거대한 카르텔이 형성돼 있는 나라!

   사람들이여! 
제발 새해랍시고 나와 내 가정만이 무탈하고 복 받게 해주길 기도하지 말지어다. 정부와 권력자를 감시하는 부릅뜬 눈과 현명함과 용기를 지닌 시민이 되어주면 더 없이 기쁘겠나이다. 주어진 권리 행사 제대로 해서 세상 바꾸는 것에 꿈과 희망을 두면 좋겠나이다.

 

탄식과 통탄과 분노가 솟구치고 司馬遷의 謂鹿指馬고사와 王安石의 시 桃源行이 포개지면서 떠오르는 을미년의 마지막 밤,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서, 울분을 토로한다고 해서 흠뻑 마셔 취할 일이 아니네요. 아쉬운 이 밤이 가고 아침 해가 떠오르면 그래도 丙申年 새해가 시작되는데 우리마저 술에 취해 昏庸無道가 돼선 안 될 일이 아닌가? 정말이지 다음엔 李白의 싯구를 안주 삼아, 서울의 찬가를 반주 삼아 흠뻑 취할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2015. 12. 31. 23:38 초고
2016. 1. 1. 17:21 수정

구파발 寓居에서

雲靜